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사회적 기업 ‘더 브릿지’ 황진솔 대표

예전에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 가서 우물을 파주던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가 됐었다. 생명수가 콸콸 터져 나오는 기적과도 같은 장면에서 현지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그 프로그램은 종영했지만, 지금도 제3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우물을 파주는’ 감동을 실현하고 있는 청년이 있다. 물론 차이는 있다. 그에게는 힘든 일을 거뜬히 해치워줄 든든한 인부들도, 감격의 순간을 화려하게 담아줄 카메라도, 노고를 알아주는 시청자들의 박수도 없다. 대신 그는 7명 남짓 되는 동료들과 조용하고도 꾸준하게 ‘제3세계의 기적’을 일궈나가고 있다. 비영리 사회적 기업 ‘더 브릿지’의 창업자 황진솔(35)씨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기적 효과 있는 현지인 농업·창업 지원

“인터넷 크라우드 펀딩으로 시민들의 기부금을 모아,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게 돕는 거죠.” 스타트업 더 브릿지의 활동에 대한 그의 요약이다.

“다양한 기부단체들이 기부금을 모으지만, 저희는 단순히 물질적 지원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자립을 위한 토대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가장 크게 달라요.” 일시적인 의료나 식료품 조달이 아닌, 오래도록 현지인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즈니스의 성장을 돕는다는 것이다. 더 브릿지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봤더니, 지금도 탈북 청년들의 커피숍 창업, 필리핀의 농업 등을 지원하자며 정해진 날짜까지의 기부금 모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황 씨가 창업을 한 지 벌써 2년 째, 그는 그간 약 10여개 가량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가나 여성들의 바구니 만들기 협동조합을 돕는 프로젝트, 르완다의 청년실업을 완화하는 당근농장 만들기 등을 성공시키며 더브릿지는 성장할 수 있었다.

수익을 내야 하는 사업이지만 더 브릿지가 얻는 실질적인 수익은 많지 않다. “일반적인 크라우드 펀딩 회사의 수익 모델은, 기부금을 모아주고 대신 그 돈에서 수수료를 떼는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모인 기부금을 100% 다 현지에 보내죠. 대신 그들이 자립을 해 사업이 성장하면, 이자 없이 최대 원금 정도만 저희에게 상환하는 겁니다. 100%상환 못해도 30%든 80%든 가능한 만큼이요. 잘 되면 본전, 안되면 마이너스인 셈이죠.” 원금이 상환되면 거기서 50%만 운영자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기부자들에게 포인트로 돌려주어 또 다른 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 그들은 이를 ‘임팩트 기부’라 부른다.

그렇다면 이런 가혹한(?) 시스템으로 사업을 운영하게 된 이유는 뭘까. “일부러 그랬어요. 수수료를 먼저 떼면, 사실 기부금을 받는 사람들이 자립을 하든 안 하든 우리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 되거든요.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죠. 하지만 수수료를 나중에 떼면, 그들의 자립이 우리의 생존과 직결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절실하게 그들의 성공을 바랄 수밖에 없게 돼요.” 상생 관계를 비즈니스 모델 자체로 직결시켜, 전력을 다해 그들을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단순히 기부금 순환에서 그치지 않는다. 프로젝트가 한 차례 성공할 때마다 그들은 그 사업으로 인해 일어난 ‘소셜 임팩트(사회적 가치)’를 분석한다. “기부자가 1만 원을 투자해서 실질적으로는 7천 원만 돌아왔다 해도, 그 프로젝트로 인해 인권, 환경, 보건 등에서 어떤 발전이 이뤄졌는지를 수치상으로 계산해 기부자에게 모두 보여줍니다.” 그들의 분석 능력은 두루 인정받아 정부 용역으로 코이카 사업을 분석하고, 개도국 현지 기업가를 교육하는 일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자본금 0원으로 시작.. 한국 유학 마친 현지인 공략

