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는 1년 365일 공사가 끊이지 않는다. 굴착기 같은 쇳소리가 귀를 때린다. 교통체증, 소음, 먼지 등 불편한 점도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주민들은 필요한 공사이겠거니 생각하며 참는다. 하지만 공사 자체보다 주민들을 더 짜증나게 만드는 것은 완공예정일이 밥 먹듯이 연기된다는 점이다. 완공 예정일이 제때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주민들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서울 시내 몇몇 공사현장을 찾아 알아봤다.

① ‘잘못된 예측’은 피해를 낳고
“공사가 계속 지연돼 빈방으로 놀렸죠 뭐. 다른 데는 전셋값 올린다던데….” 서울 성동구 ‘응봉교 확장 및 성능개선’ 공사 현장 주변의 4층 건물을 소유한 원종아 씨가 털어놨다. 원 씨는 “건물 세입자들에게 ‘공사가 곧 끝나니까 불편을 조금만 감수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완공이 늦춰지면서 방을 빼는 세입자들이 늘었다”며 “빈방을 계속 둘 수가 없어서 결국 전세 보증금을 내린 다음에야 새 세입자를 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응봉교 공사는 응봉동과 상봉동을 잇는 교량을 기존의 4차로에서 6차로로 넓히는 사업이다. 공사는 2008년 10월에 시작했다. 원래 완공 예정일은 2012년 5월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공일이 3년 가까이 늦춰졌다. 완공 예정일이 해마다 밀렸다. 현재는 올 9월 개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는 사이 공사장 주변에선 원 씨처럼 피해를 봤다는 주민이 늘었다. 특히 응봉교 아래로는 응봉초등학교와 광희중학교가 있다. 학생들의 통학로가 계속 변경됐고 수년째 위험한 등하교를 한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주민 김범주 씨는 민원을 통해 “3년이나 공기가 늘었는데 주민들에게 설명하거나 양해를 구하는 과정이 없었다”며 소극적인 행정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에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이석우 주무관은 “현장 상황이 새로 다리를 만드는 것보다 두 배는 어려웠다. 지하 매설물도 예측과 다른 부분이 많아서 옮기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공사 지연 이유를 설명했다. 이 주무관은 “공사 지연 때문에 화를 내는 부분은 100% 공감한다”면서도 “공사 연기를 알리는 현수막도 만들고 인근 아파트 주민들에게 나름대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해명했다.

사진1.  응봉교 확장 공사 하부의 차도와 인도.
(서울 정보소통광장 자료) 

② ‘설계 변경’은 신뢰를 잃게 만들고
“집 빨리 사라고 재촉했는데,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꼴이 돼버렸지.” 구로구 고척동 ‘서남권 돔 야구장’ 공사장 인근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박 모 씨의 말이다. 박 씨는 2009년 2월 착공한 야구장이 2010년 말 완공 예정이라는 말을 믿었다. 아파트 구매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주택 구매를 서두르라고 재촉했다. 다른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실제로 야구장 완공이 곧 될 것으로 생각하고 집을 산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야구장은 돔구장 형태로 설계를 변경하며 완공일이 5년가량 밀렸다.

서울시 체육진흥과 이재익 주무관은 “WBC에서 준우승도 하고 야구 붐이 일어나면서 KBO 등의 야구 단체에서 돔구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견을 반영해서 설계 변경이 이뤄졌다”면서 “새로운 야구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공사 물량이 많아졌고, 사업을 진행하면 지연되는 측면이 발생한다”고 전했다. 이 주무관은 “준공이 늦어진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발표하긴 했지만, 연기되는 게 대놓고 홍보할 사안은 아니라서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박 씨는 “(완공 연기로) 주택 매매자와 중개인이 서로 신뢰를 잃는 문제가 있다”면서 “관계자들이 공사가 언제 끝나는지 주민들에게 정확히 말해주고 그 안에 공사를 끝냈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전했다. 야구장 완공은 6월 중으로 예정돼 있다.

