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김병욱씨를 인터뷰하다

4남매 농장(http://www.4nammae.com/)은 고구마를 판매하는 사이트다. 대표 김병욱(25)씨는 4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이다. 부모와 함께 농사지은 고구마를 인터넷으로 팔아보자는 생각에 2014년 1월 1일 사이트를 만들었다. 두 달 동안 7천만 원의 매출을 냈다. 그 해 5월에는 ‘농촌 공동체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미래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장학생으로 선정돼 유럽에 다녀왔다.

인터뷰 요청에는 흔쾌히 응해 줬다. 경북대에서 만나자고 하니 어차피 시내에서 약속이 있다며 동대구역에서 보자고 했다. 인터뷰를 위해 대구행 KTX를 탔다. 직접 만난 김 씨는 경북 사투리를 쓰는 훤칠한 청년이었다. 그는 카페에서도 고구마 라떼를 마셨다.   

고구마, 인터넷 판매를 생각하다 

김 씨의 부모는 포항에서 농사를 짓는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를 따라 밭에 나갔다. 그렇게 농사일과 함께 자랐다. 나이가 들고 나서 바라 본 농산물의 유통 경로는 불합리했다. 농산물은 경매장, 도매상, 지역 상회나 마트(소매상)를 거쳐 판매된다. 농민들은 경매장에서 턱없이 낮은 가격을 받는다. 중간업자들을 거치면서 유통 비용이 붙는데, 원가가 낮지 않으면 최종 소비자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이다. 수박 한 덩이에 500원이 나올 때도 있다. 농부는 200덩이를 가져가도 10만원을 받는다.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데 드는 비용에 경매장 수수료까지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2012년 12월, 김 씨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고구마를 인터넷으로 팔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중간 유통 과정을 없애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면 최소한 경매장보다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네가 무슨 인터넷 판매냐, 팔리는 건 다 네 용돈 해라’고 하셨어요. 제 심기를 건드리셨죠. 오기도 생겼고 다 용돈 하라고 하시니까 저도 불이 붙어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인터넷 중고장터 등에 판매 글을 올렸다. 하루에 한두 박스도 팔리지 않았다. 그러다 ‘포항맘놀이터’라는 카페를 알게 됐다. 포항에 있는 어머니들이 만든 커뮤니티였다. 맛있는 고구마를 사고 싶다는 글이 많아 판매 글을 올리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2주일이 지나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드디어 한 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손 편지도 쓰고 예쁜 고구마만 골라 배송했다. 정성에 감동한 고객이 카페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그 뒤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루에 많게는 100박스가 팔렸다. 다음 해 2월까지 1000만 원의 매출을 냈다. 물론 그 돈은 모두 부모님께 드렸다.

‘4남매 농장’을 만들다 

“아, 이거 되겠다 싶었죠. 장사가 되니까. 홈페이지 만들어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영업이나 판매에 소질도 좀 있었고. 복학해서 학교(경북대)를 다시 다니다가 2학기에 솔라이브라는 단체를 알게 됐어요. 거기 들어가서 창업을 실제로 준비하게 됐죠.” 솔라이브는 경북대학교 내 창업연구회다. 9월 2기로 들어가 2대 회장을 맡았다. 1대 회장인 조동인씨의 제안으로 김 씨는 창업에 본격 도전한다.

우선 고구마 판매 사이트를 기획했다. 제작은 ‘미텔슈탄트’에 맡겼다. 조 씨가 창업한 웹 서비스 및 홈페이지 제작 대행업체다. 사이트 구축에 드는 돈은 본인이 일부 부담하고 학교에서 200만~300만 원을 지원받았다. “하루에 밥을 한 끼 먹었어요. 사업자 등록증 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냥 홈페이지 만들어서 팔면 되는 게 아니라 상표 등록이랑 통신판매업 신고를 해야 돼요. 카드사를 등록하려면 거기에 서류를 또 내야 되고 박스 디자인도 다른 데랑 차별화해야 하니까 신경 써야죠. 학기 중이니 학업이랑 병행해야 해서 더 힘들었어요.”

