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PD 비평

김진혁은 누구인가?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을 졸업한 후 2002년 EBS에 입사했다. <직업탐구>, <효도우미0700>, <미래의 조건> 등을 연출했고, 2005년 9월 ‘1초’를 시작으로 <지식채널e>를 제작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기존의 다큐멘터리와 차별된 <지식채널e>의 인기 이후 여러 곳에서 강연을 했다. 2006년에는 제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TV부문 실험정신상을 수상했다. 저서는 ‘감성지식의 탄생’, ‘지식의 권유’, 공저로는 ‘인생기출문제집 1,2’, ‘좌절+열공’ 등이 있다.

EBS에서 11년을 근무한 후, 2013년 6월 <다큐프라임> ‘나는 독립유공자의 자손입니다(반민특위편)’편을 제작하다 사측과 갈등을 빚어 퇴사했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에서 TV다큐·교양 연출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뉴스타파에서 객원PD로서 미니다큐 <Five minutes>을 제작하고 있다.

김진혁의 <지식채널e>

<지식채널e>는 2005년 9월 5일 과학(Science) 카테고리의 ‘1초’ 편과, 어린이(Children) 카테고리의 ‘baby sign’ 편을 시작으로 그가 지식채널e 팀에 있던2008년 8월 까지 3년 동안 약 30여 개의 카테고리가 있었다. 김진혁 프로듀서가 제작한 에피소드는 대략 300여 건이다.

사회(society), 문화(culture), 공간(space), 진실(true), 심지어 상상(imagine), 뮤직비디오(music video), 이야기(e야기)까지 다루지만 흐름이 작위적이지는 않다. 5분 남짓의 동영상에서 오히려 여백미가 느껴진다. 일반 다큐멘터리와 달리 내레이션을 전혀 넣지 않고 주로 영상과 자막, 음악에 의존하여 지식을 전달한다. 여운은 길고 강렬하다.

시청률 조사회사 AGB닐슨미디어리서치는 시청률 1%에도 못 미치는 이 프로그램이 여느 인기 드라마도 달성하지 못한 84%의 시청충성도를 기록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시청충성도는 프로그램 방송분량 중 3분의 2 이상을 시청한 시청자의 비율이다.

감성지식의 탄생 계기


김진혁 프로듀서는 처음 <지식채널e>를 기획할 때 프로그램 이름도 없이 그저 ‘3분 미만의 지식이 담긴 짧은 프로그램’ 혹은 채널 인지도 제고를 위한 SB(station break, 토막광고)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편성기획팀에서 제작팀으로 가면서 우연히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프로그램에 대한 어떠한 비전이나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2005년 당시 캐나다 온타리오 tv가 만든 2,3분 분량의 <Matters>를 착안하여 제작하게 됐다. 스테이션 브레이크가 예고편 성격이면서 동시에 정보를 담고 있다면, <지식채널e>는 EBS에 맞게 잘 구상해 메시지를 담아 제작했다. <지식채널e>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오늘날의 포맷이 완성됐다.

<지식채널e>의 제작기간

2005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3년 여 기간 동안 300여 편의 <지식채널e>가 제작됐다. 한 편을 제작 할 때, 한 명의 프로듀서와 여섯 명의 작가가 만든다고 한다. 회의를 통해 아이템이 결정되면 작가 한 명당 하나의 주제를 전담해 대본을 물론 자료화면까지 직접 찾는다. 한 주에 2편을 방송하므로 한편의 총 제작기간은 3주가 걸리는 셈이다.
<지식채널e>는 대부분 자료화면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자료 검색에 할애 한다. 5분의 영상을 채우기 위해 100시간 검색은 기본이라고 하니 인간 검색기가 따로 없다. 영상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제작진의 이 같은 수고가 오늘날의 <지식채널e>를 만든 것이다.

김진혁 프로듀서는 최대한 전달자의 입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환경감시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매회 영상을 만들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주관성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철저한 자기검열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또 소외의 문제에 대해 시청자들이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바라봐주길 원한다면서, 개인적으로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확신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걸 내세울 경우 전달이 왜곡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최대한 ‘전달자’의 입장을 견지하려 노력한다고 한다.

시민들이 알아야 하는 내용을 편향되지 않은 시각으로 전달한다면 적어도 이슈를 외면하는 상황은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달자로서의 <지식채널e> 예를 들자면, 당시 대부분의 언론이 다루지 않았던 ‘시사저널’ 파업을 다룬 '기자' 편(2007.07.31)이 있다. 시사저널 기자들의 파업은 당시 삼성 기사 삭제 사건으로 촉발된 파업이다.

