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 소녀 카밀라는 소아암 말기 환자다. 항암치료 후 머리카락이 빠져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한다. 카밀라에게 동의를 구하고 병실 외부에서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었다. 인사를 건네자, 겨우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았다.
 

#1 인터넷을 사오지 못한 언니

  러시아 소녀 카밀라(Kamilla Bekeeva․14)는 열흘째 침대에 누워 구토를 하고 있다. 이제 고작 14살이 된 딸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할까. 어머니도 함께 야위어간다. 1월 22일 조혈모세포이식을 위해 무균실로 옮긴 카밀라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하루 종일 누워 있기만 해도 힘에 부친다. 카밀라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대학생 언니, 바꾸(본명 Ibraim kyzy Bakbubu․21)다. 바꾸가 익숙하게 카밀라가 있는 병원 21층을 찾아가자, 카밀라의 어머니 스베틀라나(Svetlana Nicolaevna Bekeeva․40)씨가 위생 마스크를 쓴 채 맞이한다. 둘은 반갑게 양 볼에 키스를 하고 꼬옥 껴안는다. 이내 러시아어 대화가 시작된다. 바꾸의 나라 키르기스스탄은 과거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 키르기스어 외에 러시아어도 공용어로 쓴다. 가끔씩 수화기 너머로 의사의 말을 통역해주는 의료통역사를 제외하고, 카밀라 어머니가 러시아어로 마음껏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바꾸가 유일하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바꾸(왼쪽)와 카밀라 어머니 스베틀라나(오른쪽). 카밀라가 치료를 위해 무균실에 입원해있어 어머니는 항상 위생 마스크를 착용한다. 인터넷을 제공하는 기계인 ‘에그’를 사오지 못한 바꾸가 미안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한다. 태블릿 기기를 어루만지는 카밀라 어머니의 양손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와이파이". 알아들을 수 없는 강한 억양의 러시아어 사이사이로 친숙한 소리가 들린다. 원래 이 날(1월 27일)은 바꾸가 카밀라를 위해 ‘에그’를 사다주기로 한 날이다. 에그(egg)는 와이브로 단말기로 무선인터넷을 제공하는 기계다. 하루 종일 누워있는 카밀라를 위한 선물이었다. 카밀라는 영락없는 14세 소녀다.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가수인 저스틴 비버를 즐겨본다. 매장에 재고가 없어 에그를 사오지 못한 바꾸의 표정이 어둡다. 누워있는 것조차 힘든 카밀라에게,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이웃나라 언니는 미안하기만 하다.
  러시아 남부 국경지대의 작은 도시, 카라수크Karasuk에서 온 카밀라와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바꾸. 이들이 만난 곳은 모국으로부터 5,000km도 넘게 떨어진 곳, 서울 성동구의 한양대학교 병원이다. 이들은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2 생소한 나라 그리고 마지막 희망의 나라, 한국

  ▲러시아의 소아암 의료 후원 재단인 '세이브 라이프(Save Life)'의 홈페이지에 실린 카밀라의 모습. 한국에서의 치료를 위해 약 360만 루블화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고, 재단에서 절반 정도인 약 170만 루블화를 지원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제 위기로 루블화의 가치는 1년 새 절반 가까이 급락했다. 2014년 2월 기준 최고 31.04원이던 루블화는 2015년 2월 기준 최저 15.66원을 기록했다. 러시아에서의 지원이 더 이상 쉽지 않은 상황이다.
 

 카밀라는 어머니와 함께 2014년 8월 20일 한국에 왔다. 이미 소아암 4기였다. 소아암 말기의 어린 소녀에게는 무거운 비행이었다. 그 중에서도 근육에 종양이 생기는 유잉 육종(Ewing's sarcoma)이다. 카밀라의 목 쪽에 종양이 발생했다. 국립보건연구원에 따르면, 유잉 육종은 1921년 처음 기술된 질병으로 아직까지 명확한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질병이다. 주로 소아와 청소년에서 발견된다. 20세 이하 인구 중 백만 명 당 연 2.9명에서 발생하고, 여성과 백인에서 발생빈도가 높다. 국립보건연구원은 유잉 육종을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분류한다.

