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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면, 색으로 재현된 할머니들의 기억예술로 풀어낸 전시 여성의 고통
이윤수 기자 | 승인 2014.08.19 14:54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언제나 긴장상태이다. 하지만 앙굴렘 페스티벌은 이들의 불화가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아마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전시회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Liberation, QUENTIN GIRARD 2014. 2. 1)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Liberation>이 보도한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 대한 감상평이다. 앙굴렘 만화 페스티벌은 매년 1월 말 프랑스 남서부 앙굴렘시에서 열리는 만화축제이다. 세계 각국의 만화와 관련 영상물에 대한 시상식, 전시회, 강연회를 개최한다. 올해는 제 1차 세계대전 100주년을 맞아 전시상황과 여성폭력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전시했다. 한국은 여성가족부와 한국만화협회가 일본군 강제동원 위안부를 주제로 국내 유명 만화작가 19명의 작품 20점을 전시한 ‘지지 않는 꽃, 내가 증거다’라는 제목으로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군위안부 문제의 접근법

위안부 문제가 예술의 소재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예술의 주제가 되기 이전,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들의 증언과 재현의 한계에 봉착하곤 했다. 국가의 정상 간에 이루어지는 경제적 보상, 역사의 고증문제는 “피해국-가해국” 이라는 국민 국가의 틀 안에 갇혀 있었다. 한국여성연구원장 김은실은 본인의 논문 <국민 국가의 인식틀 밖에 위치하는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 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역사적 이해에 대한 지배적 언설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할지 결정한다. 할머니들에게는 기억과 증언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말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게 하는 사회, 문화적 맥락이 부재하다.”

김은실은 군위안부의 증언은 그들에 대한 공적, 역사적 재현, 즉 식민지 피해자의 대표성을 표현하는 선에서만 허용되고 있다고 본다.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는 내용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지적하는 것은 할머니들이 여성 개인으로서 자신의 몸이 겪었던 일을 말하기보다 국민국가의 틀 속에 존재하는 공적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리 스스로의 경험을 이론화하는 아시아 여성들, 정확히 말해 피해국 여성들의 연대를 제시한다.

하지만 새로운 접근법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국가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온 아시아 각국의 여성들이 연대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사회 안에서 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국내에서는 정치적인 외로움을 경험하고, 한국에 와서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하는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기도 한다. 이러한 답답함 속에서 등장한 것이 예술로의 승화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재현과 증언,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피해자 여성들의 연대의 중심에 예술이 있다.

예술가의 손에 들어온 위안부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전시회는 이미 수차례 열렸다. 2013년 제4회 우리시대 리얼리즘전 <일본군 위안부와 조선의 소녀들> 전시회가 대표적이다. 행위예술가들은 거리에서 무용과 보디페인팅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표현하기도 했다. 한·일합작 위안부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는 현재 활발히 공연 중이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정기 수요집회에서도 문화예술인들은 위안부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극단의 연극 <봉선화> 는 지난 4-5월동안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재공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작품 속 대학원생 수나는 위안부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면서 위안부 역사에 집중한다. 수나의 외가는 부유층인 반면 친가는 위안부 피해 집안으로 설정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심리와 인식의 차이를 동시에 조명한다.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되고자…

위안부 문제를 풀어내는 행위예술에는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한 샌드아트도 포함한다. 샌드아트는 빛이 나오는 라이트박스 위에 모래를 이용해 손으로 드로잉하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이다. 샌드 아티스트 최은영 씨가 요즈음 추진하는 '못다한 이야기, 샌드아티스트들의 첫 번째 재능기부 프로젝트'는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위한 기금마련 행사를 추진하고, 학교 관공서 등 각 기관 교육용으로 필요할 경우 무상으로 제작한 영상을 제공한다. 위안부 문제를 다루기로 결심한 때부터 최 씨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있다. "작업 시작할 때 할머니들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인터뷰 내용 중 '잊혀지는 기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있었다. 잊혀져 아픈 역사가 반복되질 않길 바란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부분에 착안해서 지금 내 나이보다도 어릴 때 겪었던 할머니들의 아픔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예술의 장점은 어떠한 정보를 텍스트 형식으로만 접할 때와 예술 형식으로 접목할 때 공감의 폭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영상, 애니메이션, 웹툰 등의 예술과 접목할 때 대중이 받아들이는 범위가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 SNS 등을 통해 확산되는 범위도 더 커지고 있다." 실제로 2012년 이후 최 씨가 작업한 영상물을 학교나 관공서에서 교육용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기도 했고, 위안부 관련 행사에서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도 이어졌다. 예술은 이처럼 위안부 문제의 매개체가 됨으로써 지속적인 노출을 통해 대중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계속 회자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의 공통분모인 예술

예술이 위안부 문제의 매개체 역할을 하면서 갖는 장점은 다양하다. 무엇보다 텍스트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지난 3월과 4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그곳에 나는 없었다> 전시회를 감상했던 대학생 김수형 씨는 대중과 소통하는 만화와 영상의 힘에 매료됐다. “위안부와 같은 이슈는 워낙 오래된 문제라서 사람들 모두 이 문제에 대해서 피로감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만화나 그림으로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도구만 바꾸었는데도, 그것이 잘 와 닿았다.” 그는 만화의 가치는 대중성으로, 글보다 많은 내용을 담지 못하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앙굴렘 전시 기획을 담당한 만화진흥원은 만화의 이러한 대중성에 집중했다. 앙굴렘 만화기획전 홍보를 담당한 박은선 씨는 만화를 통한 소통과 공감의 힘을 인지했다. “만화를 포함해서 모든 예술은 제 2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비록 언어권, 생활권이 달라도 공감과 소통이 가능했다. 이번 전시전이 보여준 파급효과는 한국의 지난 역사를 유럽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의 전파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앙굴렘 만화 전시전은 실제 4일간의 전시동안 한국의 부스에만 1만 7천여 명이 방문하는 등 외국인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피해자의 재현은 그들의 연대로 해결하다

피해자들의 연대는 국가를 넘어서서 식민지 피해자의 대표성이라는 공적 재현의 틀을 넘어서고 있다. 아직 전시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만화진흥원 측에 동남아 국가와 중국에서 함께 전시를 기획하자는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앙굴렘 전시 이후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있다. 중국, 동남아 지역에서도 일본 전시 때 피해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공감을 많이 해주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이러한 소통의 시작이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박 씨는 말했다. 한·일 합작의 연극들도 나오고 있다.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는 진실된 역사의 전파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일본 연극계의 지성인들이 연극을 통해 진실을 알리고자 한국 측과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1995년 한국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일본연출가협회장을 역임한 후지타 아사야가 극본과 연출을 맡았고, 일본 극단 에루무의 대표 사토 카이치가 제작했다. 연극 제작을 주도한 '위안부 진실을 위한 문화, 예술, 지식인연대(SAFMIS)'는 올해 말 한국의 순회공연을 마무리한 뒤 내년부터 중국, 필리핀, 일본 등 아시아 국가와 유럽, 미국 순회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일본의 모든 지식인 계층이 자신들의 역사의 과오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은 아니지만, 차츰 피해국과 가해국의 국민이라는 개념을 넘어서고 있는 예술적 시도들을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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