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데 조중동이 뭐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3대 수구 꼴통신문. 반대로 한겨레 경향은 2대 빨갱이 신문.. 중립은 교차로에서”

회원수 2백만 명이 넘는 수능점수 공유 인터넷 카페 ‘수만휘’에 올라온 글과 답변이다. 모든 청소년의 인식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의미 있는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조중동’ 별칭으로 불리는 언론권력 현실을 모를 정도로 언론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청소년 때부터 ‘조중동 VS 한경’이라는 이분법적 언론 구분을 기계적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뚜렷한 근거를 들기보다는 피상적으로 전해 들은 것들로 틀을 짓는 것이다.

더욱 눈여겨볼 문제는 청소년의 뉴스 이용이 활발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중고등학생 600명을 대상으로 벌인 미디어이용 조사에서 종이신문을 읽는 학생은 1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는 비율도 5.8%에 그쳤다. 뉴스 이용 자체를 꺼린다는 뜻이다. 어디에서도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뉴스 읽는 방법을 모르는 게 청소년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10대에게 말을 걸다

언론인 손석춘이 10대를 위한 뉴스 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2009년 쓴 『순수에게』라는 책의 부제는 ‘십대에게 말 거는 손석춘의 에세이’다. 서문을 통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살필 수 있다. 그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당시 광장에 나온 여고생들을 보며 이들을 위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촛불을 밝힌 청소년의 얼굴에서 순수한 감동을 했다고 한다. 동시에 수능이 끝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이 늘어나는 줄 세우기 경쟁의 가혹함도 깨달았다. 오늘날 10대들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를 생각했다. 손석춘은 이런 혹독한 상황을 모르쇠 해온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는 고백으로 그치지 않았다. 반성한 뒤에 청소년을 위한 행동에 나선다. 선택한 수단은 가장 잘하고,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무기인 ‘글’이었다. 정확히는 글을 통해 세상을 읽는 방법을 청소년에게 가르치는 일이었다. 세상을 읽으려면 뉴스를 제대로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손석춘은 ‘뉴스 리터러시’ 선생님이 됐다.

뜨거운 씨앗의 성장

손석춘이 밟아온 길을 살펴보면 그가 뉴스 리터러시 선생님의 자질을 길러왔음을 알 수 있다. 손석춘은 1960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초중고 학창시절은 서울에서 보냈다. 1978년에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갔다. 1학년 1학기 때 상계동에 있는 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했다. 다음 학기에는 학내 비합법서클을 찾아 가입했고 회장도 맡았다.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데는 당시의 엄혹한 사회 분위기가 결정적이었다. 손석춘이 대학을 다닐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숨지고, 이어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력으로 진압했던 때였다. 하지만 국내언론은 광주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폭력에 침묵했다. 또는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했다. 손석춘은 이런 시대를 관통하며 한국 언론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운동권 선배와 함께 만난 동아일보 해직 기자가 그에게 신문기자가 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신문사 안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1984년 《한국경제신문》에 들어간 것은 투쟁의 연장선에 있었던 셈이다.

입사 뒤에는 본격적인 언론 활동을 펼쳤다. 당시에는 그해 언론사에 들어간 모든 수습기자가 언론연수원에서 함께 교육을 받았는데 합숙 마지막 날에 “각자 돌아가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제안은 1987년 《동아일보》로 회사를 옮긴 뒤 1988년 ‘전국언론노조연맹’을 만들며 구체화 됐다. 하지만 《동아일보》에서의 생활도 길게 가진 못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내던 《동아일보》마저 1990년대에 들어서며 노동자와 대학생 탄압에 나섰기 때문이다. 1991년 백골단의 무자비한 폭행 진압으로 숨진 ‘강경대 구타치사사건’을 《동아일보》가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것에 손석춘은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존경하던 김중배 편집국장이 권력에 굴복하는 언론에 항의하며 사직서를 제출하자 회사를 나왔다.

《한겨레》와는 1991년부터 2006년까지 25년간 인연을 맺었다.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등을 거쳤고 마지막 2년은 비상근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연재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고 《미디어 오늘》의 발행인을 맡기도 했다. 2006년부터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이 됐다. 2011년부터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조교수를 맡아 강단에서 저널리즘과 커뮤니케이션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기자상(1990), 민주언론상(1996), 한국언론상(1997), 통일언론상(1999), 안종필 자유언론상(2005) 등 많은 언론상을 받았다. 현재까지 공저를 포함해 68권의 책을 냈다. 그중에서도 『여론 읽기 혁명』『신문 읽기의 혁명』『언론 개혁의 무기』『R통신』『부자 신문 가난한 독자』등은 언론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여겨진다.

