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참여적이고 인터넷에 정통한 사람(socially engaged and internet-savvy)”일 것. 2011년 말, 네 번째 퍼블릭 에디터의 2년 차 임기가 끝나감에 따라 <뉴욕타임즈>가 새롭게 내걸었던 퍼블릭 에디터 자격 조건이다.

원래 퍼블릭 에디터는 신문 옴부즈만으로서 신문 보도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을 듣고, 신문이 저널리즘의 윤리성(Journalism's integrity)을 지킨 보도를 하는지 감시하기만 하면 됐다. 2003년 <뉴욕타임즈>는 제이슨 블레어(Jayson Blair) 기자가 36건의 기사를 날조한 사건이 밝혀진 후 회사의 신뢰도를 회복하고 보도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첫 퍼블릭 에디터를 임명했다. 이후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140자 트윗에서부터 긴 블로그 글까지. 시시각각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많은 수의 글들이 인터넷에 업로드된다. 이제는 퍼블릭 에디터도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그때그때마다 사람들과 소통할 필요가 생겼다.

이러한 배경 아래 2012년 다섯 번째 퍼블릭 에디터로 마가렛 설리번(Margaret Sullivan)이 임명됐다. 32년간 <버팔로뉴스>에서 일하며 최초 여성 편집국장까지 한 그녀는 <뉴욕타임즈>에서 또 다른 ‘최초 여성’ 타이틀을 달게 됐다. 그녀는 최초 퍼블릭 에디터 블로그(public editor's journal) 운영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떤 일을 할까.

“제가 할 일이요? 뉴스룸에 털썩 주저앉아 회사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공개적으로 비판하겠죠. 비판의 대상은 새로 임명된 CEO가 될 수도 있고, 연예담당 기자(celebrity profiler), 전쟁으로 파괴된 리비아에 있는 국제데스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 분석가가 될 수도 있어요.” 2012년 <뉴욕옵저버>와의 인터뷰에서 설리번은 위와 같이 말했다.

뉴욕타임즈 건물 3층 그녀의 자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주일에 최소 천 통 이상의 이메일이 그녀 앞으로 도착한다. 설리뷰(@Sulliview)라는 트위터도 운영한다. 전화문의도 받는다. 이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를 그녀 혼자 헤쳐나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녀의 조수는 매일 수백 통의 이메일을 분류한다. 병원에서 부상자의 치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메일은 일분일초라도 빠른 답변을 할 필요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다양한 방식으로 도착한 독자의 의견이 모이면 설리번은 내부조사 과정을 거친 후 2주에 한번 일요판 신문에 칼럼을 연재한다. 칼럼이 나오지 않는 동안에는 3~5개의 글을 블로그에 싣는다.

독자 이메일을 받고 조사에 착수하면 설리번은 제일 먼저 정보의 근원지를 찾는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 기사를 담당한 에디터를 만난다. 이후 내용이 정리되면 블로그 또는 칼럼을 위한 글을 쓴다. 지난 5월 페루지아 국제 저널리즘 페스티벌에서 설리번은 “나는 독자의 불만을 먼저 제시하고, 그에 대한 해당 기자나 편집장의 답변, 그리고 내 의견(my take)을 마지막에 적는다”며 자신의 글의 구성방식을 소개했다.

2013년 3월 설리번은 로켓과학자 이본 브릴(Yvonne Brill)의 사망기사 보도방식의 부적절성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싣는다. 사건의 발단은 이 기사의 첫 두 문단이었다.
그녀는 기막힌 쇠고기 스트로가노프(시큼한 크림소스에 고기를 넣어 뜨겁게 먹는 음식)를 만들었으며 남편이 직업을 옮길 때마다 잘 따랐고,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8년간 일을 쉬기도 했다. “그녀는 훌륭한 어머니이다”라고 그의 아들 매튜(Matthew)가 말했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88세의 나이로 사망한 이본 브릴은 또한 1970년 통신위성이 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는 추진 시스템을 발명한 훌륭한 과학자이다.
<이본 브릴, 로켓 과학계의 선두자, 88세의 나이로 별세(Yvonne Brill, a Pioneering Rocket Scientist, Dies at 88 중에서>

당시 많은 독자는 이 두 문단이 성차별주의적인 시각에서 쓰였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론 찰스(Ron Charles)는 “내 사망기사에 올라갈 나의 대표 음식은 주키니 파스타가 되겠네요”라며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에이미 데이비드슨(Amy Davidson) <뉴요커> 편집인은 “브릴 씨의 업적이 언급되었음에도 존재감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고 말하기도 했다.

