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9일. 영하 7도의 날씨에 5살 아이들과 학부모 관람객들에게 1시간 가량 설명을 하며 도슨트들의 손발은 얼고 코끝은 추위에 붉어졌다. 본인 담당이 아닌데도 일본어 담당 도슨트 이희숙 씨(55)는전시 투어를 함께 돌았다. 요즈음 일본인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 일본어 투어가 적다보니도슨트로서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저는 투어 마치면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나까요시’. 일본어로 ‘사이좋게’라는 뜻이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까지 온 일본인들과 역사를 “나까요시(사이좋게)”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전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는 이 씨와 같은 한국어, 일본어, 영어 도슨트가 일반 관람객들에게 전시내용에 대해 설명을 담당한다. 다른 도슨트와 달리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이희숙 씨와 같은 일본어 도슨트들에게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자원봉사 이상의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저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그분들께 전달하려고 해요.그래서 계속해서 역사박물관에서 하는 특강에도 참석하고 심화교육도 받고 있죠”라며 이 씨는 도슨트 일을 위한 노력을 멈출수 없다고 말한다.

이 씨가 느끼는 책임감의 바탕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의 서대문형무소만큼 일제강점기를 비롯한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비극을 보존한 곳도 흔치 않다는 데에 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10월 21일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됐다. 1945년 해방까지 국권을 되찾기 위해 싸운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수감됐다. 해방 이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인사들이 수감되는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안고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돼 교육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는 움직임도 지난해부터 진행 중이다.

광복을 맞이한 지 햇수로 70년인 2015년.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그 자체로 2015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하지만 ‘과연 역사관 그 자체로만 봤을 때 역사관의 역할을 다하며, 관람객들이 역사적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곳인가’ 또한 ‘비극적 지식을 전달받을 수 있는 공간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줄어들고 있는 대화의 대상

“요새는 개점휴업 중이에요.” 일본어 도슨트이희숙씨는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아베 정권 이후 일본 내 우경화로 지금은 일본인 관광객 수가 많이 줄었죠. 한 달에 한 번 도슨트 일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2013년까지만 해도 일본인 관광객이 꽤 많았다고 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요청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체 관람객(2010~2015년 누적)은 292만 7026명이었으며, 외국인 관람객은 31만 6836명이었다. 전체 관람객에서 외국인의 비율은 10.82%인 것이다. 2014년 외국인 관람객 63293명 중 일본인이 43119명, 미국인이 8575명, 중국인 4064명이었다. 2013년과 비교해 일본인 관광객은 3700명 정도가 줄었다고 한다.
 

관람객을 세분화해서 그들에 맞는 “이야기”를 전달해야

외국인 관람객을 위한 표시판, 안내지도 등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시행하고 있는 영어설명은 매우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수원에서 영어교사로 1년째 일하고 있는 캐나다인 Nathalie(24), Brayden(24)은 외국인들을 위한 전시코스의 안내판뿐 아니라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소개문도 영어나 기타 언어로 쓰여 있으면 좋겠다고 지적한다. ‘형무소’라는 공간적 의미에서 한국의 역사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희생됐는지에 대한 더 깊은 지식을 전달해주지는 못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시내용을 통해 한국인의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항상 일본인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여기에 와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를 완벽히 잘 알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

관람객의 연령대 파악 역시 부족한 실정이다. 어린 관람객들이 소화할 수 있는 전시콘텐츠나 관람코스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폐쇄공포증 있는 분?"
벽관고문 설치 앞에서 7~8세의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이루어진 그룹에 도슨트가 체험을 권유한다. "수감자들이 짧게는 2~3시간. 이 정도 이 좁은 방 안에 갇혀 있었어요. 우리 모두 그냥 서 있어 볼까요? 어때요? 답답하죠?" 아이들은 하나둘 체험해보기 위해 난리다. "우와, 신기하다." 서로 고문실 안에 들어가 보기 위해 줄을 섰다. 벽관고문은 옴짝달싹 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해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한 관람객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조미현 씨(32)는 “어느 정도의 틀만 있으면 되는데 고문 받는 사람의 모형이 있어서 아이들이 상상을 하고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경우 아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학교와 구청과 협업으로 진행하지만 전시내용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따로 없다. 13세 아들과 9세 딸과 함께 역사관을 찾은 염 씨(40)는 전시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 초등학교 6학년 이상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단어도 어렵게 표현돼 있고 나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한자병행도 아니고 한자어를 한글로 표시해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어린 아이들이 전시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반면 어른들은 전시실의 분위기가 너무 가벼워져 버리는 것에 아쉬움을 가진다. 친구와 함께 방문한 박소민 씨(26)는 “연령대가 낮은 관람객들이 많은 때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엄숙함을 잃게 되는 것 같아서 아쉽다”고 말한다. 결국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연령대에 알맞은 프로그램의 부재로 인해서 역사관의 현장성과 의미를 완전히 느끼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역사의 가해자와 피해자, 제 3자가 모두 관람객으로 공존하는 그곳

