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안심지킴이집 지역별 편중 심해

“도와주세요” 지난해 7월 새벽 2시 경 성동구 한양대 앞에서 20대 여성 3명이 도와달라고 외치며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왔다. 박지은(가명)씨는 편의점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점주가 밖을 살폈다. 남자 2명이 편의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여성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성들이 편의점을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주는 편의점 안쪽으로 여성들을 급히 대피시켰다. 그러고는 무선비상벨을 곧장 눌렀다. 경찰이 출동하자 남자들은 사라졌다. 늦은 새벽 여성들을 집까지 안전하게 귀가시켜 준 곳, 여성안심지킴이집이었다.

서울시는 작년 3월부터 24시간 편의점 625곳을 활용해 ‘여성안심지킴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들이 위급한 상황에 부딪쳤을 때 가까운  편의점으로 긴급 대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작년 3월부터 2월까지 1년 동안 여성안심지킴이집에 대피한 사례는 81건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예방에 나름대로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편의점 중 자발적인 참여 의사를 밝힌 편의점을 대상으로 유흥가나 인적이 드문 지역을 우선 선정하고 있다. 문제는 여성안심지킴이집이 정작 필요한 곳에는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단 점이다. 성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적게 설치돼 있고, 으슥한 지역보다 번화한 지역에 더 많이 설치돼 있단 얘기다.

번호

자치구

점포(곳)

번호

자치구

점포(곳)

1

강남구

80

14

동대문구

22

2

송파구

42

15

도봉구

22

3

서초구

39

16

광진구

21

4

마포구

36

17

강동구

20

5

용산구

34

18

구로구

20

6

중구

30

19

서대문구

16

7

강북구

29

20

노원구

15

8

강서구

29

21

성동구

14

9

성북구

28

22

중랑구

11

10

종로구

26

23

양천구

10

11

영등포구

26

24

금천구

10

12

관악구

24

25

은평구

6

13

동작구

23

총 계

625곳

(2015년 기준 서울시가 선정한 서울시 25개구의 여성안심지킴이집 운영점포수) 

서울시 여성안심지킴이집 선정 현황을 살펴보면 구별로 차이가 극심하다. 강남구는 80곳, 송파구는 42곳이다. 반면 은평구는 6곳, 금천구는 10곳, 중랑구는 11곳에 불과했다. 강남구가 은평구보다 여성안심지킴이집이 무려 13배나 많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구에 여성안심지킴이집이 편중돼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오히려 적은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치구

인구 10만 명 기준 성범죄 발생 건수

점포수(곳)

중구

392

30

관악

155

24

강남

150

80

서초

101

39

송파

66

42

성북

58

28

(구청별 인구 10만 명 기준 성범죄 발생 건수와 여성안심지킴이집의 점포수. 인구 10만명 기준 성범죄 발생 비율은 새정치민주연합 유대운 의원이 서울시 지방경찰청으로부터 받은 2012년 1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치안 현황 자료에서 인구수와 성범죄발생건수를 바탕으로 가공한 자료다.)

새정치민주연합 유대운 의원이 서울시 지방경찰청으로부터 받은 2012년 1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치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중구의 성범죄는 18개월 간 518건이었다. 이에 반해 인구는 132,042명이다. 인구 10만 명당 성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인 셈이다. 그런데 중구 편의점 여성안심지킴이집(30곳)은 강남구 여성안심지킴이집(80곳)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쳤다.

반대로 인구 대비 범죄 발생 건수가 적은 지역에 여성안심지킴이집의 점포수가 더 많았다. 성북구는 인구 10만 명 기준 성범죄 발생 건수가 중구의 6분의1 가량 되나 여성안심지킴이집의 점포수는 중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송파구 역시 인구 10만 명 기준 성범죄 발생 건수가 66건에 불과하지만 여성안심지킴이집 점포수는 두 번째로 많았다.

특정구에 거주하는 성범죄자수와 여성안심지킴이집 역시 반비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여성가족부 성범죄알림이 서비스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성범죄 전과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중랑구다. 성범죄 전과자는 재범 가능성이 있어 또 다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대검찰청이 발행한 '2012년 범죄분석'의 조사결과 성범죄자가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는 기간은 3년 이상이 45.5%로 가장 많았지만 2년 이내도 12%에 달해 재범비율은 높고 기간은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감안하면 중랑구는 여성안심지킴이집이 필요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중랑구에서 운영하는 여성안심지킴이집은 단 11곳에 불과했다.

▲ 스마트 서울앱에 나타나는 서울여성안심지킴이집 중랑구 반경 800m의 모습이다. 주로 여성안심지킴이집이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과 가까운 곳에 분포해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같은 구 안에서도 여성안심지킴이집이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중랑구의 경우를 보면 11곳 중 7곳이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과 가까운 곳에 있다. 대형 편의점의 특성상 낙후된 지역보다 인적이 많은 대로변에 주로 분포해 있는 것이다. 인적이 드문 지역은 주로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편의점이나 동네 슈퍼마켓이 주로 분포해 있다.

여성안심지킴이집이 정작 필요한 지역에 적게 설치돼 있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서울시가 상대적으로 관리하기 쉬운 대형 편의점들과 협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25일 한국편의점협회와 5개 회원사인 씨유(CU), GS25, 세븐일레븐(7-ELEVEN), 미니스톱(MINISTOP), 씨-페이스(C-SPACE)와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위드미(With me)를 비롯한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 편의점들은 배제돼 있는 상태다.

영세 편의점들이 배제된 것과 관련해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담당관 김지현씨는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편의점들은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편의점주에게 여성안심지킴이집이 돼달라고 강제할 수도 없다는 점도 이유로 들고 있다. 성범죄 발생 지역과 여성안심지킴이집 불균형 배치에 대해 서울시는 “성범죄 발생지역, 여성 1인가구가 많이 사는 지역의 상관관계 분석을 끝냈다”며 “올해 성범죄발생지역을 보완해 운영할 계획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 복지팀 담당자 최원진씨는 “영세 편의점과 여성안심지킴이집 협약을 맺지 않은 건 서울시의 관리 미흡 문제다”라고 반박한다. 현실적으로 편의점에서 자발적으로 요청하기 쉽지 않은 만큼 서울시의 유인 정책이 필요하단 것이다. 이어 “잠깐 해서는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근본적인 여성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여대생 이지현(24·女)씨는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인적이 드문 지역에 대형 편의점이 많을 수 없다”며 “개인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동네 편의점이나 위드미와 같은 중견 편의점을 추가적으로 연계해도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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