아나운서 지망생 이초해(25) 씨는 3주 전부터 하루 종일 사과 한 알과 두부 반 모만 먹는 ‘초절식’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기운이 없고, 배가 고프다 못해 속이 쓰리지만 참고 있다. 소위 말하는 스키니한 몸매를 갖기 위해서다. 심한 다이어트로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진 적도 있다는 이 씨는 그래도 살 빼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그는 “이런 식의 다이어트가 건강에 안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며 “그래도 당장 화면에 예뻐 보이고 싶고, 취업이 급하니 건강은 나중에 챙겨도 될 거 같다”고 했다.

                                                              ▲이초해 씨 식단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2년차 레지던트 윤민호(33) 씨는 6개월 만에 체중이 15킬로그램이나 늘었다. 잦은 폭식 때문이었다. 업무량이 많아 시간에 쫓기다 보니 하루 세끼를 한 번에 몰아먹는 일이 많았던 탓이었다. 실제로 윤 씨는 일주일에 144시간을 일 할만큼 바빴다. 하루 2~3시간밖에 안 되는 수면시간도 문제였다. 지나친 스트레스가 무력감과 우울감을 가져왔던 것이다.

바야흐로 ‘팔포세대’의 시대가 열렸다. 사회적 압박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던 삼포세대는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오포세대, 여기에 꿈과 희망까지 접은 칠포세대로까지 발전했다. 이마저도 모자라 이제 한국 청년들은 자신의 몸, 건강까지 포기한 팔포세대가 됐다. 취업준비생은 물론 사회초년생 모두가 건강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지난 2월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대치인 11.1%까지 치솟자 취업준비생들은 건강이라도 포기해 취업문턱을 넘으려 한다. 최근 취업전문포털 사람인이 신입 구직자 1077명을 대상으로 ‘취업을 위해 포기한 것이 있냐’고 묻자 19.1%가 건강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노량진에서 임용고시 공부를 하는 정지수(24) 씨는 학원 점심시간이 30분에 불과해 보통 김밥과 패스트푸드로 식사를 간단히 해결한다. 이 시간도 아끼려는 학생들은 점심시간에도 꼼짝 않고 빵, 떡, 초콜릿으로 입치레만 한다. 정 씨는 “이런 식단이 반복되다 보니 한 친구는 얼마 전부터 위장병으로 병원에 다닌다”며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는 말도 한다”고 했다.

 

 

 

 

 

 

                    ▲ 노량진 컵밥 포장마차 앞                                                      ▲노량진 컵밥

컵밥 포장마차를 하는 하희선(56) 씨는 하루 세끼 모두 컵밥을 먹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하 씨는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음식 메뉴 하나를 정하면 시험 끝날 때까지 그것만 먹더라"고 말했다.

경찰공무원 준비생인 장정식(24) 씨는 노량진에서 본격적으로 시험을 준비하면서 고시원에 살기 시작했다. 최근엔 통학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고 학원에서 더 가까운 고시원으로 이사까지 했다. 그는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책상에 앉아 있다”며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는 이상 걷거나 움직일 일이 없다”고 했다.

대학 캠퍼스도 마찬가지다. 하루 평균 대학생 150~200명이 방문하는 이화여자대학 건강센터 의사 김은영 씨는 이곳을 찾는 학생 상당수가 소화 장애와 근육통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와 시험공부로 시간에 쫓겨 패스트푸드로 식사를 해결하는 데다 운동할 여력이 없는 것이 이유였다. 9년간 학생들을 진찰해 온 김 씨는 "요즘엔 신입생 때부터 취업준비를 시작하면서 건강이상을 호소하는 저학년도 많다"고 덧붙였다.

밥 먹을 시간, 통학할 시간까지 쪼개가며 각자의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의 목표는 오직 단 한 가지. 하루빨리 취업해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취업 문턱 너머에는 또 다른 전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2차전의 시작이다.

