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강 영등포수난구조대 소속 119특수구조단 수난구조대원들이 수난구조훈련을 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맡을 때면 익사체를 건질 때가 떠올라 괴롭더군요.” 서울특별시 119 특수구조단 수난구조대(이하 수난구조대) 김태수(가명) 씨에게 그 끔찍한 장면들은 일상 속에서도 불쑥 튀어나온다. 시간이 흘러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또렷한 영상들이 몰려온다. 실종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체는 그 선명함 때문에, 몇 달이 지난 익사체는 다른 어떤 시체와도 비교하기 힘든 변형된 모습 때문에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구조대원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익숙해진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밤에 자다가 문득 그 모습이 생각나요. 그러면 다시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이런 증상들은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초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김 씨는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받지 않고 있다.

시신 인양은 수난구조대원들의 구조 활동 중 자살 기도를 막기 위한 출동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하는 업무다. 반포, 여의도, 뚝섬 3곳의 수난구조대원 57명의 지난해 활동 실적을 보면, 총 88건의 시신 인양 작업을 했다. 1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강물 속에서 인간의 비극적 최후와 마주한 셈이다. 하지만 “업무에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방제웅·수난구조대원 4년차)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119 특수구조단 수난구조대 2014 출동 실적

수난구조대원들이 정신적 충격으로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는 상당한 수준이지만, 이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서울시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97년 창설 이후 지금까지 PTSD 진단을 받았던 수난구조대원은 단 한 명도 없다. 현재 치료중인 대원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1년에 1회 이상 실시되는 PTSD 예방 교육과 2회 실시되는 건강검진이 정신건강 관리의 전부였다. 이런 결과에 대해 최응섭 119 특수구조단장은 “여태껏 자신이 PTSD를 앓고 있는 것 같다는 사람은 없었다”면서 “대원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정기적 교육 덕분에 나온 결과”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수난구조대원들은 자신의 고통을 인정하려 하지 않거나 감추는 경향이 있다. 수난구조대원 전필수(가명) 씨는 기자가 PTSD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수면장애를 갖고 있어도 대부분 직업병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외부에 알리는 것을 꺼린다”면서 “국가에서 심리 치료와 상담을 무상으로 해준다지만, 병원에 드나들고 약을 먹으면 주변 시선이 곱지 않을 텐데 누가 나서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시야 확보도 되지 않는 차가운 물속에서 3~4개월 된 시체를 찾아 건져내는 심리적 고통을 설명하면서도 “그런 힘든 상황이 알려진다고 달라질 건 없다”며 치료에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태도는 119 구조대 내부의 조직문화와도 맞물려 있다는 지적이다. 국립서울병원 심리적외상관리팀 심민영 팀장은 “조직 내에서 PTSD 문제를 약점으로 생각해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구성원 대부분이 남자이다 보니 위계서열이 뚜렷한 문화가 자리 잡았고, 따라서 동료나 상사에게 힘들다고 터놓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상담·치료 체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형식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직접 소방대원들을 찾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가 있으면 아픈 사람이 알아서 찾아오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유정 연구원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은 무기력감에 빠져 찾아올 생각조차 않을 것”이라며 “밥상을 차려놓고 찾아와 먹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직접 그들에게 다가가 일상적인 심리적 지원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의 체계로는 실질적인 상담과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소방대원들의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상담가가 대부분 아웃소싱에 의존하고 있어, 그들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다. 일상적인 심리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상담 인력과 대원들 간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친밀감이 쌓이거나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다. 중앙대학교 간호학과 이옥철 교수는 “소방시스템 안에 자체적인 전문요원의 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상후 장애라는 인식부터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정 연구원은 구조대원들의 고통을 ‘외상후 장애’(PTSD)가 아니라 ‘외상후 성장’(Post Traumatic Growth. PTG)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업무로 충격을 받았다고 무조건 ‘예비 PTSD 환자’로 취급하면 반발심을 살 우려가 있다”며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다가 한 단계 ‘성장’한다는 의미로 대해야 구조대원들도 마을을 열고 상담과 치료에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원들이 재충전과 휴식을 할 수 있도록 보다 탄력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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