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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를 혐오하는 사람들, 메갈리안과 여성운동
이윤수, 조윤선 기자 | 승인 2015.08.20 21:30

6월 13일, 국민일보에 ‘페이스북 인기 ‘여성 폭행 만화’를 바라보는 시각차’란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당시 페이스북에서 한창 퍼지던 ‘상남자만화’의 데이트폭력 및 아무렇지 않게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성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6일 뒤 같은 기자가 새로운 글을 올렸다. 제목은 ‘[극혐뉴스] 여성혐오 상남자만화가 “기자 패고 싶다”, 기자 “찾아오세요”’였다. 말 그대로 만화가가 자신의 만화에 대해 비판한 기자를 패고 싶다고 말했고 기자가 그에 대응한 것이다. 이후 만화가의 페이스북에선 ‘상남자만화’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올라온 만화에선 단골 대사였던 “여물어 XX아”가 “후러덜X아”로 바뀌며 표현이 완화됐다.

‘상남자만화’뿐만 아니라 얼마 전 엠넷의 힙합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도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가사를 그대로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내용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반발했다. 이에 프로그램 관계자, 출연자, 소속사가 모두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사과문을 전달해야 했다. 이처럼 최근 대한민국에선 여성혐오 논란이 뜨겁다. 여성혐오는 오랜 시간 만연해왔다. 그러나 이제 여성혐오에 여성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 출발점이 바로 메르스 갤러리다.

메르스 갤러리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속한 갤러리 중 하나다. 메르스 감염이 확산되던 5월 말, 메르스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생겨난 갤러리다. 이곳이 ‘여성혐오에 대항한 혐오’의 장으로 변모된 것은 불과 3개월 전이다. 당시 홍콩으로 여행간 두 여성이 격리를 거부했다는 보도가 이뤄지자 온라인상에서는 그들을 ‘김치녀(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말)’라고 매도하는 글이 쏟아졌다. 이는 곧 일반 여성에 대한 혐오와 비난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그것이 잘못된 보도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분노한 메르스 갤러리의 여성 사용자들이 여성혐오에 맞서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여성이 주체가 된 “전복적” 온라인 활동
그들은 ‘미러링(mirroring)’의 방식을 이용한다. 온라인상에서 행해지는 여성 비하와 비속어를 그대로 빌려와 그 대상을 남성으로만 바꾼다. ‘김치녀’가 ‘김치남’이 되는 것과 같다. 갤러리에는 일상적인 글부터 시사이슈까지 다양한 글이 올라온다. 어떤 이용자는 가수 에픽하이의 노래 'born hater'를 ‘씹치(’김치남‘과 비속어 ‘씹’의 합성어, 남성을 비하하는 말) hater’로 패러디하기도 했다. 여성혐오를 일삼는 남자들을 향한 메시지가 가사에 담겨있다. ‘메갈리안’이라는 이름으로 기부 활동도 진행됐다. 이들은 7월 초 ‘한국성평등상담소 부설 열림터’에 1800만 원을 기부했다.

   
▲ (출처: 메르스 갤러리, 오른쪽: ‘씹치 hater’ 가사 일부)

메르스 갤러리의 활동은 타 커뮤니티나 SNS로도 파생됐다. 현재 페이스북에는 대표적으로 ‘메갈리아4’,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페이지가, 트위터에는 ‘메갈리아의딸들’, ‘메갤문학’ 등의 계정이 갤러리 활동을 전파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화장실 몰래카메라, 데이트폭력 같은 여성 관련 사회 현안들을 논의한다. 또 ‘맨스플레인(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것) 대회’나 ‘투명코르셋 벗기’ 활동을 통해 여성들의 경험담을 공유, 비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

이를 접한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대학생 박모(22, 여) 씨는 “처음엔 일베(일간베스트)와 다를 게 뭔가 싶고 불편했지만 알아야 하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며 여성들의 적극적인 대응이 ‘혐오’ 정서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킨단 점에서 의미 있다고 전했다. 또 그녀는 “현재를 과도기적 시점이라고 본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여성혐오, 남성혐오가 완화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반면 메르스 갤러리의 남성혐오적 분위기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올해 2월 대학교를 졸업한 이재현(24, 남) 씨는 메르스 갤러리는 일베 못지않은 몰지각한 행동이라고 지적한다. “일베같은 사이트에서 여성혐오적 글을 올리는 것과 같은 근거 없는 보편적 비난도 한심하지만 메르스 갤러리의 남성혐오 조장 또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문제적 행동이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미러링효과는 어불성설이며 눈에는 눈 식의 대응은 실제로 양성간의 맹목적 비난과 갈등을 가중시킨다.”