익명을 요청한 국내 유명 대기업 3년 차 직원 이 모(27) 씨는 숙취로 주말 내내 집에서 꼼짝도 못했다. 전날 기업 임원진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음한 다음날이 출근일이면 그날 오전은 꼼짝없이 사내 의무실에 가 수액을 맞는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버티질 못 한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우리 홍보담당 부서처럼 회식이 잦은 부서에서는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라 했다.

국내 모 화장품회사 직원 이현지(24) 씨는 아파도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로 시간 여유가 없던 탓이다. 10시간 이상 컴퓨터 화면을 봐야하는 업무 특성상 눈과 머리가 자주 아팠지만 참는 일이 많았다. 이 씨는 "바빠서 병원을 못 가다보니 건강이 더 악화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씨처럼 참다가 결국 바쁜 시간을 쪼개 병원을 찾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서울 광화문 근처 병원들은 정장 차림의 환자들로 붐볐다. 그 중에서도 수액주사를 잘 놔주는 곳으로 유명한 S병원의 하루 평균 환자 수는 160명 이상이었다. 지난 26일 정오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 사원증을 맨 환자들이 2분에 한 명꼴로 병원에 들어서고 있었다. 접수대 옆 검은색 안내판에는 '만성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마늘감초주사 5만원', '영양제 4만원' 등이 적혀 있었다. 주사실 문틈으로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간호사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보였다. 간호사를 통해 의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점심시간이 가장 바쁘니 그나마 한가한 5시에 다시 방문해 달라 말했다.

                                          ▲ 광화문 근처 병원 영양 주사 안내판

약 4시간을 기다린 끝에 만난 의사 A 씨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과도한 업무량, 상사와의 갈등, 그리고 잦은 회식 등을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는다”고 했다. 덧붙여 그는 “특히 사회초년생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한다는 압박까지 더해져 더 힘들어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건강이 악화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김 모(27) 씨는 2년 전 국내 유명 상사회사에 입사했다. 높은 연봉과 회사 인지도는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으나 김 씨의 건강은 입사 7개월 만에 심각하게 악화됐다. 과도한 업무강도와 잦은 술자리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피부병이 생겼다. 얼마나 긁었던지 피가 날 정도였다. 결국 그녀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 후 보수는 덜 하지만 정시 퇴근이 가능한 유명 금융회사에 재취업했다. 김 씨는 "이제라도 건강을 챙길 수 있어 다행"이라 했다.

4년간 취업준비를 했던 한 모(28) 씨 역시 비슷한 사정을 전했다.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그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하루 빨리 합격해야 한단 압박감 때문이었다. 약을 삼켜가며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정말로 위험하다"는 정신과 전문의 진단을 듣고서다. 결국 그는 고시 공부를 접고 유학을 준비했다. 현재 독일 유명 사립대의 법대생이 된 그는 "그땐 합격을 위해서라면 정신이든 몸이든 다 바칠 것 같았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압구정 아미케어 한의원의 김소형 씨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가 편두통, 요통, 수족냉증, 그리고 여성의 경우 심하면 조기폐경까지 발생시킨다고 했다. 그는 "요즘 20, 30대가 바쁘다고 건강관리에 소홀한데 10년 후 몸이 망가지고 그때서야 건강을 챙긴다면 그때는 이미 늦다"고 했다.

실제로 매해 보건복지부가 실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30대 남성과 20대 여성은 전 연령대를 통틀어 건강이 가장 나빴다. 30대 남성의 흡연율은 54.8%로 남성 전체 평균보다 11.1% 높았고 스트레스인지율도 29.8%로 60대의 3배에 가까웠다. 20대 여성 역시 영양부족비율(24.8%)과 지방과잉비율(7.9%)은 40대 여성의 약 두 배로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고, 특히 스트레스 인지율은 45.5%로 남, 녀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3년 11월 4일 국민건강영양조사 발표에서 이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고 "건강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관련 부처들과 협력할 계획"이라 밝혔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청년층 건강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은 발표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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