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 불안… 사진까지 공들이는 구직자 많아
• 덩달아 취업 사진관도 호황… 사진 한 장 당 최고 30만 원까지
• 외국에서는 사진 금지, 취업에 영향력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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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인 박민형(23)씨는 인턴 지원을 하루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력서 사진이 마땅찮았기 때문이다. 앞서 다른 회사 인턴에 합격한 친구의 조언이 마음에 걸렸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진부터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찌감치 친구는 취업 전문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뒀단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스펙에, 이런 평범한 사진으론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박 씨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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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종편 방송 jtbc의 인기 프로그램 ‘비정상 회담’에 출연한 미국 대표 타일러 라쉬 (Tyler Rasch, 27)씨는 얼마 전 자신이 겪은 황당한 경험을 고백했다. 한국에서 처음 인턴 지원을 앞두고 이력서에 사진을 붙여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한번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미국에서는 사진을 요구하면 차별이라 생각해 회사를 상대로 고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성별, 나이, 인종, 국가 등은 취업 전 굳이 알릴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원자들이 실력과 상관없이 외모 가꾸기에 치중해야 하는 한국의 현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취업 불안… 사진부터 더 예쁘게

과도한 취업 경쟁 속에서 이력서 사진까지 하나의 경쟁력으로 여기는 추세가 늘고 있다. 취업의 1차 관문인 서류 전형에서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기 위한 나름의 차별화 전략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 482명을 대상으로 “이력서 사진이 서류 합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어본 조사에서, 80퍼센트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다. 즉, 구직자 10명 중 8명은 사진이 평가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 이유로 사진이 첫인상을 좌우할 것 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외모도 하나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뒤따랐다. 기업이나 직종별로 선호하는 이미지가 있다거나, 인사 담당자의 눈에 띄기 위해서라는 답변도 있었다.
 

잘 나온 이력서 사진을 찍기 위해 특별히 더 공을 들인다는 구직자도 많다. 잘 찍는다고 소문난 사진관을 찾아가는 노력은 물론, 촬영 후 보정 작업까지 주문하기도 한다. 사진 한 장을 위해 정장복이나 넥타이를 구입하고, 별도로 메이크업 서비스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취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이미 사진과 관련한 정보 싸움이 치열하다. 먼저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에게 조언을 얻기 위해서다. 온라인 취업 커뮤니티 ‘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은 아예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이력서 사진 평가하기’ 코너를 마련했다. 이곳에는 5천 개가 넘는 이력서 사진들이 다른 회원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사진과 두 번째 사진 중 골라주세요’, ‘냉정하게 평가해주세요’ 같은 제목 아래에는 각 사진마다 ‘정장 입으세요’나 ‘머리 깔끔하게 정리하세요’, ‘치아가 보이게 좀 더 웃으세요’ 같은 예리한 댓글들이 평균 10개 이상씩 달려있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은 취업 불안으로도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서울대학교 간호과학 연구소에서는 “외모에 대한 평가로 당락이 좌우된다는 생각이 취업 불안감을 더욱 조장한다”고 발표했다.


취업 전문 사진관도 호황… 합격 명당 사진관을 찾아라

최근에는 이력서 사진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사진관도 늘고 있다. 취업 전문 사진관은 특히 수요가 많은 신촌과 홍대 앞, 강남 일대에 몰려있다.

사진관의 유명세는 촬영 기술보다 보정 실력으로 엇갈리기도 한다. 신촌의 s 취업 전문 사진관에 직접 찾아가봤다. 사진을 찍는 시간은 고작 1분 남짓. 웃는 얼굴, 무표정한 얼굴을 각각 5장씩 찍으면 촬영이 끝난다. s 사진관 김 실장은 “촬영보다 어떻게 보정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며 “얼굴 전체적인 틀만 있으면 포토샵 보정 작업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고 했다. 추가 비용을 내면 고객이 보정 작업에 참여해서 원하는 점을 하나하나 반영할 수 있다. 고객이 어느 직종, 어떤 회사에 지원하느냐에 따라 맞춤 보정을 해준다. 사무실에는 세 명의 직원들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포토샵 작업에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김 실장은 “회사마다 원하는 이미지가 확실히 있다”며 “예를 들어서 아시아나 항공 같은 경우는 좀 더 여성스럽고 화려한 인상을 선호하고, 대한항공은 단정한 이미지가 합격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진 바탕 색깔도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금색은 우아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주고, 파란색은 상대적으로 경쾌하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호감 있는 얼굴을 만들기 위한 포토샵 노하우도 따로 있다고 한다. 선한 인상을 주기 위해 눈을 크게 키우고, 변형 도구를 이용해 순식간에 입꼬리의 균형을 잡았다. 여기에 만 원을 보태면 치아의 교정기까지 지워준다. 10여 분이 지나자 지원할 회사에 어울리는 맞춤형 얼굴이 완성됐다.

