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경기도에서 김상곤 교육감이 전교생이 한꺼번에 치르는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상시평가를 도입할 당시부터 찬반은 갈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시험 성적만으로 평가할 경우 학생들의 다양한 잠재력을 파악하기 곤란하다”며 환영했지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학력 진단이 없는 상황에서 학력 저하가 우려된다”며 반발했다.

경상남도의 초등학생 전체, 광주광역시의 초등학교 1, 2학년으로 중간·기말고사의 폐지가 확산될 예정이다. 이보다 앞서 초등학생들의 일제고사를 폐지한 지 경기도는 2년, 인천은 6개월을 맞는다. 교실 풍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경기‧인천의 초등학교 가운데 35곳을 무작위로 골라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과목별선택과 집중 ‘평소 시험’ ·· 문항 수 탄력적, 출제범위도
상시평가는 말 그대로 모두가 한 날 한 시에 일제히 똑같이 치르는 시험이 사라지고, 수시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보고서 제출이나 실습 등 학습 과정 중에 이뤄지는 기존의 수행평가가 중요해졌다. 그렇다고 시험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종이 시험지를 받아서 문제를 푸는 지필 평가는 그대로 있다. 다만 학급별로 시험문제가 다 다르고 형식이나 출제 범위, 시기도 교사의 자율에 맡겨졌다. 전교생을 한 줄로 세워서 등수를 매기는 것이 불가능해진 셈이다.

경기도 성남의 ㄱ초등학교는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시험을 본다. 상시평가가 시행되기 전에 한 학기에 두 번, 중간과 기말로 나눠보던 때에 비하면 오히려 시험이 늘었다. 주로 객관식이었던 시험 문제는 서술이나 논술 형식으로 변했다. 적을 때는 다섯 문제에서 많을 때는 열두 문제로 진도에 따라 달라졌다.
가르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5학년을 맡고 있는 교사 이 모 씨(가명)는 “교과서에서도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평가했다. 교과서의 모든 단원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학습하기 보다는 좀 더 깊이 있게 탐구하듯이 공부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자연히 학생들의 시험 대비 요령도 변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사회 과목의 경우 어디에서 문제가 나올지 몰라 구석기부터 근대까지 방대한 범위를 다 같은 비중으로 외웠다면, 이제는 수업과 숙제를 통해 교사가 핵심을 짚었던 주제들을 위주로 공부한다”고 했다. 벼락치기 시험공부보다는 평소 공부가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상시평가로 전환된 후 바뀐 성적표다. 각 항목에 대한 평가는 ‘우수’나 '○'로 표시됐다.

학생·학부모 “실력 몰라 불안”.. 일부 학교, 일제고사 부활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업성취도 평가를 제대로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진단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경기도 남양주의 ㄴ초등학교는 시행 2년 만에 상시평가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교무부장 한 모 씨(가명)는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학생들의 성취도를 평가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점이 많아 학부모나 학생들이 실력을 가늠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아이의 수준을 잘 몰라서 불안하다는 학부모들이 많았다. 쪽지시험 형태로 상시평가가 이뤄지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도 안양의 ㄷ초등학교 학부모 정 모 씨(가명)는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불안하다. 부족한 부분을 모르고 있다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성적이 확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고 했다.

인천 함박초등학교 전현준(11) 학생도 “시험을 보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잘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시험이 없어진 것이 싫다”고 말했다. 인천 서구의 ㄹ초등학교 학부모 김 모 씨(가명)는 “교사의 개인적인 생각에 따라 아이들에 대한 평가가 좌우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서술형 문제의 경우 교사들의 채점 기준이 달라 평가 기준이 모호하다는 우려다.
이 같은 불만을 의식해 일부 학교에서는 편법으로 상시평가가 운영됐다. 인천 중구의 ㅁ초등학교는 6학년의 시험 일자와 문제를 통일시켰다 표면적으로는 문제 유출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했지만, 사실상 일제고사 때처럼 획일적인 평가를 부활시킨 셈이다. 교사들이 자신의 학급만을 위한 시험문제를 내는 게 쉽지 않아, 결국 기존의 문제은행을 활용했다.

교사 한 모 씨(가명)는 “지침이 내려왔을 때 기관에서 창의, 인성 교육을 강의하기도 하고 연수도 가지만,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는 않아 현장에서 크게 바뀐 건 없다”고 말했다. 지난 학기부터 상시평가가 도입된 인천 남구의 ㅂ초등학교 교사 유 모 씨(가명)는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안내가 교육청으로부터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일선 학교에서 혼란이 많았고 학교마다 해석하는 방식도 달랐다”며 시행 초기의 준비 부족을 지적했다.

“점수 연연 않고, 창의적 질문 던져”
그렇다고 지필고사 폐지 정책이 실패했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다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일단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는 두드러졌다고 한다. “제가 몇 점이에요?” “누가 1등이에요?”라고 묻던 학생들도 1년이 지나고나니 달라졌다. 경기도 성남의 ㄱ초등학교 교사 이 모 씨(가명)는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잘 알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자 학생들과 선생님들도 비교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도 의왕의 ㅅ초등학교 학부모 주정숙 씨는 “교과서 범위 내에서 강조한 부분 위주로 문제가 나오니까 아이가 굉장히 만족스러워한다. 따로 선생님을 붙여 공부를 시킬 필요가 없어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인천 부평구의 ㅇ초등학교 학부모 신 모 씨(가명)는 “시험 점수의 중요성이 낮아지면서 아이의 시험 스트레스가 줄어든 대신, 창의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며 변화를 반겼다. 인천광역시 교육청 교육혁신과 최정화 장학사는 “시행 6개월이 지나면서 상시평가가 안착돼 가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안착을 말하기에는 이르다는 게 일선 학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평가다. 학교에 따라 잘 시행되는 곳도 있지만, 다시 중간·기말고사 방식으로 돌아가거나 별다른 변화 없이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인천 지역의 ㅈ초등학교 학교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정 모 씨(가명)는 “좋은 제도일수록 충분한 준비 기간을 갖고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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