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직업이요? 주중에는 헬스 트레이너, 주말에는 운동선수요.”
“전 패션MD요. 저 역시 주말 한정 운동선수에요.”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그러나 주말만 되면 직업이 바뀌는 사람들이 있다. ‘열정’, ‘도전’, ‘청춘’이라는 키워드로만 똘똘 뭉친 아마추어 스포츠팀, 노익스큐즈 팀이다. 이들에겐 직장인과 아마추어 운동선수를 넘나드는 이중생활이 매주 벌어진다. 단순한 취미로 보기엔 이들의 활동이 심상치 않다. 철인3종을 거쳐 조정까지 국내 및 국제 대회를 제패하려는, 마음만은 프로 못지않은 10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노익스큐즈를 소개합니다

No Excuses, 변명은 거부한다. 열정 하나로 스포츠 세계에 뛰어든 청년들의 팀명이자 모토다. 팀의 운명은 현직 수영강사 이수연(29) 씨의 뇌리를 스친 한 문구에서 시작됐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것. 그와 동시에 생각난 도전 종목이 바로 철인 3종이었다. 무작정 집 근처 동호회를 찾아봤지만 가입비만 무려 20만원에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 투성이였다. 그래서 차라리 스스로 팀을 꾸려보겠다고 주변 지인들을 하나 둘씩 불러 모으기 시작, 그렇게 8명이 모였다. 평균 나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살기 바쁜 직장인들이었지만 오직 열정 하나로 철인 3종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작년 10월 19일 통영에서 열린 ITU 트라이애슬론월드컵에서 이수연 씨는 수영 종목 1등, 전체 5등을 기록했다. 9월부터 훈련을 시작해 약 1달 반 만에 얻은 성과였다. 함께 참가한 팀원들도 생애 첫 도전에서 3종목 완주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를 계기로 그들의 열정은 조정으로까지 뻗어나갔다. 다만 종목을 바꾸면서 팀원에 변화가 생겼다. 이수연 씨를 비롯해 오한솔(28), 이윤현(27), 강효선(31), 권경상(30), 김대영(30), 박지원(25), 양윤정(29), 전재현(30), 허민규(33) 씨까지 10명이 새로운 ‘노익스큐즈’가 됐다. 대학생, 트레이너, 패션MD, 웹디자이너, 테일러, 요리사까지 직종 구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모집했다.

왜 하필 조정일까? “그간 경기를 위해 함께 모여 연습하긴 했지만 철인 3종이 개인전으로 참가할 수밖에 없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팀으로 다 함께 출전해 성과를 내고 싶었어요.” 철인 3종에 이어 조정까지 연이어 도전장을 내민 오한솔 씨의 대답이다. 도전 종목에 따르는 조건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최대한 사람들에게 낯설고 익숙지 않은 종목들을 고르려고 노력했다. “클라이밍, 국궁, 다이빙, 스키점프 등 수많은 얘기가 오갔죠. 조정으로 결정한 건 경기가 머지않아 열리기 때문이었어요. 대회가 임박해야 팀의 목표의식을 더 높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거든요.” 오는 2월 28일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제 14회 전국실내조정선수권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그러나 실내경기는 로잉머신으로 이뤄지므로 개인전만 가능하다. 그들의 진짜 목표는 5월경에 열릴 전국조정선수권대회다. 이를 위해 노익스큐즈 팀은 주말마다 맹훈련에 돌입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No Excuses

전문 스포츠맨을 꿈꾸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로지 도전 정신만 갖고 발을 내딛은 아마추어들이다. 팀원 모집은 SNS를 통해 이뤄졌다. “인스타그램에 훈련 사진을 올리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원해요. 그럼 저희가 그분들 계정으로 들어가서 어떤 사람인지 평가해요. 특별한 절차 없이 그냥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뽑았어요.”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사진들을 통해 지원자들의 일상생활과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다. 오한솔 씨의 말에 따르면, 평범하지 않고 특이한 사람이어야 뽑힌다. 이른바 똘끼(?)가 보여야 하는 것이다. “훈련이 고되잖아요. 이걸 감내하려면 보통 사람은 아니어야죠.”

비록 정형화된 과정을 거치진 않지만 꽤 괜찮은 팀워크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함께 훈련하는 시간은 매주 일요일이다. 이들은 경기도 가평군 미사리에 오전 10시까지 집합해 4~5시간 동안 훈련을 받는다. 지금은 날씨가 추워 배를 띄우지 못하고 실내에서 로잉머신에 의존한 채 연습한다. 일주일에 하루뿐인 훈련 시간이 부족하진 않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노 젓기를 반복적으로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3시간이상 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조정연습 시간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다만 일상에서 꾸준히 체력을 기르는 습관이 필요해요.”

