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UC 데이비스 대학에서 교환학생을 지낸 최 모(24) 씨는 영문과 수업에서 다섯 쪽짜리 작문 과제를 냈다가 퇴출 경고를 받았다. 미국 추리소설 창시자라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대표작, ‘어셔가의 몰락‘과 몇 단어가 겹친다는 이유였다. 최 씨가 돌려받은 과제엔 두 단어씩 세 군데에 형광 표시가 돼 있었다. 조교는 단어 두 개라도 그냥 쓰면 ‘표절’이라 말했다. 한국에선 표절 시비는커녕 지적 한번 받은 적 없는 모범생 최 씨였다.

이처럼 외국으로 파견된 국내 학생 중 국내 대학과 외국 대학의 표절규정 차이로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대학에서라면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 외국 대학에선 용인될 수 없는 표절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유명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A(24) 씨 역시 불명예스런 경고를 받았다. 기말 대체 과제를 작성하면서 각주 몇 개를 누락했기 때문이었다. 이 대학엔 학생들이 인용법 등의 형식을 지켰는지 점검하는 부서가 따로 있는데 그 검증망에 걸리고 만 것이다.

"인용할 땐 토씨 하나도 빠뜨려선 안 됐어요." 영국 레스터 대학에서 공부했던 강민영(22) 씨의 말이다. 강 씨는 학과가 지정한 인용 형식에 맞춰 참고 자료의 쪽수까지 정확하게 적어내야 했다. 누락된 정보가 발견되면 해당 자료 어느 페이지를 참고한 것이냐는 교수의 지적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독일에선 발표 자료 역시 출처를 안 밝히면 표절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파견된 백재은(25) 씨는 “독일 대학은 표절에 대해선 어떤 관용도 없다”면서 사소한 인용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외국에서 까다로운 표절규정으로 힘들었던 국내 학생들처럼 한국에 온 외국 학생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을까.

“표절을 따로 점검하지 않아 훨씬 부담이 적었어요.“ 국내 유명 대학의 교환학생이었던 싱가포르 출신 아이리스 첸(24) 씨의 말이다. 그녀가 듣던 수업 중 미국인 교수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한국 교수들은 표절 검토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던 것이다.

캐나다 출신 사라 소니(22) 씨도 “한국 과제가 시간도 적게 걸리고 쉬워요”라 말했다. 캐나다에선 교수마다 특정 인용형식을 명시해 지키도록 하는 반면 한국 교수는 표절하지 말라는 주의만 줬기 때문이다. 사라 씨가 들었던 수업 중 참고목록을 요구했던 수업은 단 하나였다.

독일에서 온 비비안나 볼프(23) 씨 역시 한국 대학에선 지켜야 할 인용규정이 많지 않아 숙제하기가 수월했다고 전했다. 독일 대학엔 세세한 인용규정들이 많고 그것을 엄격히 지켜야 하는데 한국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국내 학생과 외국 학생들의 모습이 이토록 상반된 배경엔 국내 대학들의 허술한 표절 검증 시스템이 있었다. 서울교육대학 이인재 교수가 작년 7월에 발표한 '국내 연구윤리 활동 실태 조사 연구'에 따르면 4년제 대학 168개 중 24개(14.3%)를 제외한 144개(85.7%)는 표절 여부를 가릴 어떤 규정과 절차도 마련하지 않았다.

‘턴잇인(Turnitin)'과 같은 표절 검증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대학 수(135개)도 사용하는 수(33개)보다 4배 이상 많았다. 앞으로 도입하겠단 대학도 69개(51.1%)로 66개 대학(48.9%)은 여전히 의지가 없었다.

이렇다보니 외국 학생들 눈엔 한국 풍경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한국 학생들은 표절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아 놀랐어요." 서울 유명 사립대에서 공부했던 한 교환학생(21, 캐나다)의 말이다. 그녀는 한국 학생들이 외국 학생들 보다 표절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 대학에서 표절을 한 학생들은 매우 많았다. 서울 유명 사립대에 재학 중인 조 모 씨(25)는 지금껏 과제를 하면서 몇 번을 베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1, 2학년 땐 표절 안 하는 친구를 찾는 게 더 힘들다“고 털어놨다. 이 밖에 법원 판결 감상문을 쓰는데 선배 자료를 베꼈다는 홍익대 이 모(22) 씨, 번역 숙제를 위해 과제 대행 사이트인 '해피캠퍼스'를 이용했다는 한국외대 신 모(24) 씨, 친구들 과제를 짜깁기해 실험 보고서를 썼다는 성균관대 이 모(24) 씨 등 사례는 다양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표절예방교육을 강화하겠단 대학은 31개(18.5%)에 불과했다. 전문 강사를 초빙하고 교육 자료를 마련하는 데 예산 부족 등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는 게 이유였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김소임 박사는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해 표절이 한국인의 부정적 특성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하다"고 밝히면서도 우리는 ‘무엇이 표절이고 왜 문제가 되는지’를 제대로 학습한 적이 없었는데 이를 성찰하면서 배워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하홍규 교수도 “표절이 적발되면 억울하게 생각하는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면서 표절 예방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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