사진2.  서남권 돔 야구장 모습.
(서울 정보소통광장 자료)

③ ‘시뮬레이션 부족’은 재산권 침해를 낳아
“임차료를 내며 장사하는 입장인데, 공사가 길어지면서 매출이 크게 떨어졌어요.” 중구 장충동 ‘동국대입구 빗물저류조 설치’ 공사장 바로 오른편에서 전통찻집을 운영하는 김민석 대표의 속앓이다. 서울시 소유의 전통찻집은 경쟁입찰을 통해 운영자를 선정한다. 김 대표가 서울시에 내는 사용료는 연 1억 원 수준이다.

공사는 2013년 12월에 시작했다. 예정대로라면 지난해 5월 공사를 끝냈어야 한다. 하지만 완공일은 현장 상황이 복잡한 탓에 세 차례 늦춰졌다. 현장 주변의 동국대에서는 입학식과 졸업식, 입학 논술시험 등 여러 행사가 매년 계획돼 있었다. 장충리틀야구장에서도 3월부터 11월까지는 해마다 대회가 열린다. 행사가 있으면 진‧출입차량이 많아서 공사 진행이 어려웠다. 주변 행사와 공사를 연계한 시뮬레이션 없이 사업을 진행하다 일정이 꼬인 것이다.

시행청인 중구청 안전치수과 김묘섭 주무관은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인근 행사까지는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 주무관은 “그래도 최선의 방안을 찾기 위해 대처했고 주변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공사 시간 변경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공사 연기에 관한 사항은 중구청으로부터 들을 수 없었고 답답한 마음에 먼저 문의를 해서 완공 예정일을 알 수 있었다”며 적극적인 행정을 주문했다. 리틀야구연맹의 권기홍 직원도 “중구청과 시공사, 연맹이 서로 조율은 했지만 공사 진척 상황에 대해서는 먼저 문의하곤 했다”고 밝혔다. 현재 빗물저류조 설치 완공 예정일은 3월과 4월 사이로 잡혀있다.

                        사진 3. 장충리틀야구장 입구 부분에 포클레인과 건설 자재들이 엉켜있다.

 이외에도 예산 부족으로 완공이 밀리는 것도 흔한 사례다. 마포구 상암동 IT 콤플렉스 내에 자리 잡을 ‘e스포츠 전용 경기장’은 2009년 4월 공사를 시작해 2012년 10월 완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산 확보가 원활하지 않아 공사는 더디게 진행됐다. 서울시가 예산 조달을 해결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한 탓이다. 현재는 2016년 2월로 완공 예정일을 다시 잡았다. 처음보다 4년 밀린 셈이다. 금천구 독산동과 강남구 수서동을 연결하는 ‘강남순환고속도로’도 완공을 2016년으로 2년 늦추기로 했다. 예산 부족이 이유다.

공사 지연 때는 협조 구하고 소통하는 적극적 행정 필요
성균관대 토목공학과의 윤 모 교수는 “공사는 예산문제, 자재 수급, 시공사 등의 문제로 지연될 수 있다”고 입을 뗐다. 하지만 “완공 예정일은 공사 관계자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는 측면이 크고, 일반 시민들에게 공사를 공지하는 의미도 있다. 될 수 있으면 날짜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누리집에는 서울에서 벌어지는 수십 개의 건설 사업현황이 정리돼 있다. 사업개요와 예산, 완공 예정일 등을 볼 수 있다. 다만 완공 예정일이 밀린 것에 대해서는 살짝 날짜만 바꿔 놓았을 뿐 자세한 설명은 없다. 본래 완공 예정일은 공사 주체가 주민들에게 하는 약속이다. 그런 만큼 약속은 신중히 해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 만에 하나 지키지 못할 때면 이유를 공개하고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옳다. 그게 세금으로 공사비를 댄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반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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