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e to meet you.(만나서 반갑습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복장의 정병기(70) 씨는 먼저 영어로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붉은 색 와이셔츠와 황금색 넥타이. 남색 재킷의 가슴팍엔 ‘International TAXI(인터내셔널 택시) 정병기’라 쓰인 명찰이 빛났다. 정병기 씨는 자신을 외국인 관광택시인 ‘인터내셔널 택시’의 기사로 소개했다. ‘택시 문화 선도, 국가브랜드 고양, 삶의 질과 품위 향상’이 인터내셔널 택시 사업의 출범 취지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에게서는 스스로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정병기(70) 인터내셔널 택시 운전자.

하지만 ‘하루에 몇 명의 외국인 손님을 태우느냐’고 묻자 그의 낯빛은 어두워졌다. 돌아오는 대답은 ‘외국인 손님은 자주 없다’였다. 그는 “거리에서 태우는 일반 내국인 손님이 대부분”이라며 “공항에 가지 않으면 하루에 한 명의 외국인도 태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 초기 외국인 손님의 수요가 없어서 예외적으로 내국인도 태울 수 있도록 했는데, 그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와 현재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인터내셔널 택시 이용건수는 총 58,000여 건. 전체 인터내셔널 택시 374대 가운데 절반이 넘는 택시들이 하루에 단 한 명의 외국인도 태우지 않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인터내셔널 택시는 어쩌다 ‘외국인 없는 외국인 관광택시’가 되었을까.

많은 인터내셔널 택시 기사는 그 원인으로 ‘서울시의 홍보 부족’을 꼽았다. 정병기 기사는 “매년 늘어나는 관광객, 사업차 한국을 찾은 비즈니스맨, 국제회의 참석자 등 인터내셔널 택시의 수요가 무궁무진한데도 서울시가 홍보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내셔널택시 탑승의 65%는 공항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널찍한 인천공항에서 작은 규모의 ‘인터내셔널택시 안내카운터’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안내데스크를 먼저 알아보고 다가오는 손님도 적다.

인천공항 안내카운터의 심현기 사원은 “외국인 손님들을 위한 소책자가 있긴 하지만 별도의 홍보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며 “손님들 대부분은 예전부터 인터내셔널 택시를 여러 번 이용했던 단골손님이다. 해외에서 사전 예약을 한 뒤 한국에 도착해 택시를 탑승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외의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가 끊겨 이동수단이 택시 밖에 없는 밤 12시 경에 비교적 손님들이 있는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인천공항에서 3시간 째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황병율 기사도 “나는 영어와 일어를 담당하고 있는데 보통 단골손님이 개인 이메일로 예약을 해서 택시를 이용한다. 새로운 외국인 손님을 길거리에서 태우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저녁 8시 인천공항의 ‘인터내셔널 택시’ 안내데스크. 적막한 분위기가 감돈다.

서울시 택시서비스팀 정용우 주무관은 “사업 초기에 비해 예산이 많이 줄어 홍보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해외 여행사를 통해 바우처를 발행하는 등 영업도 하고 있다. 서울시도 더 많은 외국인들에게 인터내셔널 택시 사업을 알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내셔널 택시의 예약 방식도 외국인들의 택시 이용을 불편하게 한다. 인터내셔널 택시는 사전에 전화(1644-2255)나 이메일(reserve@intltaxi.co.kr)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그런데 예약센터의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휴무다. 가장 수요가 많은 저녁 시간과 주말에 이용할 수 없는 셈이다. 또한 예약은 서비스 요청 시간의 24시간 이전까지 완료해야만 가능하다. 일정이 갑자기 변경될 경우 외국인들로서는 택시를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다보니 ‘예약센터’ 이용도는 갈수록 떨어져 작년 한해 8000여건, 하루 20여건에 불과했다. 정승연(51) 기사는 “주위 인터내셔널 택시 기사들을 보면 한 달에 2~3번 정도 예약센터를 통해 손님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내셔널 택시의 온라인 예약 창. 이메일 예약은 요청 시간의 24시간 이전까지 보내야 가능하다.
 

서울시로부터 인터내셔널 택시 사업을 위탁받은 업체 ‘프리미엄패스’의 장동원 부장은 “사업 초기부터 2013년까지는 24시간 콜센터를 운영했다. 하지만 현재는 사업효율화를 위해 예약센터보다는 공항 안내카운터 등 현장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내셔널 택시 중 개인택시와 법인택시 기사들 간의 갈등도 문제다. 전체 인터내셔널 택시 374대 중 절반은 개인택시, 절반은 법인택시다. 인터내셔널택시운전자회 4기 회장 김동주(58) 기사는 “‘서울스마트’를 비롯한 법인 택시들은 회사에 많은 사납금을 내야한다. 이들은 택시 서비스 개선을 고민할만한 여유가 없어 인터내셔널 택시를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법인택시 업체 소속인 정승연(51) 기사는 “법인택시를 반대하는 일부 개인택시 기사들의 생각은 잘못됐다”며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법인택시 기사들도 인터내셔널 택시 사업 참여에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인터내셔널택시의 외관. (출처=인터내셔널택시 홈페이지)
 

지난 2009년 서울시는 글로벌 도시로의 도약을 꿈꾸며 야심차게 ‘인터내셔널 택시’ 사업을 시작했다. 택시 기사들은 전직 대기업 해외영업부장 등 색다른 경력을 갖췄으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외국어 면접까지 통과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사업 출범 6년차를 맞은 올해 서울시의 인터내셔널 택시 지원액은 사업 초기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탑승객도 2011년 이래 계속 줄어들고 있다. 수요층인 외국인 손님들이 인터내셔널 택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최근 14기 인터내셔널택시 기사 89명을 추가로 선발했다. 신규기사들은 지난 3월 25일 자격증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내셔널 택시의 운전대를 잡았다. 이에 대해 1기 인터내셔널택시 기사인 정병기 기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2009년 5월 1일. 서울시청에서 발대식을 가졌던 날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해외 언론에서도 많이 취재를 왔었죠. ‘내가 우리나라 이미지를 높이는 민간외교관이 됐구나’하는 생각에 참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요? 그 좋은 취지의 사업이 이렇게 된 걸 생각하면 그냥 가슴이 참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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