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이 가고 ‘쿡(Cook)방’이 왔다. 요리 전문 채널인 OliveTV 를 포함해 케이블과 공중파까지, ‘요리 하고 먹는 방송’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 OliveTV의 ‘오늘 뭐 먹지?’ , ‘올리브쇼2015’, tvN의 ‘삼시세끼’가 쿡방의 대표주자다. 이 외에도 케이블 채널과 공중파에서 방송되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모두 합치면 10개가 훌쩍 넘는다.

과거 대부분 2%대에 머물던 케이블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연일 고공행진을 벌이는 것에도 ‘쿡방’의 공이 크다. 지난 6일 방송된 tvN의 ‘삼시세끼’는 최고 16.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4주 연속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 JTBC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냉장고를 부탁해’도 분당 최고 시청률 4.9%를 돌파하며 종편 예능프로그램의 강자로 떠올랐다.

쿡방 열풍 속에서 맹활약중인 ‘셰프테이너’들도 눈에 띈다. ‘셰프테이너’는 ‘Chef’와 ‘Entertainer’의 합성어로 요리 실력과 예능감을 두루 갖춘 셰프들을 말한다. 강레오, 최현석, 샘킴, 오세득, 레이먼킴, 이원일, 채낙영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셰프들을 나열하면 열손가락이 모자란다.

그렇다면 셰프테이너들이 직접 보는 ‘쿡방’은 어떨까?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이원일 셰프와 OliveTV ‘올리브쇼2015’의 채낙영 셰프를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다.

 쿡방의 인기비결은? - “리얼리티”

JTBC<냉장고를 부탁해>의 이원일 셰프

지난 3일 저녁,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인턴 셰프’를 맡고 있는 이원일 셰프를 만났다. 그가 직접 운영하는 베이커리 ‘디어브레드’에서였다. 손님들과 웃으며 인사하랴, 인터뷰 하랴, 통화하랴 정신없는 그에게 동료 셰프가 말했다. “스타 쉐프는 피곤하구만. 난 안 할래.”
 
‘냉장고를 부탁해’는 게스트의 냉장고를 그대로 스튜디오에 옮겨 그 재료로 요리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승패의 결정은 게스트의 몫이다. 사석에선 모두 친한 형, 동생이지만 요리만큼은 자존심을 건 경쟁이다.
 
-요리 메뉴를 즉석에서 정한다고 들었는데, 메뉴를 정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결정하시나요?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결정해요. 촬영 시간 짬짬이 저희들도 머릿속으로 광속 회전을 하는 거죠. 다들 요리사다 보니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음식들, 자신 있는 음식들, 여기에 비주얼까지, 모든 것들이 리스트업 돼 있거든요. 그 중에서 ‘이건 요리사만 할 수 있는 요리다’ 싶은 어려운 음식은 잘 안 하고, 시청자들이 따라할 수 있는 요리인지 생각해서 결정해요.”
 
-그럼 공개적으로 요리 실력을 평가받는 게 부담스럽진 않으세요? 자존심 대결인데.
  “저희는 요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맛을 내는 데는 모두 자기만의 방법이 있고, 그 정도의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이 겨루는 자리더라구요. 저에게도 내가 질 것 같은 메뉴, 저분이 이길 것 같은 메뉴 이런 것들이 분명 있지만, 자존심이나 평가보다는 ‘저분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꼭 이기더라구요.”
 
 -지금 출연하고 계신 ‘냉장고를 부탁해’는 요리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예능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요리사로서 출연하고 있어요. 예능적인 부분은 담당해주는 분들이 따로 계시죠. 두 가지가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고 생각해요. 재료나 방법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요리 프로그램의 느낌도 있지만, 시청률과 싸워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예능의 성격이 조금 더 강한 것 같기도 해요. 그렇다고 요리에 소홀한 건 아니구요. 예전 요리 프로그램들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경우는 확실히 뺄 건 빼고, 거기다가 맛나는 재료를 딱 넣은 거죠.”
 