2013년 9월부터 차근차근 준비한 뒤 다음 해 1월 1일 ‘4남매 농장’을 오픈했다. 부모에게서 고구마를 박스 단위로 구입해 이윤을 붙여 판매한다. 두 달 동안 수확의 70% 이상을 인터넷으로 팔았다. 매출은 7천만 원을 냈다. 고객은 3000명을 넘어섰다.

올해도 꾸준히 주문이 들어오고 있고, 고객들의 반응도 좋다. 이상희(54)씨는 지난 주 처음으로 사남매 농장에서 고구마를 주문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사이트를 알게 됐다. 이 씨는 “맛이 너무 좋았어요. 가족들이 고구마를 좋아해 여러 곳에서 사다 먹는데 지금까지 먹어 본 고구마 중에 최고였어요. 보관에 대한 설명이 잘 돼있어서 좋았고요. 직접 재배하신다니 더 믿음이 가고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사람

김 씨는 세계빈곤에 관심이 많다.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잠드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게 꿈이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2010년 일어났던 연평도 포격이다. 그는 당시 현장에서 군 복무 중이었다.

“안에서 유서 적고 난리가 났었어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니까. 그때 이등병이었는데 쓸 말이 없는 거예요. 제가 적었던 게 ‘부모님 사랑합니다’ 이 한 마디였어요. 어머니께서 옛날부터 하셨던 얘기가 있거든요. 동생이랑 싸우면 둘이 앉혀 놓고 다른 사람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어요. 좋은 차를 못 타보고 맛있는 걸 못 먹어보고 이런 게 후회되는 게 아니라 그게 너무 후회됐어요.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했었는데,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 눈물을 닦아 준 적이 없는데. 기도를 했죠. 살아서 나가게 되면 꼭 그런 사람이 될 테니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어떻게 전쟁이 안 났네요.”

그때부터 가난한 사람을 도우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군대에서 빈곤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러다 경제자문관이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아프리카 같은 개발도상국에 경제 발전 방향을 조언해 주는 일이다. 경제학과에 진학하려고 제대 후 재수를 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원래는 경북대학교 자연자율전공이었다. 수능을 치고 나서 집에 있다 만들게 된 게 4남매 농장이다.

“꿈이 변했다고는 생각 안 해요. 자문관을 꿈꿨을 때에 비해서 창업이라는 길을 택한 지금은 범위가 좁아졌을 수는 있겠죠. 국내로 한정됐다거나. 제 그릇이 이 정도라고 하면 농사지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봐요. 지금도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고구마를 보내고 있고요. 기회가 되는 대로 계속해서 실천해 나갈 겁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

고구마는 겨울 한정 상품이다.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만 주문이 들어온다. 계절에 상관없이 고객들이 홈페이지를 찾을 수 있도록 고구마를 이용한 가공 상품을 개발 중이다. 고구마잎을 이용한 차 등 상품 기획안으로 작년 11월 ‘대학생 농업·농촌 6차 산업화 창업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단호박, 고추, 배추 등 부모님 밭에서 생산하는 다른 상품들도 판매할 예정이다. 이렇게 대학에 다닐 동안에는 4남매 농장을 최대한 키워 볼 작정이다. 다른 농민들의 상품 판매를 대행해 주는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그러면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은 외면한다. 이건 맞지 않죠. 인생 목표 중에 하나가 아버지 차를 바꿔 드리는 거였어요. 농사지으시면서 저희한테 투자를 참 많이 해주셨거든요. 누나들이랑 같이 작년에 차를 사 드렸어요. 창업을 하면서 이렇게 제 목표들도 이뤄 나가고 재밌더라고요. 일단 저희가 잘 돼야지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범위도 더 넓어지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더 커지고 싶은 욕망이 생기죠. 더 커지면 더 많이 도울 수 있을 테니까. 열심히 할 겁니다. 열심히 해서 제가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거예요.”

부모님이 농사지어 수확한 농산물을 판매하다 보니 매출 규모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많아 봤자 2억~3억 원인데 그는 여기에 만족할 수 없다고 말했다. 4남매 농장을 통해 경험과 역량을 쌓아 다른 일에 도전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최종 목표가 있냐고 묻자 그가 답했다. “제가 살다 감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면 좋겠어요. 제 인생 목표이기도 하고요. 혼자 살다가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이 당찬 청년이 앞으로 또 무슨 일을 벌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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