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학교에 학비내고 다니는데, 전공수업이 안 열려서                                                           수업을 못 듣고 학점은행에 돈을 내가며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건가요?"

장면 1. 윤병환(23)씨는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2010년에 입학해 전공수업만 들어도 졸업이수학점이 다 찬다는 공대생 생활을 하다가 이번 학기에 교양수업을 하나를 듣게 됐다. 공학인증 과정에 포함된 교양선택 과목인 <공학기술과 사회>라는 강의에서 윤 씨는 “‘학점 통폐합’의 폐해를 피부로 느꼈다”고 말한다. “사람이 많게 되다 보니까 출석도 대충 부르게 됐”고 인원이 많다보니 성적평가에 포함되는 발표가 선착순으로 바뀌어 “평가 기준도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재수강 학생들의 “예전 같지 않다”는 볼멘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윤 씨가 현재 수강중인 <공학기술과 사회> 과목은 2010학년도에 4개 분반에 강의정원이 60여 명이던 것이 이번 학기 정원수 120명, 분반 2개짜리 대형강의가 됐다.

장면 2. 제상욱(22)씨는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 학생이다. 제 씨의 장래희망은 ‘의료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다. 의료사회복지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보통 학부시절 실습수업 기관으로 병원을 선택하곤 한다. 병원 실습을 나가기 전에는 <정신건강론> 또는 <의료사회사업론> 과목을 선수강해야만 한다. 그런데 제 씨가 전역 후 복학한 작년부터 <의료사회사업론> 과목은 2년째 개설되지 않고 있다. 학과에 문의한 결과 “지금으로서는 해당 과목을 열 계획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게다가 “교수 확보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도 수업이 언제 열릴지 모르겠다”며, 꼭 병원실습을 하고 싶으면 “학점은행에서 수업을 듣던지, 다른 학교에 가서 (학점교류) 수업을 듣던지 하라”는 말을 들었다.

▲ 서울시립대 학생커뮤니티 ‘서울시립대광장(cafe.daum.net/uosisthebest)’ 게시물 갈무리

"싼 게 비지떡" 반값이 낳은 반쪽자리 수업?                                                                               국고보조금 15억과 700학점을 맞바꾼 대학 

반값등록금의 상징 서울시립대가 최근 강의 축소와 대형강의 증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 공시에 따르면 2012년 1학기에 개설된 총 강좌 수는 1680개, 2014년 2학기 현재 강좌 수는 1355개로 2년 새 300개가 넘는 강좌가 폐강됐다. 학점으로 환산하면 약 700학점에 해당한다. 학생들에게는 피부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변화에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립대 학생들이 사용하는 커뮤니티 ‘서울시립대광장’에는 “수강신청하면서 예전보다 교양이나 전공과목들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느끼고 있는데, 저만 그런지.. 이거 그냥 있어도 되는 문제인가요?”라며 총학생회의 대응을 촉구하는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하고, ‘반값등록금 이후로 (교육환경의) 질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지난 여름 총학생회에서 실시한 교양강좌 관련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2%(876명 중 718명)가 수강했던 교양과목에 대해 “불편하거나 불만이 있다”고 답했고, 그 원인으로 ‘강의 폐강 및 축소’(502명)와 ‘수강정원 증가(대형화)’(177명. 중복선택 허용)를 주로 꼽았다.

▲ 수강했던 교양과목에 대해 불편하거나불만인 점이 있습니까?(876명 응답)
▲ 앞 문항에서 '있다'를 선택하신 경우,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738명 응답)

시립대에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말 학생들이 의심하는 것처럼 ‘반값등록금’이 원인인 것일까? 취재 결과 개설강의 축소와 대형강의 증가의 직접적 원인은 교육부의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과 관련이 있었다. 교육부가 매년 15억을 지원해오던 ‘교육역량강화사업’을 2014년부터 장기 지원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전임교원 강의담당비율 50%’ 충족을 골자로 하는 대교협 인증평가 통과를 사업신청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전임교원은 교수․부교수․조교수 등 대학에 전일제로 근무하는 교원을 뜻하며, 비전임교원은 이 외에 시간강사․초빙교수․겸임교수 등이 포함된다. 즉 이 전임교원 강의담당비율 50%를 충족하려면 시간강사 등을 제외한 전임교원이 해당 학기에 개설된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어야한다.) 학교 측은 2013년 2학기에 40.5%에 불과했던 전임교원 강의담당비율을 5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전임교원을 추가로 확충하는 대신 시간강사를 대거 해고하고, 각종 강의를 폐강하고 분반을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한 학기 만에 53%라는 비율을 만들어냈다. 시립대가 “전임교원 강의담당비율 50%”라는 조건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꼼수와도 같은 대책을 선택한 것이다.

