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산 의약품 사용설명서의 놀라운 진실

"안전한 진통제의 선구자” 한 진통제 소개 홈페이지 ‘브랜드 소개’ 페이지에 있는 제품 설명문의 제목이다. 이 진통제는 의사의 처방전이 없어도 누구나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제품이다. 두통이건 치통이건, 생리통이건, 신경통이건 통증만 나타나면 남녀노소 누구나 이 제품을 떠올릴 정도로 널리 사용된다. ‘국민 진통제’로 불릴 정도다.  이 약의 제품 설명에는 “미국 의사들이 다른 진통제보다 (이 제품을 더) 추천한다” “안전성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노력으로 인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주로 제품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내용들이다. 

 
▲ 모 진통제 소개 홈페이지 브랜드 소개란 캡쳐 사진
그러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홈페이지에는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 미국에서 무려 43000명이 이 성분의 약을 먹고 나서 병원 응급실 신세를 졌다는 내용이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불과 7년 사이에 나타난 부작용 사례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약을 먹고 간이 손상돼 병원 입원치료를 받은 미국인도 23811명(1990년~1999년까지 10년간)이나 되고, 숨진 사람도 358명(1996년~1998년 3년간)에 이른다. 적정 복용량을 지켰는데도 부작용이 나타난 사례는 이 정도다.
 
 
▲ 미국 FDA 홈페이지 관련 설명 캡쳐 사진가운데 설명란의 상자 부분에 이 약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 수치가 나온다. 과량복용 경우를 포함한 응급실 내방 총수가 56000명, 입원이 26000명, 사망이 458명으로 기록돼있다.적정량을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을 겪은 사례가 응급실 내방 43000명, 입원 23811명, 사망 358명으로 나타난다.
이 뿐이 아니다. 캐나다에도 이 약으로 인한 사고나 부작용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2014년 2월 21일에 있었던 토론토 스타지의 보도를 보자. 토론토 스타지는 캐나다 통계 데이터베이스를 인용해 이 약 성분이 사망의 주원인이거나 사망에 기여한 사례가 2000년부터 2009년 사이에 253건에 이르고, 2005년부터 2013년 사이에 이 약 성분 때문인 것으로 의심되는 부작용 사례가 2402건에 달했다는 것이다. 이 중 287건은 사망 사고였다. 
▲ 토론토 스타지(thestar.com)의 2014년 2월 21일자 관련 기사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2014년 10월 7일 새누리당의 신경림 의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 약 때문에 숨지거나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137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신 의원은 “문제의 약은 편의점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이라 과다복용의 위험이 크다“며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이 약 성분의 부작용 평가를 촉구했다. 
 
이 진통제 홈페이지나 제품에 동봉된 사용설명서가 부작용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기는 하다. 사용상의 주의사항이 그것이다. “매일 3잔 이상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간이 손상될 수 있다”거나 “매우 드물게 갑자기 온몸에 고름 물집이 생길 수 있다”거나 “과량을 투약하면 신장이나 심근에 괴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등의 설명이 주의사항에 들어있다. 그러나 간 손상, 고름 물집 발생, 신장 또는 심장 괴사의 위험이 어느 정도나 높은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전혀 없다. 그저 그런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을 간단히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제약회사는 혹시 환자가 편의점에서 이 약을 사려고 할 때 부작용 가능성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
 
이 진통제에만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안전상비의약품들이 대체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안전상비의약품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13종류의 일반 의약품이다. 이 종류의 약들은 2012년 11월부터 약국이 아니라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다. 수 있게 2013년 한 해 동안 편의점에서 팔린 약은 모두 154억 3천 9백만 원어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3 완제의약품 유통정보통계집) 계열별로는 해열 진통제가 105억 원, 소화제가 24억 7천여만 원 가량 팔렸다. 가장 많이 팔린 약은 해열 진통제로 52억 8천 3백만 원, 판매량으로 따지면 무려 211만 3천 갑이었다. 
 
편의점에서 12살만 넘으면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감기약의 경우를 보자. 이런 약에는 항히스타민제 성분이 들어있다. 이 성분을 먹으면 쉽게 졸릴 수 있기 때문에 미국 노인병학회가 65세 이상 고령자에게는 이 약의 처방과 투여를 제한하고 있다. 낙상사고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면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2014년 5월, 이 성분이 들어간 약을 ‘노인 주의 의약품’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편의점 판매 감기약의 포장용기나 설명서에는 졸음이나 낙상사고 위험성에 대한 언급이나 고령자 주의사항이 전혀 없다. 
▲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4년 5월 보도자료(왼쪽)와 관련 감기약의 사용설명(오른쪽)심평원은 클로로페니라민(항히스타민제 성분)을 노인주의의약품으로 지정했으나,이 성분이 들어간 편의점 판매 감기약의 사용설명문에는 관련 언급이 전혀 없다
편의점 판매 소화제도 부작용 가능성을 충분히 경고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4종류의 소화제는 모두 동물의 췌장에서 추출한 소화효소로 만든다. 이런 소화요소는 인간의 몸과는 다른 이물질이기 때문에 발진과 설사 같은 일종의 거부반응이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소화제의 포장용기나 설명서에는 이런 부작용에 대한 안내가 없다. 대한약사회 약바로쓰기운동본부 홍보팀장인 신경도씨는 “약국이나 병원 처방약들은 약사나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따져 복용량과 복용방법을 지도해주기 때문에 복용량만 잘 지키면 부작용 위험이 적지만, (아무리 가벼운 증상에 먹는 것이라고 해도)편의점 판매 약들은 약사나 의사의 통제가 없기 때문에 과다복용 가능성이나 이에 따른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국무총리령인 의약품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제 71조 8항은 제약회사가 ‘(약품) 사용상의 주의사항을 알아보기 쉽도록 명확하게 기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의 위험이 얼마나 큰지 부작용 환자나 사망자가 얼마나 많이 나타나고 있는지 까지 알리도록 의무화한 것은 아니다.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만 알리면 아무 문제가 없도록 돼있는 것이다.  
 
미국도 부작용의 위험정도를 구체적으로 약품 사용설명서에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보완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FDA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약 이름이나 성분만 검색하면 그 약이나 성분으로 인한 부작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금방 쉽게 알 수 있다. 부작용으로는 어떤 종류가 나타나고 있고, 발생 건수가 얼마나 되고, 그 부작용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 부작용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2014년에서야 의약품 안전관리원 홈페이지를 통해 11개 성분에 대한 ‘실마리 정보’ 일부를 공개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관련기관들은 FDA처럼 부작용을 본격적으로 공개한 적은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의약품안전관리원의 우연주 선임연구원은 “(신경림 의원실이 발표한 경우처럼) 수집된 의약품 관련 부작용 사례는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것” 이라며 “해당 의약품 복용이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 확실할 때만 공개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안전상비의약품의 국내 부작용 사례와 관련해 최초로 문제를 제기했던 신경림 의원실의 입장은 이와는 달랐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곧 안전한 것으로 봐서는 곤란하다”는 것 이었다. 신 의원실의 이윤정 보좌관은 “2001년 이후 국내에서 외국산 신약이 허가를 받으려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추가 임상시험을 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효과나 부작용에 나타날 수 있는 인종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제도를 도입한 격인데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고 해서 해당 진통제에 대해서는 추가 임상을 하지 않도록 결정됐다”고 했다. 효력이나 부작용 면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믿을만한 결과는 아직 없는 셈이다. 또 신 의원실에서는 “지난 국감 이후로도 의약품 안전성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추가 임상 실시 요구 등 안전성 확보 방안을 관계부처에 계속해서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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