  유잉 육종에서 발생하는 증상은 종양 부위의 통증이다. 하지만 주로 10대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성장통이나 신체적 활동으로 인한 손상으로 착각하기 쉽다. 카밀라도 2011년 처음 목 부근에 통증을 느꼈다. 지역 수영 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갈 정도로 수영을 잘하던 카밀라는 수영을 하다 다친 줄 알았다. 병원에서도 암을 진단하지 못하고 물리치료를 받게 했다. 오진이었다. ‘오진만 아니었다면...’ 카밀라 어머니는 더 말을 잇지 못한다. 통증은 계속 심해졌다. 결국 2012년 4월 러시아의 다른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계속 악화되었다. 러시아에서 항암제 치료를 했음에도 병이 재발했다. 어머니는 딸의 치료가 가능한 곳을 찾아 나섰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와 중국의 큰 병원 여러 곳에 연락했지만 오라는 곳은 없었다.

  그 때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한양대학교 병원에서 고용량 항암 요법과 자가 말초혈 조혈모세포 이식을 병행하면 기존의 항암 치료 보다 치료 확률을 조금 더 높일 수 있다고 했다. 고용량 항암 요법을 하면 몸에 골수 세포가 없어져 피를 못 만들게 된다. 항암 치료로 인한 출혈이나 감염으로 사망할 확률은 높아진다. 그래서 골수에서 혈액세포를 만들어 내는 조혈모세포를 미리 뽑아서 냉동 보관했다가 이식하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병행한다. 효과는 극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처음 예상한 병원비는 1억 원 정도(당시 환율로 약 360만 루블)였다. 딸의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세이브 라이프Save-Life'라는 러시아의 소아암 의료 후원 재단에서 약 170만 루블(당시 환율로 한화 약 4천 8백만 원)을 지원받았다. 카밀라 어머니는 러시아에서 소아과 의사였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대부분의 병원은 국가가 운영한다. 카밀라 어머니의 한 달 수입은 약 2만 루블(한화 약 60~30만원 수준) 정도였다. 아버지는 일정한 수입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다. 월 평균 1만 5천 루블(한화 약 45~23만원 수준) 정도를 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는데 쓰인다. 어머니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약 130만 루블(당시 환율로 한화 약 3천 700만원)을 마련했다. 카밀라는 2014년 8월 21일, 한양대학교 병원에 입원했다. 어머니에게도 카밀라에게도 한국은 생소한 나라였다. 마지막 희망의 나라이기도 했다.

  카밀라 어머니는 병실에서 카밀라와 함께 지낸다. 병원에서 러시아어로 어디 말이 통할데가 없었다. 카밀라 어머니는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켰다. 서울에도 이슬람 사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카밀라네 식구는 러시아 인구의 약 10% 정도인 무슬림이다. 사원 사진을 보여주자, 같은 병실의 한국 환자들이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 주소를 한글로 적어줬다. 어머니는 주소가 적힌 쪽지 한 장을 들고 이슬람 사원을 찾아갔다. 10월의 어느 금요일이었다.

  이슬람에서는 매주 금요일에 큰 예배가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의 바꾸도 금요일이면 이태원의 사원을 찾는다. 그녀는 러시아어는 물론이고 한국어와 영어도 유창하다. 사원 어디선가 러시아말이 들려왔다. 바꾸는 소리를 따라갔다. 딸을 위한 기도를 올려달라는 카밀라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바꾸를 우연히 만나게 됐다. 카밀라 어머니는 딸의 상황을 설명하며, 딸을 위한 기도를 함께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3 한국말 하는 무슬림 친구들, 카밀라를 만나다.