<시사저널> 870호(2006년 6월 19일 발매)에 실리기로 돼있던 "2인자 이학수의 힘, 너무 세졌다"를 취재한 기자에게 삼성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금창태 사장이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기자가 이를 거부하자 새벽에 금 사장이 직접 인쇄소에 나가 해당 기사를 삼성 광고로 대체했다. 이에 시사저널 기자들이 편집권을 보장받기 위해 6개월 여간 파업한 사건이다.

이 '기자'편에서 논란의 당사자인 삼성의 이야기를 거론하거나 양쪽의 입장을 모두 다뤘야 했다. 그러나 법적소송이 한창이었던 상황에서 <지식채널e>가 부담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고민 끝에 <지식채널e> 답게 약자의 입장에서, 즉 기자들의 입장에서 삼성은 직접 거론하지 않고 제작했다. 특정 문제점을 드러내기보다는 기자들이 파업을 하게 된 보편적인 진정성을 다뤘다. 시민들에게 <시사저널>파업에 대한 내용을 알게 했고 판단은 시민들에게 맡기게 한 것이다.
 

<지식채널e>의 영상구성

내용의 흐름은 기승전결을 따라, 시청자가 편히 볼 수 있게 한다. 처음의 기획의도였던 SB형식을 따라 도입부는 시선을 끌 수 있도록 가장 흥미로운 내용을 배치한다. 흥미로운 도입부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흔히 ‘티저’형식이라고 한다. 앞부분에 임팩트를 주면서 시청자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영상을 보게 된다.

중간부분은 창의적으로 구성해 기승전결의 내용으로 제작한다. 중간부분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 것이 관건이다. 상식수준의 이야기가 나와 지루해 할 쯤, 갑자기 마지막에 반전을 줌으로써 '아!'하고 깨닫게 하는 묘미를 준다.

마지막 반전은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여운을 주는 내용을 배치한다. 주로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현재 이러저러하다’로 끝내는 형식을 취한다.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용해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제작진은 전달자의 역할을 하고, 나머지는 시청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게 한다는 <지식채널e>의 방식을 따른 것이다.

<지식채널e>의 자막


자막은 구성에 맞게 배치한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는 영상이 중심이 되고 자막과 내레이션이 부차적 요소가 되지만 지식채널은 자막이 아주 중요하다. 실제로 콘셉트를 잡은 후부터 자막을 먼저 쓰고, 자막에 맞는 영상을 찾는 방법으로 제작이 진행된다고 한다. 대략 10~15초 단위로 한 두 문장 정도를 배치한다. 이 때 중요한 건 화면을 보면서 자막을 편하게 읽을 템포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막의 내용은 간결하게 사실만을 나열한다. 시청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 좋고 스스로 다양하게 생각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연출자의 의견이나 편견이 들어간 자막은 오히려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다. 마치 음식을 내어주기는 하지만 먹을지 안 먹을지는 오로지 시청자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과 같이, 맛에 대한 평가도 시청자가 할 몫으로 남기는 것이다.


<지식채널e>의 배경음악

배경음악은 매회 방송을 보고 따로 정리하는 시청자가 있을 정도로 좋은 음악들이 많다. 대개는 팝송이나 경음악을 사용하지만 영상의 내용과 주된 감정에 따라 클래식, 팝, 대중가요, OST 등 다양한 음악들이 선보여진다.

음악은 완성된 화면에 감정을 싣는 매우 특별한 작업으로 일반적으로 영상이 완성된 후 삽입될 음악이 선정된다. 그러나 점점 제작에서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함에 따라 음악을 먼저 생각하고 영상에 입힌 다음 편집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대개는 화면내용이나 자막 내용이 가장 중심이 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이면에 흐르는 미세한 또 다른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배경음악을 선정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기쁨’을 표현한다 하더라도 기쁘면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기쁘면서 씁쓸한 감정일 수 있다. 전자가 내용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감정이라면 후자는 숨겨진 감정이다. 배경음악은 주된 감정과 이면의 감정 모두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김진혁 프로듀서는 이야기한다.

