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전통시장 부흥을 위해 SSM(Super SuperMarket) 규제 정책을 시행 중이다. SSM이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을 가리킨다. 이 정책은 전통시장과 영세슈퍼의 보호를 위해 전통시장 반경 1km 이내에 SSM 직영점 진출을 제한하고, 유통업체가 총 비용의 51% 이상을 투자한 SSM 가맹점을 규제한다. 또한 SSM은 심야시간대인 밤 12시부터 오전 8시까지는 영업을 할 수 없으며 매월 둘째, 넷째 주 일요일에는 의무휴업일로 지정돼 영업을 할 수 없다.

그러나 SSM 규제 정책의 효과는 미미했다. 먼저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지 않았다. 또 유통법 시행 이후 대형마트가 지역에 따라 월 2회 의무로 휴업하고 있지만, 재래시장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시장과 정부는 전통시장이 죽어가는 원인을 SSM에만 돌리고 정작 중요한 문제점은 간과했다. 바로 대다수의 전통시장이 정체된 시장환경 개선을 위한 자체적인 노력을 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시장이 직면한 갖가지 문제점들은 여전히 그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질적인 통행불편

▲ 통행하기 불편한 방산시장의 도로 모습

서울시 중구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방산시장에는 포장 원자재, 특수인쇄 및 제품포장, 가공 등을 주업으로 하는 점포가 모여 있다. 거래용 자재들은 대체로 무겁기 때문에 트럭으로 운반된다. 이로 인해 좁은 골목에 대형 트럭들이 자주 다녀서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다. 방산시장 측에 문의했으나 ‘상인들이 이용하는 차를 왜 통제하느냐’는 대책 없는 답변만 돌아왔다. 자동차에 대한 통제를 하는 사람도, 시설도 부족한 상황에서 사고의 위험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주차 값이 금값, 짐은 누가 드나

시장이용객의 대부분은 여러 가지 재료를 한꺼번에 사기 위해 시장을 찾는다. 이런 소비성향을 고려해 최근 방산시장, 서울중앙시장, 중부시장 등 여러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이 자가용을 이용할 수 있도록 주차장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주차요금 문제는 이런 공간 확보의 노력을 유명무실하게 한다. 방산시장의 1시간 주차료는 6900원이다. 방산시장의 특성상 물건을 비교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긴 만큼 비싼 주차비는 이용객에게 큰 부담이 된다. 이용객들은 다른 주차장을 찾는 등의 불편을 겪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방안은 없는지 서울특별시청 경제진흥실 산업경제정책관 소상공인지원과 시장현대화팀에 문의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시장 주차료는 주변의 교통 환경에 따라 시에서 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바꾸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방산시장 측은 이 주차장이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시청과 시장 상인들 모두 주차문제를 외면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인터넷으로 비교적 저렴한 외부 주차장을 서로 공유해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SSM과 겹치는 휴무일 –휴일이 일요일?

▲ 방산시장 주차장의 요금 정산표

방산시장은 매주 일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했는데, 이는 SSM의 의무휴일과 겹친다. 방산시장 측은 “여기 근처상권이 일요일에 다 쉰다. 쉬지 말라는 법이 있냐.”고 답했다. 시장상인들의 이런 무책임한 발언은 정부가 SSM 규제법을 마련한 목적을 무색하게 한다. 시장마저 일요일에 쉰다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SSM 규제법은 실속 없는 ‘껍데기 정책’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현금 지불, 관습인가 정체인가

대부분의 시장에서 현금지불은 어느새 ‘원칙’이 됐다. 현금지불의 원칙은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중앙시장에서도 통용된다. 이곳에서는 대체로 물품들을 낱개로 저렴하게 팔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상 카드사용이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 시장의 입장이다. 그러나 카드 사용이 보편화된 요즘 이런 원칙을 고수하면서 전통시장의 부흥을 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 통인시장 도시락 카페에서 쓰이는 엽전

이 문제점에 대해 해결 방향을 제시한 사례로 통인시장을 들 수 있다. 통인시장은 ‘도시락카페’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엽전시스템을 통해 시장에서 산 낱개의 음식을 한꺼번에 계산할 수 있도록 했다. 즉 장을 보기 전에 도시락카페에서 현금을 엽전으로 교환한 후, 그 엽전으로 시장 안의 상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나만의 도시락을 만들어 먹는 시스템이다. 일일이 카드로 계산하는 번거로움과 수수료 걱정을 해결한 것이다.

이처럼 통인시장에서는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면서, 상인들의 입장만 고려한 현금지불 원칙을 강요하지 않고 소비자들의 현실에 맞게 부분적으로 타협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부 사례일 뿐 다른 대부분의 시장에서는 개선을 위한 노력조차 들이지 않고 있다.

싸지 않은 음식들, 시장인심은 어디로

최근에는 외국인관광객들이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것이 나름의 관광코스가 됐다. 그런데 외국인이 많이 찾는 몇몇 시장들은 다른 시장에 비해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음식을 판다. ‘시장 음식’하면 떠오르는 저렴한 값에 푸짐한 양은 이제 찾아보기가 어렵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서울 남대문시장의 식당가에서는 잔치국수 등 면류를 대부분 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순대볶음은 1인분을 팔지 않고 2인분부터 15000원에 판매한다.

시장 방문객 C(21)씨는 “시장 음식이 질에 비해 가격이 높아서 놀랐다. 또 음식을 다 먹은 손님을 노골적으로 내보내려하는 것이 느껴져 매우 불쾌했다. 같은 가격이라면 질이 좋으면서 조금 더 깔끔하고 서비스도 좋은 프랜차이즈를 찾게 된다.”고 했다. 시장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저렴한 가격을 기대한다. 하지만 시장음식은 일반 음식점과 같은 가격이면서도 질이 낮은 것이 현실이었다.

전통시장의 부흥에는 정책을 통한 문제 해결과 함께 시장상인들의 노력과 고민이 요구된다. 통인시장상인회의 심계순(40)씨는 “시장사람들이 경쟁력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상인회를 설립하게 됐어요. 비용 때문에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지 못하던 상인들을 돕고, 공방이나 도시락카페를 만들어 타 시장과의 차별성을 꾀했죠.”라고 했다. 상인들과 시장 전체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시장공동체가 협력한다면 문제점을 해결하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전통시장의 성장 지체 원인을 SSM뿐만 아니라 시장 상인들의 안일한 태도에서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전통 시장이 자체적으로 변화를 위해 움직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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