  바꾸는 또래의 무슬림 친구들에게 카밀라의 상황을 알렸다. 병원비는 이미 예상했던 1억 원을 넘었다. 카밀라를 치료하고 있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이영호 교수에 따르면, 현재 상태에서 치료를 멈추면 카밀라는 6개월 정도 밖에 버티지 못한다. 카밀라가 계속 살 수 있는 확률은 약 30% 정도다. 완치될 확률은 약 10% 에 불과하다. 먼 타지에서 아파하는 소녀를 외면할 수 없었다. 마음이 맞는 10여명의 무슬림 친구들이 뭉쳤다.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키르기스스탄의 바꾸,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터키의 베튤과 이란의 세피드,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은 프랑스의 마이셈, 한국을 여행하며 번역을 하는 터키의 예심, 어린 시절 독일로 이민을 간 독일 국적의 최윤석씨 등 이태원 사원의 무슬림 친구들은 카밀라를 위한 후원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국적은 한명도 없지만, 모두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신기한 팀이었다.
  무슬림 친구들은 카밀라를 찾아갔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많은 언니오빠들이 카밀라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러시아어 사전을 들고 단어를 찾아가며 대화를 시도했다. 조금씩 카밀라의 마음이 열리며 바디랭귀지도 가능해졌다. 그림을 좋아하는 카밀라와 그림을 그리며 소통하는 '그림 대화'도 했다. 외동딸인 카밀라는 한국에서 만난 무슬림 언니 오빠들이 좋았다. 언니들에게는 오빠들 몰래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을 귀띔해주기도 했다. 카밀라는 헤어짐이 아쉬웠다. 직접 그린 그림을 계속 보여주며 언니 오빠들이 조금 더 머물기를 바랐다. 어린 카밀라는 언니 오빠들 앞에서 결코 아파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는다. 아플 때마다 오히려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속 깊은 소녀였다.

  ▲카밀라의 소식을 듣고, 한국에 거주중인 무슬림 친구들은 페이스북에 카밀라를 위한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 페이지를 통해 카밀라를 위한 후원 활동을 알리고 있다. /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본격적인 후원활동이 시작됐다. 카밀라의 소식을 알게 된 무슬림 친구들은 2014년 12월 17일 페이스북에 ‘SAVE the Beautiful LIFE'라는 페이지를 만들었다. 카밀라의 병원비를 후원하기 위한 오프라인 후원회도 시작했다. 12월과 1월에 걸쳐 총 5번의 카밀라 후원회를 열었다. 금요 예배일에 맞춰 서울 이태원의 사원에서 3번, 인천의 사원에서 2번씩 진행했다. 5번의 모금활동과 온라인 홍보를 통해 약 1,500만원의 기부금을 모아 카밀라 어머니에게 전달했다.

▲이슬람 사원에서 카밀라를 위한 후원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무슬림 친구들. 총 5번의 오프라인 후원회와 온라인 활동을 통해 약 1,500만원의 기부금을 카밀라에게 전달했다. 왼쪽부터 베튤, 최윤석, 예심, 자히드 / 출처 : 카밀라 페이스북 페이지

#4 그래서 우리 이제 어떻게 할거야?

  2월 1일 저녁 무슬림 친구들이 카밀라를 보러왔다. 다음 주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예심과 마이셈이 마지막으로 카밀라를 보러 온 것이다. 하지만 조혈모세포 이식을 한지 얼마 안 된 카밀라는 아직 무균실에 누워있다. 인사는 짧았다. 병실 밖에서 친구들은 어머니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했다. 카밀라의 어머니는 돌아가는 친구들에게 '하는 일이 다 잘 되길'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아직 힘들어하는 카밀라를 보고 오는 길, 친구들은 마음이 무겁다.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떡볶이 가게로 향한다. 

