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 대학 중 ‘할랄푸드’를 제공하는 대학은 한양대 1곳에 그쳐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학중인 터키 유학생 무스타파(24)는 밥그릇만 비워져 있는 식판을 그대로 반납하고 식당을 나섰다. 국이나 다른 반찬은 전혀 손대지 않았다. 그는 “반 년 동안 (점심엔) 흰쌀밥만 먹었다.”고 말했다.

무스타파는 무슬림이다. 학생식당에는 독실한 무슬림 신자인 그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란 흰 쌀밥밖에 없다. 야채는 먹지 못하냐는 질문에, 그는 “채소라고 다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라 답했다. 간장이나 미림 등은 알코올로 취급돼 무슬림은 먹을 수 없는데, 나물 등에는 이러한 양념이 자주 첨가되기 때문이다.

‘저녁은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에는 “종종 이태원으로 간다.”고 답했다. 외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30분만 가면 이태원의 터키식당에서 ‘할랄푸드’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에는 총 6군데의 할랄식당이 있다. 서울에 있는 총 12개의 할랄식당의 절반에 해당한다. 대학이 몰린 신촌에서 생활하는 유학생의 경우, 홍익대학교 앞에 할랄식당이 한 군데 있기 때문에 무스타파보다는 사정이 그나마 낫다.
 

     
 

▲(좌) 할랄식당 인증마크가 간판에 새겨진 이태원의 한 터키식당 / ▲(우) 한국이슬람중앙회가 발급하는 할랄푸드인증마크. 한국에는 할랄푸드를 인증하는 단체가 한국이슬람중앙회 단 한 곳뿐이다.

할랄푸드란 ‘허용된 음식’이라는 뜻으로 이슬람법에 따라 생산되고 제조된 음식을 총칭한다. 육류의 경우 이슬람법에 따라 도축된 소와 양과 같은 동물이 ‘할랄 식품군’에 속한다. 무슬림 각자의 신앙심 정도에 따라 음식을 선택하는 범위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무슬림은 원칙적으로 할랄푸드만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 늘어나는 무슬림 유학생

국내 대학에 유학 온 무슬림 유학생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무슬림 국가로 꼽히는 터키, 인도네시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7개국에서 온 유학생은 2009년 1606명에서 2014년 3287명으로 5년 사이 2배나 증가했다. 서울의 있는 몇몇 대학의 무슬림 유학생을 보면 작년을 기준으로 서울대가 약 130명, 연세대가 190여명, 외국어대학교가 140명, 한양대가 260명 정도다.

이처럼 무슬림 유학생이 매년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학교 안에서 식사할 곳은 마땅치 않아 문제다. 유학생의 대부분은 기숙사에서 거주하는데 기숙사는 대부분 취사가 금지돼 있어 유학생들이 직접 도시락을 싸는 것도 어렵다. 학교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식당뿐인데 대학교 구내 식당에서 할랄푸드로 점심을 제공하는 곳은 서울에선 한양대학교 한 곳 뿐이다.


◇ 무슬림 학생을 위한 ‘할랄푸드’를 제공하는 학교는 서울 내 한양대학교 뿐

한양대학교에서는 2013년 3월부터 학생식당에서 할랄푸드를 제공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학생회관의 배선희 점장은 “한양대학교에는 국제병원도 있고 무슬림 유학생도 많다는 이유로 학교 측에서 먼저 ‘할랄푸드를 내놓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방학을 제외하고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점심에 제공되는 할랄푸드메뉴의 가격은 4500원으로, 3000원에서 3500원 사이의 가격으로 제공되는 다른 메뉴들과 비교하면 비싸다. 할랄푸드의 수요와 관련해 배선희 점장은 “할랄푸드의 이용자 수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손익정도는 다른 메뉴와 다르지 않다”고 답했다.

서울대학교는 식당에서 할랄푸드를 내놓는 것을 검토했으나 포기했다.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측은 “할랄푸드는 식기를 따로 써야 하는 등 (할랄푸드) 도입에 따른 물리적 문제가 생기는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수요가 적어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나 한국외국어대학교 등 주요대학은 할랄푸드 도입에 관해 진지하게 논의를 한 바는 없다고 밝혔다.


◇ 할랄푸드 도입을 저해하는 할랄에 대한 오해들

그러나 한국이슬람교중앙회는 할랄푸드를 도입하기 위해 주방을 넓히는 등의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은 오해라고 말했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의 할랄 담당자는 “할랄급식은 교차위험(할랄 식재 및 조리도구가 보통 식재 및 조리도구와 섞일 위험)에만 주의하면 생각보다 쉽게 제공할 수 있다”고 답했다. 도마와 칼과 같은 조리도구는 할랄전용으로 따로 쓰고, 할랄 식재료는 다른 식재료와 섞이지 않게 구분만 해서 보관한다면 무슬림학생들의 요구가 반영된 식단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재료 역시 이태원의 할랄식재료 마트에서 손쉽게 대량구매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할랄 담당자는 “사실상 수요가 얼마인지도 정확히 파악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와 같은 무슬림국가 기준의 할랄급식을 학교에 제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한국 시스템 내에서는 ‘무슬림프렌들리’라고 칭할 수 있는 수준의 할랄급식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 답했다. 또한, 까다로운 무슬림이라 하더라도 식당이 도마와 칼을 할랄용으로 따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안전한 식재료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서를 통해 보여준다면 급식을 신뢰하고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태원의 한 할랄식재료 마트


이슬람권 국가들과 한국의 관계는 점점 긴밀해지고 있다. 경제 교류나 한류의 진출 등이 큰 이유다. 중동에선 ‘허준’이나 ‘대장금’ 등으로 시작된 한류드라마 열풍이 ‘별에서 온 그대’로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많은 한국기업들이 이슬람권 국가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어 한국어 수요도 늘어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 오는 무슬림 유학생 수 역시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유학생 규나이(21)는 “상당수의 한국기업이 중동에 진출해있어 취업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자 유학을 결심하는 무슬림 학생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측은 “대학은 사회에서 가장 자유로운 곳이다. 그런 대학에서부터 무슬림에 대한 배려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할랄푸드 급식을 시작으로 진정한 캠퍼스 세계화를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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