하나의 에피소드 당 1,2개의 배경음악이 일반적이지만 영상의 주된 감정이 바뀌면서 음악도 여러 곡으로 나올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개미 에피소드 3-왕국의 기원'에서는 총 8곡의 음악이 등장하여 각각의 감정변화를 일으키는데 일조했다. 자막이 이성적인 지식의 전달이라면 배경음악은 감성적인 지식의 전달이라 할 수 있다.

지식을 바라보는 관점

단순히 외워야 하는 지식이 아닌 깨달음을 얻고 수용자가 생각할 수 있는 지식을 추구한다. 즉 '암기=지식'이라는 틀을 깨고 '지식=생각하는 힘'이라는 틀을 제시한다. 지식이 마음을 움직이는 상식과 성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진실'과 '방향성'이 필요하다. 제작진이 찾은 진실과 방향성은 "흠 없는 논리보다는 어설프고 불완전함, 마음 높은 곳에서 관망하기보다는 낮은 곳에서 부대끼는 치열함, 승자의 게임의 법칙보다는 패자의 침묵 속 삶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지식채널e'에는 유독 기존 매체로부터 소외된 사람과 주제가 많다. '잊혀진 대한민국' 시리즈를 통해 다룬 철거민, 해외입양, 한센인, 황혼 동반자살, 독립투사나 치매 노인, 탈북자, 심지어 '시사in' 기자들까지 주목 대상이다. 잘 알려진 인물이나 주제에 접근할 때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나 색다른 시각으로 다룬다. 바로 휴머니즘이다. 심판자로서의 입장에서 무엇이 그리고 누가 잘못을 저질렀는지 제시하지 않고 소외된 인간을 보여줌으로 시청자들에게 심판의 역할을 부여한다.

"시청자가 5분간 내가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가는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한다“

또한 소외된 사람과 사건을 조사하면서 소외되게 한 가해자를 찾다보니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에피소드가 자연스럽게 많아지게 됐다. 김진혁 프로듀서가 <지식채널e>를 제작한 2005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제작한 방송 300여 건 중 사람을 다룬 에피소드는 대략 20.4%를 차지하고, 사회를 다룬 에피소드는 약 19.6%의 비율이다. 약 40%가 소외된 사건과 사회적 이슈를 휴머니즘적 관점에 입각하여 제작한 것이다.

이는 그가 어린이·청소년 팀으로 인사발령 받은 후 <지식채널e>가 사회문제와 사람에 대한 방송을 선보인 비율과 큰 차이를 보인다. 2008년 8월 18일 이후부터 2014년 5월 7일까지 총 673개의 방송 중 사람과 사회이슈를 다룬 방송은 각각 51건(7.5%), 47건(6.9%)이다. 약 1.5배의 차이로 김진혁 프로듀서는 사회현안에 관련된 방송을 더 많이 제작하였다.

추구하는 주제


'소외', ‘보편성’, '휴머니즘'.

<지식채널e>는 세상에서 덜 주목받은 사람과 주제를 계속 찾아내 보여준다. 또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원망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임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지식채널e>가 추구하는 보편적 감성 중의 대다수가 휴머니즘에 대한 부분이다. '소외'라는 주제를 많이 다루다 보니 자연스레 휴머니즘이 자리 잡게 됐다. 사회적 이슈를 다룰 때 전달자의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기도 하다.

김진혁 프로듀서가 소외에 관심을 갖고 발전시키게 된 계기는 청계천 노점 상인들과의 만남이었다고 한다. 그는 취재 중 우연히 동대문 운동장 안에 들어가게 됐다. 그곳은 본인이 알고 있던 야구장이 아닌 완전히 ‘난민촌’이었다. 알고 보니 청계천에서 장사를 하던 노점상들이 청계천 복원공사로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서울시에서 임시로 동대문 운동장 안쪽에 시장을 마련해 그곳에서 장사를 하게 한 것이었다. 본래는 서울시가 상인들에게 ‘세계적 풍물 시장’을 만들어 줄 것을 약속하며 이주를 시켰지만 실상은 딴판이었다고 한다.

시장이라 하기엔 열악한 환경이었다. 또한 서울시가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풍물시장이 있다는 것조차 사람들은 몰랐다. 그의 강연에 따르면 서울 한복판에 그것도 대형 상가들이 즐비한 동대문 한복판에 난민 행색을 한 사람들이 집단 수용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바로 그 시간 콘크리트 벽 바로 밖에서 걸어가는 사람들도 안에는 푸른 잔디가 깔려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자신을 발견 한 것이 <지식채널e>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동기가 됐다는 것이다.