  "요즘 카밀라 표정이 어두워졌어." 모임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윤석씨가 먼저 말을 꺼낸다. 윤석씨는 배려심이 많다. 병실에서 카메라를 들면, 항상 카밀라의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 핸드폰 번역기에 무언가 적는다. '사진찍는거 싫지?'. 카밀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카밀라가 답하기 편하게 묻는다. 배려심 많은 그이기에, 최근 어두워진 카밀라의 표정에 걱정이 많다. 윤석씨는 바꾸를 쳐다본다. 러시아어를 하는 바꾸가 카밀라를 다시 웃을 수 있게 뭐라도 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카밀라가 너무 아프다고 했어. 사춘기에다가 이제 많이 지쳤을거야. 이제 사람들 많이 오는 것도 싫대. 카밀라는 혼자 있는거 좋아해." 그동안 밝은 모습의 카밀라가 조혈모세포이식 후 아프다고 말한 게 바꾸는 신경 쓰인다. 카밀라와 가장 친한 바꾸는 카밀라를 잘 안다. 그래서 카밀라를 만나도, 많은 말은 하지 않는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바꾸는 말한다. "그래도 우리가 희망을 줘야하지 않을까...?" 윤석씨가 말끝을 흐린다. 바꾸의 표정이 무겁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라고 되묻는다. 마음이 급해지면 유창하던 한국말도 막힌다. 감정이 고조될수록 대화는 끊긴다. 윤석씨는 바꾸가 조금 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바꾸도 안다.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를 몰라 답답하다.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잖아. 카밀라도 알거야. 내가 아프니깐 왔다고 생각할거야. 이제 다 큰애야. 우리도 카밀라 만날 때 긴장 많이 하잖아." 대화의 공백을 베튤이 그동안의 고민으로 채운다. "'인샬라(신의 뜻대로), 괜찮아질거야'라는 말, 빈말로 들릴거야. 어떤 말이 듣고 싶을까." 예심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픔을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해" 윤석씨가 말한다. 바꾸가 답답하다는 듯이 윤석씨를 쳐다본다. "카밀라가 너무 아플 때는 세상이 밉다고도 했어." 바꾸의 마지막 말에 모두 조용해진다.

  "그래서 우리 이제 어떻게 할거야?" 여행을 마치고 다음 주 터키로 돌아가는 예심이 묻는다. "행사할 사람도 이제 부족해" 교환학생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가는 마이셈이 답한다. 친구들이 많이 의지하는 윤석씨도 오는 3월에 개인 사업을 위해 다시 독일로 돌아갈 예정이다. 어떻게 할거냐는 물음에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한다. 한창 목소리를 높이던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입원한지 5개월 만에 병원비는 처음 예상했던 1억 원을 넘겼다. 당장 치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월이 돼 조혈모세포를 이식했다. 카밀라 어머니는 2월 4일까지 아직 약 2천 9백만 원을 납부하지 못한 상태다. 어머니는 현재 방법을 찾고 있다. 후원을 받고 있는 SAVE-LIFE 재단에 추가 지원을 문의했고, 러시아의 또 다른 재단도 알아보고 있다. 아직 확답을 받은 곳은 없다. 러시아의 경제 위기로 루블화의 통화가치가 거의 절반수준으로 떨어져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걱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치료가 계속되는 동안, 병원비는 계속 오른다. 카밀라를 치료하고 있는 이영호 교수는 "앞으로 진행 상황에 따라 적게는 3천~4천만 원, 많게는 1억 3천~4천만 원 정도가 더 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슬람 커뮤니티 내부의 모금활동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매번 이슬람 사원에서 진행하니 모금액이 점차 줄어든다. 매주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처지다.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하려면 사람이 필요한데, 다들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다.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자니 상황도 여의치 않다. 활동의 주축을 담당했던 친구들 중 3명이 한국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간다. 남아있는 친구들도 다들 각자의 공부와 생활로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상황이 주춤하다. 남은 친구들은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제 카밀라의 무슬림 친구들은 이슬람 커뮤니티 밖으로 나오려 한다. 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카밀라의 이야기를 알리고자 한다. 카밀라의 얘기를 전해들은 10여명의 한국 학생들이 돕겠다고 나섰다. 무슬림 친구들과 한국의 대학생들은 이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카밀라의 이야기를 들려줄 방법을 찾고 있다. 과연 카밀라는 한국에서 더 많은 언니오빠들을 만날 수 있을까.

 ▲카밀라가 한국의 병실에서 그린 그림. 카밀라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쁜 옷을 입고 여행도 가고 싶다. 머리카락이 없는 게 싫어 사진을 안 찍는 카밀라는, 자신의 그림 속 두 여주인공에게 긴 머리카락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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