여성운동, 사회운동을 위한 조건
메르스 갤러리를 향한 상반된 평가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메르스 갤러리를 비롯한 급진적인 온라인 활동을 여성운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에 대한 논쟁도 진행 중이다. 이를 전복적인 여성운동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사람들은 기존 한국여성운동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입장에 서있다. 이미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여성혐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는 적극적 대응이라고 본 대학생 박 씨의 의견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이뤄져 온 한국여성운동은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는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양성평등추진전략단의 최 연구원(익명요청)은 한국여성운동의 가장 중요한 성과를 다음과 같이 꼽았다. “짧은 기간 내에 여성 인권, 일, 보육 지원 등과 같은 여성의 사회 참여 활성화를 위한 각종 법률을 제정하고 제도화한 것.” 하지만 빠른 제도화로 인해 정부주도의 사업 확대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문제를 여성단체가 주도하지 못하고 단지 ‘자문’하거나 ‘의견 수렴의 객체’가 돼 주체적 입장에 서기 힘든 현실을 만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비교해보면 메르스 갤러리는 더 이상 수동적 피해자의 여성정체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돋보인다. 하지만 최 연구원은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합리적 폭력성을 내포하며, 혐오가 사람들에게 정서적 만족감을 준다는 점에서 그간 여성 운동에서 상징되던 여성의 대안세력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다는 문제점을 지닌다고 말한다.

이러한 온라인 여성활동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일까. 대중에게 젠더 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법 정책에 대한 제안, 모니터링 뿐 아니라 젠더화된 일상생활을 개선할 수 있도록 담론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특정 사안에 관계된 당사자 그룹들이 출현해 담론을 형성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최 연구원에 따르면 젊은 세대의 젠더화된 일상 문제로 주로 섹슈얼리티(데이트 성폭력뿐만 아니라 몸과 관련된 각종 상품화 포함)와 고용문제에서 여성 비정규직 문제가 우선순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 “여성운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대중화된 담론을 형성하는 것뿐 아니라 대화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지금의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는 방식은 남녀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방식이 가진 한계
사회운동의 사전적 정의는 “계층 간의 이해관계 대립을 비롯한 사회의 구조적 성격에서 기인하는 각종 사회문제를 둘러싸고 이해관계 집단이 문제해결 및 그들의 지위향상을 목적으로 일으키는 운동”이다. 구조적 모순에 맞서 싸우되 그것이 지향해야 하는 바는 민주주의, 평등,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가치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메르스 갤러리는 여성 “운동”이라고 불리기에는 애매모호하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맞서 싸우는 대상에 대한 비판의 수단에 있다.

현대 문화연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디아스포라의 지식인>의 저자 레이 초우는 “전략에 전략으로 맞서는 것이 아닌 개입의 전술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르스 갤러리가 향해 나갈 수 있는 개입의 전술은 상대방(여성혐오적 발언을 하는 남성)의 전략인 “혐오”에 같은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의 여성혐오적 성향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하는 방식일 수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배은경 교수는 <군가산점 논란의 지형과 쟁점>이라는 글에서 남녀갈등의 원인은 '누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를 따지는 이분법적 논쟁에 있다고 평가한다. 군가산점 논란이 끊임없이 비슷한 담론을 반복 생산하며 성대결로 비화됨으로써 담론의 장에서 사라진 것은 취업권, 기회균등, 인권침해 등의 문제이며, 담론의 지형을 남녀문제로 바꿔놓은 것은 한국 사회에 내재돼 있는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를 여성들에게 전이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메르스 갤러리의 수명이 얼마나 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일시적인 유행에 따른 일부 이용자들의 혐오적 감정으로 가득한 단체로 머문다면 대중적 담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메르스 갤러리의 움직임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8월 6일, 메르스 갤러리 이용자들은 사이트에 소속된 갤러리에서 벗어나 독립된 사이트 ‘메갈리안(www.megalian.com)’을 개설했다. 기존 갤러리와 SNS 활동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이루되 더 확고한 지지 기반을 만든 셈이다. 또 다양한 여성 관련 행사 개최나 기부 등의 사회 활동도 보다 원활해질 전망이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이트에 대한 네티즌들의 기대감은 벌써부터 크다.

여성학 연구자 윤보라 씨는 <온라인 페미니즘>이라는 논문을 통해 “온라인이 더 이상 온-오프라인으로 구별되는 가상공간, 혹은 현실의 확장으로만 볼 수 없게 됐다. 오히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힘입어 현실세계보다 더 강력하게 주체를 형성하는 주요 공간으로 기능한다”고 말했다. 즉 메르스 갤러리의 활동이 온라인상의 제한된 움직임이 아니라 그것을 접하는 개개인의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메르스 갤러리가 여성운동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지, 혐오감으로 인해 촉발된 젠더 갈등이 양성평등에 올바로 기여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잇따른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정서의 촉매제가 됐다는 점과 이에 따라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음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어쨌든 그들의 움직임에 한국 사회가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온라인상의 혐오감에서 벗어나 실제 현실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게 될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이윤수, 조윤선 기자  yoonpamo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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