-소위 ‘셰프테이너’들에 대해 일반 셰프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없나요?
  “그런 건 어느 분야에나 존재하는 것 같아요. 의사를 예로 들면, TV에 출연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TV에 출연 안하셔도 실력 출중하신 분들이 계신 것처럼. 요리 업계도 그래요. 저도 한식 분야에서 최고이기 때문에 나가는 것이 아니고, 그분들이 원하는 컨셉과 맞았던 거죠.”
 
 -셰프님의 컨셉은 뭔가요?
  “‘한식을 하는 젊은 요리사’요. 젊은 양식 요리사는 수도 없이 많지만 한식을 하는 젊은 요리 사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하나 보일까 말까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운이 좋았죠.”
 
-요즘 요리프로그램, ‘쿡방’들이 인기가 많아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대리만족’이 가장 큰 것 같아요. ‘내가 못하는 걸 저렇게 하는구나.’하고요. 또 요즘은 리얼리티를 굉장히 강조하잖아요. 그동안 미디어에서 비춰지지 않았던 직군의 속살을 보고 싶어하는, ‘리얼리티에 대한 갈구’가 있는 것 같아요. 요리는 의식주 중 하나잖아요. 누구나 삼시 세끼를 매일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자신에게도 익숙한 것들을 전문 직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음식을 어떻게 하는가 ,어떤 재료들을 냉장고에 구비하고 있나, 그런 것들을 지켜보는 재미. 그게 인기 요인인 것 같아요.”
 
-쿡방 이후로 한국에서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많이 다르죠. 전에 요리사는 음식 만들어대던 기계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하나의 직군으로 당당하게 인정받죠. 요리사들이 스스로 자기 직군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직업의식을 가지다 보니 위상이 변하는 거 같아요. 긍정적인 방향으로요. 아쉬운 점은 ‘셰프’라는 문화가 외국에서 들어온 문화이다 보니 한식에 대해선 아직 정착이 안 됐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더 노력하려고 해요.”

남자 셰프가 뜨는 이유는? - “보는 사람들이 여자들이라서”


                               OliveTV<올리브쇼 2015>의 채낙영 셰프
 작년 OliveTV ‘셰프의 야식’과 ‘올리브쇼 2014’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채낙영(29) 셰프. 지난 5일 오후, 그가 직접 운영하는 광진구의 ‘소년상회’에서 사십 분 가량 대화를 나눴다. 방송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 편안하고 스스럼없는 모습이었다. 끊임없이 장난을 거는 채낙영 셰프의 애견 ‘바키’도 함께였다.
 
- 처음 방송에 셰프로 출연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어땠나요?
  “알겠다 그랬죠. 원래 제 성격이 남한테 보여주기 좋아하는 성격이어서요. 싫었으면 나가지 않았겠죠. 재미 없으면 안 하니까. 원래 재밌으면 하거든요.”
 
 - 왜 출연해주면 좋겠다고 하시던가요?
  “제가 말을 재밌게 하고, 요리사들 중에선 끼가 좀 있으니까요. 올리브쇼 초기엔 요리사 여러 명이 토크 하는 포맷이었는데, 저한테 ‘나이 많은 셰프들을 디스(‘disrespect’의 줄임말로,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단점을 드러내는 행동을 일컫는 속어)하는 역할’을 기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모두를 이어주는 허브 같은 역할? 근데 제 성격이 재밌긴 하지만 누굴 디스하고 그런 건 잘 못해요.

 -요즘 유행하는 요리 프로그램, ‘쿡방’이 쉐프들의 위상을 높였다고 생각하세요?
  “그쵸. 높였다고 생각해요 진짜로. 부정적인 생각이 안 들어요. 전체적으로는 요리사들한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셰프테이너’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선 어떠세요?
  “전 아무 생각 없는데, 너무 연예인처럼만 비치는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요즘 대세인 최현석 셰프나 오세득 셰프 같은 분들이야 워낙 실력도 좋고 내공이 강하신 분들이고. 오히려 좀 늦게 터졌어요. 요리 붐이 생기고 유행이 됐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준비된 분들이 가장 먼저 나가는 거죠.”
 