설리번은 독자의 반응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사망기사 담당 편집인인 윌리엄 맥도날드(William McDonald)와 해당 기사를 작성한 더글라스 마틴(Douglas Martin)를 찾아간다. 맥도날드는 “이 기사가 성차별적인 내용으로 해석될지 몰랐다”며 “사망기사의 경우 해당 인물을 그가 생활한 시대 상황에 놓고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가정에서 어머니로서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을 첫 문단에 놓고 두 번째 문단에서 그녀가 훌륭한 과학자였음을 제시해 독자들로 하여금 아하! 왜 이 사람이 사망기사에 등장할만한 대상인지 깨달을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마틴 또한 “최초 여성 로켓과학자로서 브릴 씨의 삶은 매우 감동적이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한 방식으로 위와 같은 묘사를 했던 것이므로 다시 쓴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독자의 반응, 두 번째로 담당 기자의 답변, 그리고 이제는 설리번의 해설이 등장할 차례다. 설리번은 “브릴 씨가 19세기 중반, 한 가족의 어머니이자 한 남편의 아내로서 해야 할 역할과 과학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어려움에도 로켓과학계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과학자로서의 그녀의 업적이 그녀가 사망기사 대상자로 선택되게 한 중요한 사실임을 고려할 때, 가정적인 능력에 대한 언급 때문에 상대적으로 과학자로서의 훌륭함이 묻히면 안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칼럼을 포함해 매달 블로그에 약 8개의 글을 쓰는 설리번. 그녀가 그녀의 글을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는 무엇일까. “나는 논평하기도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독자와 타임즈지 기자들의 중재자(intermediary) 역할을 하는 것이다”며 페루지아 저널리즘 페스티벌에서 설리반은 말했다. 설리번은 물론 중재자로서 활동하기 위해 <뉴욕타임즈>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회사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내부비판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다.

“회사 안의 모든 사람이 그녀를 좋아한다면, 그녀는 일을 제대로 한 게 아니죠.” 타임즈지 에디터 필 코베트는 말한다. “그녀가 누군가의 책상을 향해 걸어올 때면, 우리는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합니다. 흠흠, 내가 뭘 잘못했죠(uh oh, what did I do wrong)?”

그녀가 다가가기만 해도 긴장하는 기자들. 편집국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왜 자사 기자는 취재원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것은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 하라는 회사 규칙을 따르지 않는 거죠?” 지난 9월 말, 제자를 성적 학대한 죄로 고소당한 브루클린의 한 교사에 대한 관계자 인터뷰가 익명처리된 것을 보고 설리번은 딘 베케이(Dean Baquet) 편집국장에게 묻기도 했다. 베케이 국장은 익명취재원의 사용을 감시하고 사용 제한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게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국장의 답변은 설리반의 칼럼에 반영됐다.

또한 설리반은 회사의 사업모델 변화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인쇄 매체 광고수익의 감소와 유료 디지털 구독료 수익의 증가다. 그녀는 칼럼에 “전반적으로 미국 전역의 신문사 직원 수가 감소했지만, 타임즈지는 인원을 계속해서 늘리고 있으며 2011년보다 증가한 1,230명이 뉴스룸에서 근무한다”는 니만 저널리즘 연구소의 캔 닥터 연구원이 말을 인용했다.

독자 의견 수렴을 통해, 그리고 회사 내부자로서 정보를 얻는 방식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설리번. “자기비판 작업을 하는 누군가가 회사 내부에 있다는 것은 독자에 대한 엄청난 책임감과 헌신을 약속하는 일이다”라는 그녀의 말에서부터 그녀가 퍼블릭 에디터라는 직책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이에 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남은 임기동안 그녀의 글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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