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창경궁?”

외국인 관광객 한센 씨는 겨울비 사이로 뛰어다니며 문이 열리는 버스마다 기사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창경궁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왔지만 노선도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버스정류장 이름이 인근 지하철역 이름과 동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정류장이 한글로 쓰여 있어서 어느 버스를 타고 창경궁에 가야할지 알 수 없었다.

미국인 관광객 나탈리 씨도 버스를 이용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창덕궁에 가기 위해 숙소에서 버스 번호를 알아보고 탑승했지만 버스 안에서 한참을 헤맨 후에야 목적지에 내릴 수 있었다. 버스 안에 게시된 노선도가 한글로만 쓰여 있어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버스를 제대로 탄 건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물론 버스에는 정류장 안내방송이 있다. 그러나 이번 정류장과 다음 정류장을 모두 한국어로 방송하는 것과 달리, 영어로는 이번 정류장만 안내한다. 그러다보니 정류장 간 거리가 짧으면 하차 직전에야 영어로 방송이 나와 많은 외국인들이 부랴부랴 내릴 수밖에 없다. 앰버 씨는 다음 정류장도 영어로 안내방송을 해서 외국인들이 미리 내릴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4년 외국인 관광객 수는 1,400만 명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이들이 버스를 이용하기란 여전히 불편하다. 명동, 창덕궁, 창경궁, 한옥마을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 주변 정류장 노선에도 외국어 병기는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 20명에게 물어본 결과, 언어적인 불편함으로 버스를 탈 때 어려움을 겪었거나 아예 탈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답한 사람이 18명에 달했다.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캐나다인 소피 씨는 “지금은 한국 대중교통 시스템에 만족하지만 처음에는 매우 헷갈렸다”며 “한글을 배운 후에야 버스를 쉽게 탈 수 있었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관광객 멜라와티 씨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 길을 물어보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버스 노선도에 영어를 병기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안 마련이 쉽지는 않다. 우선 모든 정류장에 영어를 병기하기는 어렵다. 버스 노선도가 작아서 병기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선도의 크기를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울시청 온순현 주무관은 “정류장엔 관광지 위주로 영어 표기를 확대하고 버스 안에는 별도의 영어 노선 지도를 부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자식 노선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전자식 노선도는 언어를 선택할 수 있고 목적지에 가는 노선 검색도 할 수 있어 외국인들이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치비용이 문제다.

영어 안내방송 역시 간단치 않다. 온 주무관은 “정류장 방송에 광고 방송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 정류장까지 영어 방송을 하는 것은 힘들다”고 밝혔다. 방송이 길면 정류장에 도착한 후에도 방송이 계속되다보니 더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스페인 관광객 네리아 씨는 “버스 노선이 영어로 표기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있으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버스를 이용하기 편할 것”이라고 밝혔다.

 

▲ 버스 정류장 노선도(위)는 지하철역 정류장만 영어 병기가 돼있다. 버스 내부에 게시된 노선도(아래)는 외국어 병기가 아예 없다. 창경궁, 창덕궁, 명동 등 관광지조차 외국어 병기가 돼있지 않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