답을 한 이윤현 씨는 패션 브랜드 MD를 맡고 있다. 운동과 무관한 직업이기에 일상에서도 체력을 기르기 위한 시간을 따로 갖는다. 평소 사이클을 즐겨 타고 운동에 관심이 많아 즐겁게 훈련에 임하고 있지만 취미로 삼기에 힘든 일인 건 사실이다. “열정 하나로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에요. 팀원 중 한 명은 1시간 노 젓고 토했을 정도에요. 특히 제 직업상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밤 꼴딱 새고 아침 10시까지 미사리 가서 훈련받는 거예요. 정말 좋아하니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철저히 이중생활에 머물러야 한다. 본연의 직장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원칙이다. 변명을 늘어놓을 만한 사람을 애초에 받지 않는 것도 이로 인해서다. 노익스큐즈 팀원들의 열정이 유행처럼 낭비되는 단어가 아니라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노익스큐즈 뒤에 선 사람들

프로 선수들이 아니다보니 외부로부터 후원받는 것도 일이다. 철인 3종을 준비할 땐 이수연 씨의 지인인 전북시청 소속 전병은 코치의 지도아래 훈련받았다고 한다. 마땅한 연습장이랄 것도 없이 경기도 광주시 분원리에 있는 싸이클 코스를 돌고, 그 곳에서 마라톤도 뛴 뒤 근처 수영장에 가서 수영연습을 하는 식이었다. 다행히 이번 조정 연습은 팀원 권경상 씨의 지인인 대한장애인조정연맹 소속 권회열 코치 덕분에 미사리에 있는 실내 훈련장을 쓸 수 있게 됐다.

“감사하게도 계속 도움을 주시는 분들을 만나게 돼 훈련하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이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그에 마땅한 성과를 내려고 더 노력하게 돼요.”

현재 아마추어 조정팀은 1~2팀밖에 없다. 그것도 대학교 소속 동아리 같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일 뿐, 일반인들이 모여서 팀을 꾸린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노익스큐즈를 향한 관심도 적지 않은 편이다. 팀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고 여러 배우들의 응원 메시지를 포함해 소소한 지원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노익스큐즈는 하반기 비영리단체 등록을 계획하고 있다.

이윤현 씨는 비영리단체 등록의 목적이 일차적으로 조정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있다고 전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종목을 고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저희가 도전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조정을 알리고 저희뿐만 아니라 조정 선수들에게까지도 후원이 활발하게 행해질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거죠.” 한국에선 조정이 비인기종목인 만큼 선수들이 있는 환경도 열악하다. 노익스큐즈 팀과 국가대표들이 한데 모여 훈련을 받기도 하는 정도다. 이런 상황에 대한 개선과 더불어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와 참여도까지 제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또 해외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싶다고 한다. 그들의 도전 정신이 한국에만 머물러 있기엔 아쉬움이 크다는 것. 특히 오한솔 씨는 미국에서 트레이닝 센터를 다닌 경험도 있고 말레이시아 등지를 오가며 해외 경험을 많이 쌓았다. “저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대체로 해외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자는 거죠. 조정의 최종 목표도 사실은 해외 대회에 참여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한국 대표로 나갈 만한 성적을 내야겠죠?” 구체적인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해 마케팅 및 기획담당 팀을 만들어 사이트를 개설하고 후원사를 찾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으로의 도전

한 달 뒤 있을 경기를 위해 노익스큐즈 팀은 조정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월까지는 조정에만 집중하겠지만 이미 그들은 그 이후의 계획까지 짜뒀다. 오한솔 씨는 “다음 도전으로 히말라야 산맥 등반을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계획을 밝혔다. 특히 그는 이미 히말라야 등반 경험이 있음에도 재도전 의지를 내비쳤다. 다른 코스로 다시 올라보겠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너무도 많았다. 이외에도 스페인 순례자의 길 걷기, 오지레이스 등과 함께 이전에 논의됐던 타 종목들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더불어 그들은 히말라야 등반이 끝나면 사진전을 열 예정이라고 한다. 스포츠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다. 사진전 개최는 노익스큐즈 팀에게 더 뜻깊다. 프로젝트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도전에 대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시도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열정’, ‘도전’, ‘청춘’이라는 세 키워드만으로 모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견고해지고 있다. 도전은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들의 인생에서 변명이라는 단어는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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