보수-진보가 아닌 진실

손석춘은 『순수에게』와 『10대와 통하는 미디어』를 통해 청소년이 뉴스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관해 방향을 잡아준다. 인생을 살아가며 선택해야 할 것은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안에 따라서 다양하게 선택할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전한다. 중요한 것은 거짓이냐, 진실이냐를 따지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다만 거짓이 스스로 거짓임을 말하지 않는 탓에 이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진실 여부를 가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손석춘은 ‘거짓과 진실이 맞서는 문제를 보수와 진보의 시각 차이, 좌우 대결인 듯 주장하는 뉴스를 판별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맹목적인 이데올로기 대신 진실에 충성하는 일이 청소년이 순수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첫걸음인 것이다.

손석춘은 방향을 잡은 뒤에 구체적으로 뉴스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말투는 단호하지만 권위적이진 않다. 젊지는 않지만 매너 좋은 신사처럼 차근차근 설명한다. 신문은 ‘사실’이 아니라 ‘그림’이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게 아니라 추려서 담아내는 것이라고 전한다. 독자가 봤다면 중요한 사건이라고 판단했을 사안을 신문이 뉴스로 다루지 않으면 ‘없는 일’이 되고 독자는 알 수가 없다. 뉴스는 편집국이라는 신문 제작 시스템을 통해서 수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년은 신문 편집이라는 그림을 보며 의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의 영향력은 줄더라도 자본 권력의 영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신문 편집을 보며 비판적인 가치판단도 내릴 필요가 있다. 손석춘은 이해를 돕기 위해 대기업 회장의 비자금 사건을 보도한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광고가 끊겼다는 사실을 전한다.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기업 관련 비판 보도를 빼 편집국이 반쪽 난 《시사저널》사태도 알려준다.

청소년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사건이기에 자세히 설명을 풀어낸다. 손석춘은 ‘먹빛의 지면 뒷면에 정치와 경제의 문제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진실을 꿰뚫어 봐야한다. 객관적 사실을 내세우는 신문을 편집적 안목 없이 읽는다면 자신이 구독하는 신문의 색안경을 쓰게 마련이다’라며 청소년들에게 비판적 사고와 신문 이면에 대한 이해가 뉴스 리터러시의 핵심임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손석춘은 기존의 NIE(신문활용교육, Newspaper In Education)가 언론사 수익 모델로 시작했으며 기사를 정답인 듯 과장한다며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대신 신문이든 방송이든 뉴스를 정확히 보는 법을 예시한다. ‘노동자나 농민 집회라는 말에서 붉은 띠를 두른 과격한 모습만 연상된다. 뉴스에 시위를 벌이는 모습만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집회 현장에서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농민이 공권력에 맞아 숨지더라도 묵살되는 데 있다.’ 그는 ‘선진국에서 대중매체 비평이 활발한 이유는 대중매체가 지닌 위험성 때문이다. 매체를 비판적으로 짚어 보는 습관을 들일 때 진실을 하나하나 발견할 수 있다’고 전한다.

현장에서 만난 10대

손석춘의 강연을 듣고 난 뒤 이메일로 감상을 보낸 울산의 한 고등학교 1학년생 글이 손석춘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다. ‘손석춘 선생님이 말씀하신 진실을 올바로 보지 못하는 집안 어른들이 답답하기도 했다. (중략) 무조건적인 비판은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긍정과 수용 또한 옳지 않다는 것이 와 닿기도 했다. 그간 모르고 있었던 진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내가 얼마나 무심했는지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언론과 대중매체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기도 해서 은근히 소름이 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고등학생의 감상평에 손석춘은 ‘고단했을 터임에도 강연 내내 귀 기울이던 10대들의 맑은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거칠었을 법한 강연을 훌륭하게 소화한 글을 받았을 때 콧잔등이 시큰했다. 고등학교 1학년의 사고가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가를 실감했다’면서 자신의 강연활동이 청소년에게 뉴스 읽는 훈련, 그 이상으로 의미를 주고 있음을 체감한다.

인터넷을 살피면 2012년 7월 9일에는 강원도 태백시 장성여고에서 ‘대중매체 새롭게 보기’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다음날에는 전라남도 광양시 중마고에서 같은 내용의 강의를 했다. 2013년에는 강원도교육청이 주최한 ‘강원 고교생 인문학 독서토론 캠프’에도 토크쇼 대담자로 참여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10대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렸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손석춘 고등학교’를 입력하면 청소년들의 강연평이 꽤 나온다. 손석춘은 글과 강연을 통해 현장에서 10대를 만나는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좋은 언론은 좋은 민주주의의 배경

좋은 민주주의는 좋은 언론이 있을 때 가능하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누가 나에게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정부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이런 언론은 독자가 선택한다.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독자에게 있다면 나쁜 언론은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좋은 독자가 좋은 언론과 좋은 민주주의를 만든다. 청소년 때부터 뉴스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손석춘의 생각도 비슷하다. 학교와 기존 매체가 리터러시에 소홀할 때 그가 책과 강연을 통해 청소년을 만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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