워싱턴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경우 2014년 통계 기준, 연령별로는 24%가 초, 중, 고교생(school children), 국적별로는 12%가 외국인(international), 종교별로는 대략 90%가 비유대교인(non-Jewish)이었다. 워싱턴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외국인, 비유대교인의 관광객 수와 비교했을 때,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외국인 관람객은 현저하게 낮은 비율을 차지한다. 특히, 전년도보다 줄어든 일본인 관람객의 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대교인들을 학살한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해 놓은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비유대교인의 방문자 수가 90%라는 것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홀로코스트 박물관 홍보책임자(Communications Officer) RaymundFlandez 씨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박물관의 임무를 세 가지 측면에서 강조했다. “고통받은 자들의 기억을 보존하고, 관람객들이 홀로코스트를 통해 떠오르는 도덕적, 양심적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져보고, 민주주의의 시민으로서 책임감을 떠올려볼 수 있기 위해 전례없는 비극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 Flandez 씨의 답변대로 워싱턴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위의 세 가지 임무를 위해 세 주체의 네러티브를 전시내용의 핵심으로 삼는다. 세 주체는 미국(미국인), 유대인, 나치(나치즘)이다. 각각 홀로코스트의 제 3자, 피해자, 가해자의 입장인 것이다. 홀로코스트에 미국 정부 또는 미국인들이 그 당시 어떻게 반응했는지와 관련한 인용문구, 사진, 비디오, 포스터 등을 전시한다.유대인 관련 전시의 경우 피해자들을 단체보다는 개인 또는 학살당한 유대인 공동체 몇몇의 사례를 전시하며 관람객들이 깊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더불어 나치 이데올로기와 건축물 등에 대한 소개를 통해 나치의 만행을 설명한다.

역사의 주체별로 전시내용을 세분화한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네러티브뮤지엄(서술적 박물관)”을 추구한다. 유대인 집단수용소를 목격한 미국인 군사의 증언을 귀로 듣고, 학살당하기 전 유대인 공동체 마을의 사진을 보고, 히틀러 군대의 사진을 차례로 관람하며 사람들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다양한 측면에서 경험할 수 있다. 반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경우 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고문할 때 쓰인 도구, 방법에 대한 전시가 일제의 만행에 관한 전부이다. 또한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제 3자적 증언의 공간도 없다.

워싱턴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경우 전시내용을 연령별로도 분류했다. 8세 이상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 “Remember the Children: Daniel’s Story”라는 제목의 전시실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가상의 소년 다니엘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스토리텔링(narrative)’적 공간이다. 이 전시실은 실제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의 가족 앨범, 다큐멘터리 영상, 그림일기 등을 바탕으로 현실감 있게 구성하고 있다. 전시실의 핵심인 다니엘의 일기장은 홀로코스트나 전쟁을 겪은 어린아이들의 일기와 에세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관람을 마치면 어린 관람객들은 전시내용을 통해 느낀 점이나 떠올린 생각을 글로 적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내러티브적 전시내용은 청소년심리학자, 교육자, 박물관 큐레이터로 구성된 전문가 팀의 노력으로 완성됐다. 이 전시실은 개관 이래 관람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으로 손꼽힌다.
 

‘거울의 방’ 속 이야기에서 시작하자

최근 들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거울의 방’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단장했다. 1만 6천 명이 넘는 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수용돼 있던 여옥사를 ‘거울의 방’이라는 추모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거울의 방’ 안에는 1만 6천명을 다 전시할 수 없어, 형상이 끝없이 이어지도록 독립 운동가들을 사진으로 전시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평소 이름이 생소했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수희’, ‘노순경’, ‘고수복’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도슨트가 질문을 던지자, 관람객들은 “아니요”라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유관순’이라는 이름은 다들 아시는데, 이수희, 노순경 등과 같은 이름은 많은 분들이 생소하게 느껴요. 들어가셔서 이 네 분의 수형기록부라도 한 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라며 도슨트가 설명을 끝마친다. 그러자 아이들은 우르르 거울의 방에 들어가서 신기하다는 듯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수형기록표를 자세히 살펴본다.

‘거울의 방’은 분명 많은 관람객들에게 생소한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수형기록표를 감각적으로 구성하고 그 분들을 추모하는 공간으로써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거울의 방을 체험하는 관람객들에게 어느 정도 네러티브적 요소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령대별로 전시관을 나눠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과거의 참혹했던 사건들을 생생하게 와 닿도록 전시관을 구성한 또 하나의 역사의 비극을 담아낸 박물관을 떠올려야 한다.
 

관람객의 감정이입을 동반하는 ‘네리티브뮤지엄’을 지향해야

마포구 성미산에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설계를 담당해 서울시 건축대상 최우수상을 받은와이즈 건축의 전숙희 소장도 기념관 또는 역사관의 역할에 있어 네러티브적 요소를 강조한다. “특정 공간을 과장하거나 지나치게 엄숙하게 만드는 것보다 이야기를 덤덤하게 전달할 수 있는 집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술적 박물관’, ‘네러티브뮤지엄(narrative museum)’이라는 개념이 바로 그러하다.” 또한 네러티브뮤지엄이라는 것이 건축가 또는 설계자가 사전에 계획한 일종의 강제적인 동선이지만 막연하게나마 역사 속 주체들의 이야기를 공간체험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네러티브뮤지엄’의 장점을 극대화한 곳이다. “Remember the Children: Daniel’s Story”라는 제목의 전시실은 관람객과 추모하려는 대상의 관계를 최대한 가깝게 설정하고, 대상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대표적 공간이다. 역사적 진실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는 어린 아이들, 전시실에 새겨진 역사가 불편한 가해자들, 그리고 우리 역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제 3국의 관람객들을 모두 아우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 역시 바로 이러한 ‘네러티브’ 콘텐츠에 기반한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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