-일반인의 시선 말고, 전문으로 요리하는 분들의 ‘셰프테이너’에 대한 시선은 어떤가요?
  “너무 무분별한 건 안 좋다고 생각하죠. 적당한 선에서 해야죠. 왜냐면 가장 있어야할 곳은 자기 매장인데, 방송 활동 너무 많이 하면 요리사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맨날 나가 있으니까요. 아예 방송만 하는 셰프들도 있어요. 자기 매장이 없고. 그런 사람들은 좋아보이진 않아요.”
 
-요즘 요리프로그램, 쿡방이 인기가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얼마 전에 광고 미팅을 하면서 이런 얘길 들었어요. 우리도 이제 먹고 살 만 해졌다는 거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라이프’쪽에 더 관심이 생기는 거예요. 전 언젠간 당연히 이렇게 주목받을 줄 알았어요. 일본에선 10년도 더 전부터 요리사가 인기가 좋았거든요. 나리사와 요시히로처럼 ‘스타쉐프’란 개념도 훨씬 먼저 있었고요. 제이미 올리버가 몇 년 전부터 인기가 좋았잖아요, 혼자 요리하면서 말하는 게요. 그때 한국엔 그런 사람이 없었지만 이제 한국에도 인지도 있는 사람이 많이 생기니까 이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불편하진 않으세요?
  “그런 것 없어요. 좋아요. 그 정도로 유명한 게 아니기 때문에. 저는 옛날부터 TV 방송을 참 좋아했거든요. 제 꿈은 무한도전에 나가는 거예요. 두 번만 나가면 모든 방송 활동을 안 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이렇게 하면 언젠간 무한도전에 얼굴이나 한 번 비춰지지 않을까요? 무한도전 보는 사람들은 그런 로망이 있잖아요. 내가 제 7의 멤버가 된다면? 이런 로망. 제가 연예인을 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생각 해봤어요.”
 
 -재밌는 캐릭터시잖아요. 셰프 안하셨으면 방송 쪽 일을 하셨을까요?
  “KBS 개그맨 시험도 한 번 쳐봤어요. 2차까지 붙었는데 떨어졌죠. 엄숙한 분위기에서 개그를 하려니까 긴장돼서 못 하겠더라고요. 원래 어렸을 때부터 나서는 거 좋아했어요. 클럽도 많이 다니고. 제가 경주 출신인데 ‘신식 문물’도 좀 빨리 받아들였고요. 대학 땐 가끔 교수님 대신 제가 한 시간 강의하고 그랬어요. ‘서울에 클럽 가는 방법’ 같은 거. 어렸을 때부터 꿈이 요리사였는데, ‘내가 TV나와서 요리할거다’ 그런 얘기도 많이 했어요.”
 
 -원래 요리는 여자 몫이었는데 왜 남자 쉐프들이 뜨는 걸까요?
  “단순해요. 그런 요리 프로 보는 사람들이 여자들이라서. 올리브쇼를 보는 남녀 비율이 거의 8.5:1.5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굳이 여자를 쓸 필요가 없죠. 올리브쇼는 또 광고 이렇게 하잖아요. ‘훈남들의 푸드가이드 올리브 쇼!’ 딱 하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요리

쿡방의 인기 요인은 한가지로 정의하기 어렵다. 1인 가구의 증가, 고급 먹거리에 대한 욕구, 대리만족 등  다양한 각도에서 짚어볼 수 있다. 여기에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인기가 높아진 것도 한 몫 한다. ‘요즘은 어떤 채널을 틀어도 요리 프로’라며 불평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컨텐츠라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 누구나 하루 한 번은 ‘뭐 먹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방송사에서 ‘쿡방’을 연출하는 한 PD는, “요리 프로그램은 다른 방송보다 재료나 설비 등 제작비가 더 많이 들지만 ‘음식’이라는 컨텐츠 자체의 매력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은 별다른 포장을 하지 않아도 그림이 좋고, 특별한 스토리 없이 그 자체로도 가능한 컨텐츠라는 거다. 그는 또 “의식주의 하나이기 때문에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라는 점이 매력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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