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는 2013년 인문사회계열 일부 학과를 통폐합했다. 학과통폐합은 학과를 없애거나 합치는 것으로 학생과 교수에게 중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이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학과통폐합은 학칙을 개정해 이뤄진다. 행정 절차와 교무위원회, 대학평의원회를 거쳐 총장이 공포하거나 추가로 이사회 승인을 받아 학칙이 바뀐다. 교무위원회는 총장·부총장·학장·처장 등 보직교직원으로 이뤄져, 학과통폐합 등 학교 정책을 추진한다. 오직 대학평의원회만 학칙 개정 과정에서 학교 정책을 견제하고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구다.

사립학교 비리나 일방적인 운영을 막기 위해 국회는 2007년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사립대학에 대학평의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대학평의원회는 교수·직원·학생·동문·외부인사가 모인 협의체로 사립학교법에 명시된 사안을 심의 혹은 자문하는 법정 대의기구다. 대학 발전계획, 학칙 제·개정 등을 심의하고 대학헌장 제·개정과 교육과정 운영, 예·결산에 관해 자문한다. 제도상으로는 이사회를 제외한 학내 그 어떤 기구보다 상위에 있다.

하지만 대학평의원회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그럴까.

대학평의원회는 심의나 자문할 수 있는 권한밖에 없다. 심의는 심사·논의하는 것이고 자문은 조언을 해주는 것일 뿐 의결과는 다르게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최종결정권자가 심의 결과와 반대되는 결정을 내려도 관계없다는 뜻이다.

중앙대학교 학과통폐합 때 이사회는 대학평의원회를 거치지 않고 학칙개정안을 승인했다.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대학평의원회 의장이었던 고부응 교수는 “당시 평의원회는 정족수가 충족되지 않아 개회를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학내 의견수렴이 되지 않아 추이를 지켜 본 후 심의를 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중앙대 평의원회는 후에 개정안이 부당하다고 심의를 했지만 이사회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심지어 한남대는 평의원회가 철학과 폐지를 위한 학칙 개정안에 처음부터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총장은 이를 무시하고 교무위원회에서 의결한 원안을 공포했다.

대학평의원회는 구성에서도 학교에 독립적이지 못하다. 명확한 구성 절차를 법에는 적어놓지 않고 각 학교 정관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우호적인 인사를 평의원이 되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 주요 사립대인 성균관대, 숭실대, 홍익대, 명지대, 성신여대는 평의원 후보자를 교수단체나 직원단체, 총학생회로부터 몇 배수 추천받아 총장이 선별해 위촉하고 있었다. 경희대는 총학생회가 학생평의원 후보를 추천할 때 학생처를 거치도록 한다. 가톨릭대는 교수평의원 후보 중 1명을 교무위원회에서 추천하도록 돼있다. 외부인사 혹은 동문평의원은 서울 주요 사립대 22곳 중 19곳이 별도의 추천과정을 거치지 않고 학교가 임의로 위촉하고 있었다.

보직교직원이 평의원이 되는 데도 아무 제한이 없다. 학교 정책을 추진하는 보직교직원이, 그것을 검토하고 견제해야할 평의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단국대는 교무위원 한 명을 평의원에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경남대는 심지어 총장과 기획조정처장, 사무처장이 평의원을 겸한다. 동문과 외부인사평의원 2명도 총장이 임의로 위촉해 전체 평의원 11명 중 5명이 학교에 호의적인 인사로 채워질 수 있다.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수로 안건을 통과시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학교가 평의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경남대는 철학과를 없애는 과정에서 총장이 의장이었던 평의원회는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폐지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평의원 수도 각 학내 구성원 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대학평의원회는 평균적으로 교수 40%, 직원 23%, 학생 13%, 동문 및 외부인사 24%로 구성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다수이며, 학교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학생들을 대표하는 평의원 비율은 외부평의원 비율보다 낮다. 이화여대나 성신여대, 서울여대, 숙명여대는 평의원 11명 중 1명만이 학생평의원이다. 학생 참여가 사실상 요식행위인 셈이다.

“대학의 실질적인 구성원은 학생과 교수인데 누구도 대학 정책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게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재작년 학과통폐합 과정에서 무기력했던 대학평의원회를 떠올리며 중앙대학교 학생 안태진 씨는 이렇게 말했다. 중앙대가 얼마 전 또다시 정원 감축과 학과통폐합 추진을 발표하자, 안 씨는 “이번에도 큰 틀이 나오면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립학교 측은 대학평의원회에 부정적이다. 한국사립대학교총장협의회는 대학평의원회가 교무회의에서 결정한 사안을 또 심의해 행정 운영이 어려워 평의원회를 폐지하거나 자문기구로 격하해야한다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자율성은 사립학교 운영자들의 자율성이 아니라 교수, 학생들이 참여하면서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이어 “교수회, 직원회, 학생회는 법적 보장이 없는 임의기구인 상태인데 이런 자치 기구를 법제화해서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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