소외를 다루는 기법

다른 시사 프로그램이 소외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지식채널e>는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사회 카테고리의 많은 편들이 겉으로는 사회적 소외를 다루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청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소외를 얘기한다. 휴머니즘의 시각에서 단순히 가해자를 비난하거나 피해자를 동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모든 인간의 삶에 대한 ‘앎’ 즉, ‘지식’을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해 만든다.

이는 "지식은 생각을 구속하는 게 아니라 더욱 자유롭게 해야 하고, 현학적인 수사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여야 한다"는 김진혁 프로듀서의 지식에 대한 생각과 관련있다. '권력을 감시하고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제공하라'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포함하면서 목소리 없는 사람들을 단순히 대상화해 '불쌍한 사람'이 되게 하는 기존 언론의 보도형식을 지양하는 것이다.


주제의 흐름과 변화

지식채널e는 ‘1초’ ‘베이비 사인’ 등 과학과 어린이 카테고리에서 시작해 암기하는 정보가 아닌 생각하는 힘이 지식이라는 것을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적 틀과 교육방송이라는 조직의 틀 안에서 제작하다보니 갈수록 의미에 집착하게 됐다. 시간이 갈수록 시청자의 반응이 시큰둥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당시에 같이 연출한 선배가 만든 편들이 더 큰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을 보면서 재미 즉, ‘소재주의’ 콘셉트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2006.06.19.) 편을 방송했다. 대중적으로 관심이 있는 소재를 갖다 쓴 것이다. 대중의 관심사만으로 아이템에 접근하는 것은 아닐지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박지성’ 편을 계기로 <지식채널e>가 진정한 의미의 대중에게 알려지게 됐다. 이 흐름을 이어 받아 ‘no.1? dribbler, 이영표’ ‘박치기 왕 김일1,2,3,4부’ 등을 제작하게 된다.

하지만 소재주의 컨셉에서 거둔 성공은 지식채널 자체에 대한 찬사라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소재주의 한계 속에서 거둔 성공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선배가 만든 영상을 보면서 문제를 찾던 중 영상의 전반적인 느낌이 편안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별하게 만들다보니 본인도 모르게 작품에 독특한 감성이 스며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감성을 담아 제작하기로 하고 ‘보편성’이라 불리는 감정으로 <지식채널e>의 방향을 잡게 된다. 그리고 김진혁 프로듀서의 관심사인 소외된 인간과 사건에 보편성을 접목시키자 휴머니즘이라는 그만의 감정이 생겨나게 됐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한 이야기들을 다루다 보니 시민들이 알지 못하게 된 원인에 대한 이야기 즉, 권력, 인권, 언론, 경제 등 여러 가지 사회 이슈를 다루게 됐다. 2005년 총 36편의 방송 중 사회 이슈가 차지하는 비율은 25%였으나 2006년 소폭 감소한 것을 제외하고 2007년 35.7%, 2008년 46.2%로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드라마 연출가가 꿈이었던 김진혁 프로듀서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적 공식을 깬 <지식채널e> 에 맞는 특별한 실험을 시도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당연히 존재한다고 인식됐던 것이 없어졌을 때의 이야기를 다룬 ‘스프가 없네’(2007.01.29.)를 시작으로, 자료화면을 사용하던 기존의 형식을 깨고 직접 드라마형식으로 촬영을 하는 모험을 했다. 그의 실험정신은 ‘거대우주선시대 1,2부’, ‘바다의 요정, 인어’, ‘사랑에 빠진 암소와 호랑이’, ‘레몬트리1,2,3,4부’ 등으로 이어진다. 이는 형식적, 내용적 대중성을 다큐에 접목시켜 만든 것으로 지식과 정보 전달내용의 작품이 감소 추세에 있을 때 꾸준히 증가했다.


뉴스타파 미니다큐


김진혁 프로듀서는 EBS를 퇴사한 후, 9월부터 <뉴스타파>측의 제안으로 <미니다큐>를 제작하고 있다. <미니다큐>는 EBS PD로 있을 당시 만든 <지식채널e>의 형식과 주제의식이 비슷하다.

