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서울 NGO세계대회가 이틀째 열리고 있는 올림픽 공원 내 펜싱경기장(홍보관). 그 한 켠 무대에서 한국 구세군의 합창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노래 소리만 없다면 100여개의 홍보부스들이 줄줄이 이어져있는 홍보관 안은 어수선한 흡사 동대문 의류상가 같다. 각각의 홍보 부스에 머무르게 되는 시간은 길어야 2~3분, 대개 1분도 안 걸린다. 팜플렛을 받고 서명운동에 사인을 하고 나면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비디오를 틀어 놓거나 사진, 그림등을 전시한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단체들은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 게다가 관람객 중에 일반 시민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밀집해있는 UN 관련 기구들을 제외한 외국 NGO들의 홍보부스는 더욱 썰렁했다. 외국 NGO 들이 통역을 두지 않은 탓도 있지만 단순히 자국의 문화와 종교를 알리려는 성격의 단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99 서울 올림픽

지난달 15일 막을 내린 NGO 세계대회는 국내·외 1115개 NGO단체의 참가로 88올림픽에 버금갈 99 NGO올림픽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지금까지 NGO대회들이 각각 한가지 주제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150개의 주제에 대한 180여개의 워크샵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유재현 대회 사무총장은“국내 NGO들은 그동안 분단상황이나 인권, 복지문제 등 한국의 특수성과 관련된 주제들을 다뤄왔으나 이 대회를 통해 국제평화와 인간존중, 윤리와 가치 등에 대해 시야를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다”라고 이번 대회의 성과를 말한다. 그러나 참가 단체들의 자질이 사전에 충분히 검토 되지 못한 것과 산발적인 논의가 백화점 식나열에 그쳤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진보 단체들이 불참한 것과 함께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직접적인 국내의 인권문제들이 거론되지 못한 것도 이번 대회의 맹점이다.

새마을 운동도 NGO?

녹색바탕에 노랑 동그라미, 다시 그 안에 돋아나는 초록 새싹 세 잎. 너무나 눈에 익은 마크가 그려진 모자를 쓴 마네킹이 새마을 운동 홍보 부스 앞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에 앞장서서 아무리 외진 시골의 마을회관에서도 초록색 깃발을 드높이 나부끼던 새마을운동본부를 본 것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새마을 운동이 과거 대표적인 관변 단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부터 시민 중심의 NGO로 거듭나려하고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으려고 올해를 마지막으로 국가 기금도 거부한 것입니다."
한 관계자의 말을 믿고 새마을 운동은 일단 넘어간다. 그런데 당당히 홍보부스 한켠에 자리잡고  <how to be a muslim(이슬람교도가 되는 법)>이란 홍보책자를 쌓아 놓은 이슬람 종교 단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기념 사진을 찍어대는 호산나 플라워 클럽, 낙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라자 요가 센터, 영턱스클럽과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 놓은 대한경호협회, 식물성 재료만 쓴 요리를 선보인 채식주의단체 등 몇몇 단체들은 NGO의 의미를 무색케 했다. 경주시에서는 아예 외국인 참가자들에게 경주 관광을 홍보할 목적으로 상경한 듯 보였다. 이번 NGO세계대회에 참가 기준이 있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 그 책은 그냥 가져가세요."

『북한인권시민연합』이 눈에 띈다. 홍보 데스크 뒤쪽으로 둘러싸인 삼면의 벽에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내의 잔혹한 행위에 대한 그림들이 걸려있다. 자세히 보기 위해서 두 사람이 한 줄로 겨우 서있을 만한 작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갔다. 벌거벗겨지고 내장이 나와있는 사람, 맹견에게 갈기갈기 찢기고 있는 사람, 구덩이 속에서 간수들에게 오줌세례를 받는 사람들 외에도 고문을 당하고 있는 정치범들의 모습을 탈북자의 생생한 증언으로 그렸다고 한다. 숨을 한번 내쉬고 그곳을 나가려는데 한쪽 구석에 쌓여있던 <THE SUNSHINE POLICY>라는 제목의 책 몇 권이 눈에 들어온다. 책을 뒤적거리다 written by KimDaeJoong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담당자가 친절하게 말한다. 그 책은 무료니까 그냥 가져가라고.

-아.. 그럼 이 단체에서는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니고요.. 그 책은 정부에서 그냥 주고 간 거예요."

과연 다른 홍보부스에서도 그 책만은 다시 볼 수 있었다.

인권 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을!

행사 기간동안 매일 발행된 신문 NGO DAILY 제 2호의 1면 최상단에는 전날 개막식소식과 함께 '개막식 이모저모'라는 기사로 " 김대통령이 입장하자 일부 관람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해, 김대통령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라는 글이 실렸다. 한편 같은 면 최하단에는 "시민단체 전경 가벼운 충돌"이라는 기사도 함께 실렸었다. 그런데 그 짧은 기사의 주인공들, '올바른 국가 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공동대책위' 활동가 40명이 11일 오전 개막식이 펼쳐지는 내내 감금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한겨레신문 15일자 독자투고란을 통해 김수진씨는 자신 등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1시간 30분이나 불법으로 체포 감금당했던 이유가 단지 개막사를 하러 온 김대중 대통령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며 누구를 위한 대회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1시간 넘게 돌아다녀도 인권운동사랑방, 민주노총 등의 진보 단체들을 찾을 수 없었던 홍보관을 나와 한얼광장에 들어섰다.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하는 오후 5시 30분이 넘은 시간. 한얼 광장을 가득 메운 30여 개의 천막에서 동시에 열렸던 각각의 워크샵 들이 모두 끝나가고 있었다. 흰색 천막의 숲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다니다가 누군가 나눠주는 분홍색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전국공권력피해구조연맹"의 주장과 "수도권쓰레기매립지 비상대책위원회"의 호소문이 한 면 씩 실려있는 이 팜플렛은 홍보관 안에서는 못 보던 것이다. 대회장 안과 밖의 공기처럼 조금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점점 무거워져서 어느새 짐이 되어버린 팜플렛 뭉치들을 가방에 정리해 넣고 올림픽 공원을 나섰다. 하지만 어깨가 무거운 만큼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향할 수가 없었다.

 『NGO(Non Governmental Organization)는 말 그대로 정부기구가 아닌 시민 주도의 민간단체를 뜻한다. 동시에 비영리단체라는 뜻에서 NPO(Non Profit Organization)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환경, 여성, 아동, 빈민구제, 노인 등으로 전문화되고 있는 사회시민단체를 규정하는데 왜 'Non(~가 아닌)'이라는 협의의 개념을 사용하느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시민이 직접 정부 권력을 견제하면서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것과. 특정 지역이나 단체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NGO의 진정한 가치라는 점에서 Non의 의미는 크다. 실제로 이것은 최근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는 자칭 NGO들의 본질과 가치를 가늠케 해주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김재은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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