정원 확대도 예산 확보도 서울시 손 안에                                                                                   희미해져가는 시립대의 대학 자율성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익수 시립대 학사교육원장은 학내 언론 ‘서울시립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의 허락 없이는 교원 정원을 늘리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비전임교원을 줄인 것은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며, “다른 대학과 경쟁해 예산을 가져오는 상황 속에서 우리대학도 도태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시립대의 전임교원은 서울시 공무원 총액임금제의 적용을 받는 서울시 공무원이기 때문에 사실상 전임교원 확대는 시립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현재 서울시립대의 전임교원 정원은 413명, 재직인원은 402명이다. 주요 대학평가지표인 ‘전임교원 확보율’의 산정근거가 되는 교육부의 교원 법정정원 505명에도 한참 못 미치는데다, 한동안은 정원 확대가 이뤄질 기미도 없다. 서울시 중기기본인력운용계획을 살펴본 결과 2017년까지 계획된 시립대 전임교원 확대인원은 단 열 명에 불과했다.

▲ 전임교원-비전임교원 강의담당비율 변화

설령 서울시가 인심 좋게 시립대의 전임교원 정원을 대폭 확대해준다고 해도 교원 추가임용에 필요한 각종 예산을 확보하는 문제가 남는다. 새로 임용된 교원에게 지급할 임금 이외에 연구지원비, 공간 확보와 같이 ‘큰 돈’이 필요한 일에서 시립대는 또 한 번 서울시를 향해 손을 벌려야 한다. 교수를 확보하기 전에 교수 연구실부터 확보해야하고, 교수 연구실을 확보하자면 여유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여느 대학들이 그렇듯 시립대 역시 만성적인 공간부족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새로운 공간 확보를 위해서는 다시금 대량의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그러나 반값등록금 시행과 함께 기성회계의 세입 규모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 뒤 해당 부족분을 서울시의 지원예산으로 충당하는 지금의 구조에서는 서울시의 재정현황에 따라 시립대의 재정운영도 영향을 받게 된다. 전임교원 정원 확대부터 예산을 확보하는 일까지 과제는 많은데 시립대에겐 마땅한 권한도 능력도 부족하기만 하다.

반값 때문이 아니라고 왜 말을 못하니                                                                                       줄어가는 예산총액, 불안한 시립대
그렇다면 시립대의 구성원들이 이 같은 변화를 ‘반값’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뭘까? 2012년 반값등록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첫 해 서울시가 시립대에 지원한 예산은 484억. 그 중 148억이 ‘반값등록금 시행 지원’을 위한 예산이었다. 2011년에 비해 줄어든 기성회비 부족분 147억보다 7천만 원 가량이 더 늘어난 금액이었다. 계속해서 2011년을 기준으로 141억이 모자랐던 2013년에는 그 부족분을 서울시 예산 151억으로 충당했고, 14년도 반값등록금 시행에는 144억이 지원됐다. 이렇게만 보면 ‘줄어든 등록금보다 더 많은 돈을 서울시가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과연 그런 것일까.

▲ 기성회계 축소규모-반값등록금 지원 예산 비교

서울시가 지원하는 반값 예산은 기존에 서울시가 지원하던 예산안의 각 세목들을 여기저기서 꺼내 ‘반값등록금 시행 지원’이라는 하나의 항목에 모아놓은 것이었다. ‘반값’이라는 이름만 제외하고는 특별히 새로운 사업이 신설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반값에 포함됐던 세부사업은 모두 제각기 다른 성격의 사업들이었고, 예산 관리에 효율성이나 일관성을 기하기도 어려웠다. 때문에 서울시도 올해부터 “명칭과 사업내용에 괴리가 있고 사업 관리 및 집행 상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값등록금 시행 지원’이라는 항목을 삭제하고 사업의 성격별로 기존에 있던 세부사업 내에 예산을 다시 편성했다. 이렇게 서울시의 예산안 내에서 ‘반값’ 항목이 생겼다 사라지는 사이에 그 안에 포함됐던 세부 사업내용이 반값 이전에는 어느 규모였는지 쉽게 알 수 없게 됐다. 또 기성회계와 일반회계는 재정이 투입되는 목적이나 용도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울시가 지원한 반값등록금 예산이 기존에 기성회계에서 쓰이던 사업과 어느 정도 연속성이 유지된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는 점도 비교를 어렵게 한다.