그가 이 사업을 시작하는 계기는 한동대 재학 시절 만난 개발도상국 출신 유학생들 때문이었다. “자기 나라를 발전시키는 꿈을 꾸며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가지만, 정작 돌아가서는 역량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니까요. 그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들은 더 브릿지 사업의 시작이었고 이후에도 중요한 연결선이 됐다. “한국에서 교육받고 돌아가는 개도국 친구들이 사업 파트너가 되곤 합니다. 친구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회적 신념이 건강하다는 확신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처음 시작할 때 자본금은 0원이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개발비와 점심값 지원 정도만 들여 시작했어요. 공간도 아는 사람 통해 얹혀 사용하기도 하고, 교회의 빈 공간을 쓰기도 했고요. 국가적으로 스타트업 지원은 많아지고 있지만, 주로 이공계나 기술 쪽이니까요. 저희는 순전히 아이디어로 시작했으니 힘들 수밖에 없었죠.” 사업의 스타팅 멤버는 1년 여간 급여 없이 일을 하기도 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돈보다도 이 사업이 갖는 사회적 가치에 강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월의식은 금물, 현지인 판단 존중해야

하지만 신념만 있다고 될 문제는 아니었다. “지난 해 봄에 시작한 프로젝트 중 하나가 바로 캄보디아 현지 기업의 태양광 사업 지원이었어요. 캄보디아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건 그들의 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죠.” 황씨가 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설명하며 기부금을 모으는 글을 올리자, 나름대로 태양광 에너지에 지식이 있다는 사람들의 비판 댓글들이 달렸다. ‘낙후된 캄보디아에서 태양광 사업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뭘 알고나 기부를 해달라는 거냐, 사기 치는 것 아니냐’는 댓글들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는 사람들이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여태껏 태양광 시스템은 국제기구나 정부 원조를 통해 개도국에 들어가도 성공한 사례가 드물거든요. 무작정 설비를 설치해 줘도, 현지인들은 다루는 법을 모르잖아요. 꾸준한 유지·보수가 안 되니 1,2년 안에 쓰레기가 되죠.” 이런 맹점을 극복하고자 더 브릿지는 현지의 사회적 기업 LES와 연계했다.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는 캄보디아인들에게 교육을 시켜주고 관리하는 방법도 알려줬다. 고장 나면 마을마다 설치된 LES 기술센터를 통해 수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결국 마을 주민들의 편의도 높아지고, 에너지에 대한 지식수준도 넓어졌다.

“이 사업을 하면서, 도움을 주는 이들의 고정관념이 이토록 크구나 하는 걸 많이 느껴요. ‘선진국으로서 진보된 기술과 지식을 알고 있으니, 너희들의 상황에 대해서 내가 판단하고 알아서 좋은 걸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코 다쳐요.” 황씨는 철저하게 현지인들의 판단을 신뢰하고 ‘적선(積善)’이 아니라 그들을 삶의 ‘주인공’으로, 주체로 만들어주겠다는 마음가짐이 더 브릿지의 신념이라고 했다. 자칫하면 선진국에 대한 개도국의 의존성만 높일 뿐, 자립을 돕지는 못해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한국이 아니라 개도국을 돕는가?
사업은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후원자들도 늘고 있지만, 타깃이 한국의 기업도 아니다보니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렵다. 개도국을 돕자는 사람들에게 늘 던져지는, ‘한국에도 불쌍한 사람 많은데 왜 해외의 사람들을 돕느냐’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우선 저희는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충분히 열정 있고 능력 되는 해외의 사업가들에게 투자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개도국이라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형적인 구도를 타파하고 싶었다고 그는 얘기했다.

“그리고 저희는 한국 청년들이 개도국에 나가서 창업하는 것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게 저희의 최종적인 그림이기도 하고요. 한국에서 사업하러 나갈 때면 개도국의 저렴한 노동력만 바라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현지인들이 직접 개도국 사람들을 교육하고 마케팅하고, 한국 기업가들은 기술을 전수하는 식으로 창업하면 성공률이 훨씬 높아요. 그 기반을 다져주고 싶은 거죠.” 한국의 작은 내수 시장을 생각하면, 이런 방식의 해외 일자리 창출을 돕는 게 궁극적으로는 한국을 돕는 게 아니겠냐고 그는 되물었다.

선한 마음이지만 받는 이들을 의존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부’와 누군가의 자립과 성장을 돕지만 수익창출도 중요한 ‘투자’, 이 두 가지에서 장점만 따와 긍정적으로 자본을 순환시키는 것이 더 브릿지의 최종 목표다.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공생하자는 신념이 새로운 시대의 원동력이 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계속 이 사업을 할 거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인 황씨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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