사진관마다 촬영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대학가라도 이력서 사진 촬영은 최하 3만 원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보정 작업을 더하면 추가 비용 발생은 물론이다. 합격률을 높이기로 소문난 강남의 한 사진관 같은 경우에는 가격이 20만 원 대로 치솟는다. 사진 찍기 전 화장과 머리 손질까지 더하면 가격은 최고 10만 원까지 더 추가된다. 사진관에서는 메이크업 전문 스튜디오와 연계해 할인 혜택을 제시하거나, 아예 사진관에 전속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고용해 고객들에게 화장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남녀 사이즈별로 정장을 갖춰 대여해주는 경우도 대다수다. 올해 처음 이력서 사진을 촬영한 김하영(22) 씨는 “이렇게까지 돈이 많이 들 줄 몰랐다”며 “외국어다 자격증이다 다른 스펙 쌓기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데 이런 식이면 취업하기 전에 빚부터 생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영향력은? … 기업 2곳 중 1곳, “이력서 사진 합격에 영향 준다”

실제로 이력서 사진은 취업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까. 전화로 문의한 결과 삼성 전자 인재 채용팀은 “채용 방식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채용에 사진이 결정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며 “지나치게 격식이 없는 사진이 아니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 인사팀 관계자 역시 “사진은 면접 시 지원자 확인에만 사용된다. 당락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9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기업별 인사 담당자 53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70퍼센트 이상이 ‘채용 시 입사 지원서 사진을 평가한다’고 답했다. 주로 지원자의 성격 또는 성향을 미리 가늠해 보기 위해서 사진을 평가한다는 이유가 대다수를 차지했고, 다음으로는 사진을 통해 이력서에 쏟은 정성을 평가하기 위한 이유가 뒤따랐다. ‘외모도 하나의 경쟁력이어서’, ‘외모가 준수하면 호감이 가서’의 이유를 꼽은 인사 담당자도 약 200여 명에 달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역시 289명의 인사 담당자 중 절반 가까이가 이력서를 확인할 때 ‘사진을 가장 먼저 본다’고 답했다. ‘사진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6.9 퍼센트 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지나치게 수정한 사진은 오히려 역효과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 담당자 중 90퍼센트 이상이 ‘사진과 실물이 너무 다른 지원자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그 중 절반 가까이가 그런 경우 지원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직자들은 더욱 사진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로 1년 반 째 구직 생활을 하고 있는 박선영(27)씨는 “사진을 안 본다고 해도 다 보는 것 같다”며 “신경 써서 찍은 사진을 붙여 냈을 때와 아닌 때에 서류 전형 합격 비율이 달랐다”고 본인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외국에서 이력서 사진은 금지 …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이력서에 사진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관행일까. 새누리당 주영순 의원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이력서에 사진을 요구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 가장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개인 정보와 차별 금지를 중요시하는 북미, 유럽권의 국가에서는 대부분 이력서에 사진을 첨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경우 사진을 첨부하는 것을 금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애플, 구글, 웰스 파고, 마이크로소프트, 제너럴 일렉트릭, 아마존닷컴 등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에서는 모두 자유 형식의 이력서를 받고 있다. 즉, 정해진 형식이 따로 없기 때문에 꼭 사진을 제출할 필요가 없고, 대신 지원자가 강조하고 싶은 점을 더 부각시키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기사에서 ‘이력서에 절대 넣어서는 안될 다섯 가지’에 사진을 꼽기도 했다. 사진을 붙일 경우, 인사 담당자가 이력서를 보는 짧은 시간의 대부분을 사진 보는 데만 쓴다는 연구 결과를 예로 들었다. 기사에서는 “지원자의 장점이나 성취를 강조하고 싶다면 사진은 과감히 빼야한다”고 조언한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페르다네 머캔리(Ferdane Mercanli. 22)씨는 지금껏 일곱 군데가 넘는 기업에 지원했지만 한 번도 이력서에 사진을 붙인 적은 없다고 했다. 머캔리씨는 “인력의 다양화를 위해 기업 측에서 사진을 요구할 경우가 있을지 모르나, 이는 거꾸로 특정 인종을 역차별 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면서 사진 첨부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 외 국가의 경우에도 채용에 사진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대학교 경제 연구팀에서는 2600여 개의 기업을 상대로 이력서 사진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같은 이력서에 사진만 바꿔 지원하는 방식으로 합격 결과를 비교해보았다. 실험은 참가자 300명의 사진을 연구원 8명이 호감도에 따라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5,312개의 이력서를 보낸 후 합격 여부를 분석한 결과, 오히려 평범한 외모의 지원자가 더 높은 합격률을 보였다. 아예 사진을 붙이지 않은 경우도 매력적인 외모의 사진을 첨부한 지원자보다 더 많이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이력서 사진 금지 법안 추진… 실효성은 아직?

고용노동부에서는 표준 이력서를 제작해 관공서와 대기업에 공급했다. 서류 전형에서 직무와 무관한 성별이나 외모, 나이 등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목적 하에, 표준 이력서에는 사진은 물론 나이와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 기재 칸까지 모두 없앴다.

국회에서는 아예 이력서 사진 부착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새누리당 주영순 의원실은 채용 시 직무와 무관한 신체 조건을 적는 항목이나 사진 부착란을 없애는 개정 법률안을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주 의원은“외모보다 능력이 주목받는 건전한 취업문화를 만들겠다”며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와 국회의 노력도 아직 큰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도 많은 기업에서 서류 전형시 사진을 필수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89명의 기업 담당자 중 254명이 본인의 기업이 이력서에 필히 증명사진을 첨부할 것을 요구한다고 답했으며, 사진 첨부란을 없앴다고 밝힌 담당자는 8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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