▲ 서울시립대 예산총액 추이

비교적 명확히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예산총액(서울시 지원금과 기성회계 세입을 합산한 금액으로 시립대의 한 해 예산 전체)만 남았는데, 도표를 보면 총예산이 2012년 이후 꾸준히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485억 규모였던 서울시 지원금은 13년에 43억이 줄어들어 441억이 됐고, 14년에는 그보다 더 축소된 439억이 지원됐다. 서울시립대의 예산총액 역시 12년 758억에서, 13년 721억, 14년 719억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반값등록금 시행 직전인 2011년도 총예산 724억과 비교해 봐도 오히려 후퇴한 셈이다. 물가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는데 등록금은 동결 상태에 지원금은 뒷걸음질 치는 상황이다. 대학본부의 학사운영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 학생과 교직원 등 학내구성원들에겐 “이게 다 반값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예산편성을 담당하는 시립대 총무과 서일교 주무관은 예산 축소 문제와 관련해 “어느 지자체도 그렇지만 서울시 재정상황이 좋지 않아 예산이 좀 줄어든 측면이 있다”면서 “그러나 기성회계의 전체 규모가 줄어든 것에 비하면 학생예산은 거의 줄지 않아 비율로 보자면 (전체 대비 학생예산) 축소 비율이 훨씬 더 적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내년(2015학년도)에는 학생들에게 쓰이는 예산이 더 늘어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시립대 재학생들은 앞으로도 늘 비슷한 불안함을 안고 가야만 한다. 서울시 재정에 따라 시립대의 학사운영도 같이 널을 뛰게 되는 지금 같은 구조로는 대학경쟁력의 강화는 물론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조차도 안개 속에 빠지게 된다.

서울시 손에 달린 시립대의 미래                                                                                             '제값' 그 이상의 '반값'을 기대하다
반값등록금이 예산 축소를 초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값등록금 이후 예산이 꾸준히 축소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어느새 붙여진 ‘반값 때문’이라는 딱지가 서울시립대의 경쟁력 약화를 부르는 별명처럼 여겨지고 있다. ‘교양과목 확대 요구’를 첫 번째로, ‘박원순 운영위원장 강연 개최’를 두 번째 공약으로 내세워 지난 달 당선된 제51대 시립대 총학생회장 조창훈(10․철학)씨는 인터뷰를 통해 “(시립대의 운영위원장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적어도 우리 대학에서의 교육권이나 학습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조 씨는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기존에 있던 ‘시립대 학생들과 시장과의 만남’ 프로그램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하며 “이제는 학생들이 ‘무책임한 반값등록금 정책’이라는 인식을 느끼는 편”이라고 말했다. 반값등록금이 최근 거론되는 ‘교육의 질 하락’ 문제에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뿐이라는 것이다. 서울시립대학교 운영에 관한 조례를 살펴보면 “대학교의 종합발전계획, 투자계획, 학사운영 및 교원임용과 기타 대학교 운영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해 서울시에 대학교운영위원회를 두며”(제3조), “대학의 학과설치 및 폐지, 학생정원의 증감, 재정에 관한 사항은 서울시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제4조), “대학은 법령으로 특별히 규정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운영관리에 관한 사항에 대해 시장의 지휘 및 감독을 받는다”(제8조)고 정해져있다. 제3조에 규정된 ‘대학교운영위원회’의 위원장이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반값등록금 자체는 좋은 취지로 출발한 정책이다. 학생들의 과중한 등록금 부담을 덜어주고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한 그 의의만큼은 분명히 평가받아야 한다. 현재 서울시립대에 다니는 학생들은 서울 소재 사립대학의 1/4에 가까운 등록금(연 240만원)을 내고 있으며, 재학생 1인당 장학금은 연 140만원에 달한다. 2012년 7월 시립대가 작성한 “서울시립대학교 반값등록금 추진 백서”에서는 반값등록금의 시행 이후 ‘전국 대학의 등록금 인하’, ‘국가장학금 예산 및 수혜 학생 대폭 증가’, ‘우수 신입생 유치 기여’, ‘재학생 생활여건 변화’ 등 다수의 긍정적 파급효과를 이끌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줬으면 됐지’하는 식으로 반값 이후의 서울시립대에 대해 세심한 고려 없이 방치해둔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 반값등록금이 학교 재정을 갉아먹는 요소로 비춰지는 순간 사실여부와는 무관하게 반값이 가진 의미가 퇴색되고 진정성마저 의심받게 될 것이다. 이제 서울시도 ‘반값등록금’의 품질보증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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