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머거리다’. 제목 치고는 아무래도 도발적이다. ‘나는 000다’라는 신조어 열풍이 최근 불었다지만 이건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그것이 인터넷 만화의 제목이고, 그 작가가 청각장애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담아낸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다. 이 만화는 아마추어 작품 가운데 인기작만 선정되는 네이버 베스트 도전 코너에 벌써 51회째 연재중이다. 막연히 ‘장애인을 도웁시다!’라고 외치는 캠페인 만화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장애를 다뤘지만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다. 오히려 유쾌하고 더러는 가볍다. 제목부터 그림까지 눈길을 사로잡는 이 만화.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의 작가 라일라(27)를 만났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한 선천적 장애인인데, 양쪽 귀의 청력 손실이 113 데시벨(dB)이죠. 그래서 120 데시벨인 비행기 소리는 진동으로나마 느낄 수 있지만 100 데시벨인 기차 소리, 80 데시벨인 매미 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아요.”

 청각장애인이 어떤 소리는 듣고, 어떤 소리는 듣지 못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청각장애인은 청력 손실의 정도에 따라 네 종류로 나뉜다. 평형감각이 손실된 경우, 말소리의 명료도가 50퍼센트 이하인 경우, 두 귀의 청력 손실이 각각 80과 40 데시벨 이상인 경우, 그리고 라일라처럼 두 귀의 청력 손실이 각각 60데시벨 이상인 경우다. 누군가에게는 기초 상식이겠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의 무지(無知)를 그녀의 웹툰에서 깨닫는다. 이처럼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는 ‘아하, 그렇구나’라는 말이 나오게끔 하는 청각장애인에 관한 지식과 정보들로 가득하다.

 라일라는 웹툰을 비장애인들과의 소통 도구로 활용한다. 무지에 눈뜬 독자들은 전에는 무관심했던 것들에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댓글에 나타난 누리꾼들의 의견과 의문사항을 작품에 반영한다. 독자가 댓글로 묻고, 작가는 만화로 답하는 주고받음을 통해 ‘발음’이라는 에피소드가 완성됐다.

 “어떤 누리꾼이 청각장애인들은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말을 하는 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댓글을 달았어요. 그래서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배우는 방법을 4회에 걸쳐 실었어요. 어머니가 일일이 입과 목, 혀를 만져가면서 자음과 모음을 한 자 한 자 가르쳤던 기억, 쌀가마니를 제 배 위에 떨어뜨리면서 호흡을 배웠던 기억을 총동원했죠.”

 소통의 결과일까. 만화를 둘러싼 독자들의 반응은 회를 거듭할수록 뜨거워졌다. ‘만화를 보면서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ranc****)라는 비장애인들의 인식 전환에서부터 ‘저도 장애인인데 열심히 삶에 임하겠습니다’ (fly****) 같은 장애인 독자들의 공감까지. 때로는 장애를 둘러싼 토론이 벌어지는 공론장이 마련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라일라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녀가 이렇게 청각장애에 대한 무지를 일깨우고 대중과 소통하게 된 배경에는 학창 시절의 아픈 기억이 한몫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반 친구들로부터 심한 따돌림을 당했어요. 그 때는 내내 죽는 생각만 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어요. 보청기를 끼면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TV 광고를 어떤 친구가 보고 와서, 저더러 선생님의 관심을 받으려고 일부러 듣지 못하는 척을 한다고 의심하고 욕을 했죠. 제 귀는 보청기를 껴도 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청력 손실이 컸는데도요. 청각장애에 대한 무지 탓이죠.”

 “그런데 고등학교 친구들은 달랐어요. 장애를 지닌 저더러 비장애인보다 개성이 뚜렷해서 부럽다고 말했어요.”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녀는 같은 반 친구로부터 ‘듣지 못하는 게 오히려 부럽다’는 낯선 고백을 접했다. 예술가에게는 개성이 중요한 데 듣지 못하는 것만큼 남다른 개성이 어디 있냐는 의미였다고 한다. 이 한 마디가 라일라를 움직였다. 장애가 ‘배척의 대상’이 아닌 ‘개성’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그 뒤로 ‘장애는 개성이다’라는 말은 그녀에게 일상의 원동력이 됐다. 가끔 일부 누리꾼들의 악플과 인신공격성 쪽지를 받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그림에 열중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라일라의 목표는 웹툰으로 우리 사회의 ‘인식 장애’를 타파하는 것이다. 그녀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장애를 가졌다고 본다. 장애인을 사회 부적응자로 낮춰 보는 비뚤어진 태도나,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선이 여전히 적지 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서울대학교 동양학과에 입학했어요. 그 때 한 신문사에서 저를 찾았어요. 어떻게 공부를 해야 장애인이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죠. 장애인이 역경을 극복했다는 스토리가 아직도 대중들에게 먹힌다는 게 충격적이었어요. 신문기자의 눈이 그럴 정도인데 대중의 눈은 오죽할까 싶더라고요.”

 기자는 라일라에게 미리 준비한 한 편의 강연 영상을 보여줬다. 무료 강연 앱인 테드(TED)를 통해 지난해 6월 공개된 호주 출신 장애인 대변가 스텔라 영(Stella Young)의 ‘나는 여러분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I'm not your inspiration, thank you very much)라는 강연이었다. 도발적이고 유쾌한 제목, 장애인이 말하는 장애. 라일라와 여러모로 닮았다.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스텔라 영은 선천적 유전병을 지녔던 장애인으로 강연과 칼럼 등을 통해 장애에 대한 편견과 열심히 싸웠고 지난해 세상을 떴다.

 자신의 삶과 많이 겹쳐보였던 지, 라일라는 15분 길이의 동영상을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 스텔라 영이 “장애인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한 대목에서는 정말 맞는 얘기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강연이 끝나자 라일라는 눈을 반짝거리며 “스텔라 영처럼 적극적으로 인식 장애와 싸우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라일라는 곧 독일로 휴가를 떠난다고 했다. 좋아하는 밴드인 퀸(Queen)의 공연을 보러가기 위해서다. 음악은 어떻게 들을까? 청각장애인은 몸으로 음악을 듣는다. 스피커를 팔과 다리에 갖다 대고 소리의 진동을 느낀다. 독일 공연에서 온 몸으로 퀸의 음악을 느낄 작정이라는 라일라. ‘나는 귀머거리다’의 다음 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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