 

게시일

제목

내용

길이

2013/09/17

Good night, Good luck 1,2 부

권력눈치보지 않고 소신껏 권력을 비판한 에드워드 머로의 이야기

11분 10초

2013/11/01

"친일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1~3부

친일연구자 임종국 이야기

16분 57초

2013/12/13

복지국가 스웨덴의 비밀 1~3부

복지,경제성장 모두 이룬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의원이었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사회민주주의정책 이야기

18분14초

2013/12/24

주교 지학순

지학순 주교 민청학련사건

7분15초

2014/01/08

역사를 잊은 민족, 

1부 새로운 유형의 통치자

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토코 문화정책실시 조선 내 친일파 급증

6분 50초

2014/01/22

역사를 잊은 민족, 

2부 우리 안의 전쟁 

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토코 문화정책실시 조선 내 친일파 급증8분 54초

2014/02/05

다 네 잘못이다

카드사정보유출 피해를 소비자 탓으로 넘기는 현상, 공평한세상의 오류

7분 18초

2014/02/19

안녕하십니까?

대학생들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운동

8분 24초

2014/03/05

4만 7천원

노조파업, 손해배상청구 문제, 노란봉투캠페인

8분 40초

2014/03/19

천국의 집

불안정한 부동산정책으로 고통 받는 서민들 

8분 13초

2014/04/02

가난한 사람이 줄어드는 나라 

세모녀 자살사건, 복지정책의 허점지적

8분 19초

2014/04/16

의자뺏기

이명박 전대통령의 고졸출신채용정책 비판, 실효성 없음

8분 19초

2014/05/01

기다리래

세월호 침몰 사건, 선장의 무책임성

8분 6초

2014/05/14

공감, 하나

세월호 침몰에 대해 공감능력부재를 보인 사람들

8분 2초

<표> 뉴스타파 김진혁의 미니다큐 작품 목록

이전보다 김진혁 프로듀서의 주제의식과 시의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제3의 프레임 즉, ‘차별화된’ 프레임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도 그대로 추구하고 있다. 선과 악, 물질과 정신, 보수와 진보라는 대립적인 구도를 선택하기보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프레임을 던져준다. 이는 시청자가 훨씬 더 유연하게 사고하게 해준다.

언론은 사실을 전달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사실을 전달하느냐에 따라 누구의 사실을 전달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이라도 다르게 인식하게 한다. 1963년 미국의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베트남전의 상황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긍정적으로 보고했고, 매체는 이를 정확하게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8년 후 펜타곤 문서들이 드러나면서 로버트 맥나마라의 말이 모두 진실에 접근하지 않았다. 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는 상황에 따라 뒤집힐 수 있는 진실의 가변성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김진혁 프로듀서는 제3의 시각에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시청자가 더 넓은 안목을 가지고 진실을 판단하게 돕는다.

하지만 뉴스타파의 <미니다큐>에서는 이전보다 좀 더 주관성이 가미된다. 다큐멘터리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가 ‘기록’이긴 하나, 있는 사실을 정확하게 담는 것을 넘어서서 진정성이라는 내용물도 포함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에 나타난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전보다 시의성이 훨씬 두드러지고 현재 우리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언론을 긍정하라. 그리고 의심하라.

김진혁 프로듀서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할지 의제를 설정해주는 언론의 존재를 좋든 싫든 인정하라고 한다. 사회에 속해있고 미디어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끊임없이 매스 미디어의 영향을 받게 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미디어들이 오롯이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에게 충성하고 있는가?’ 라는 언론의 임무수행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우리 언론이 취하는 ‘기계적 균형’은 저널리즘의 생명과도 같은 원칙인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가 없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지속된 군사독재 정부는 언론이 그들을 제대로 비판할 수 없게 압박을 가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권력도 비난하며 압력을 피할 수 있는 차선책으로 우리 언론이 ‘기계적 균형’ 보도를 시작하게 됐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진혁 프로듀서는 기존매체들이 전달하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비판하라고 주문한다. 한쪽으로 편향된 내용만이 아닌 반대쪽 이야기도 접해보고, 언론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기사를 전달하진 않았는지 의심하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언론관은 이미 <지식채널e>에서 그가 설정한 프레임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지식은 암기가 아닌 생각하기’라면서 제3의 프레임을 던져주었듯, 우리도 뉴스가 과연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누구의 입장에서 사실인지 생각해보고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용자들이 스스로 판단을 하도록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은 1997년 당시 뉴욕타임스의 편집국장 빌 켈러씨가 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언론인 위원회(CCJ) 주최의 포럼에서 한 발언과 일맥상통한 면을 보인다.

“진짜 객관성이 가능한가는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가 아니다. 우리는 독자들이 스스로 그나 그녀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임무다.”
 

마치면서

“제가 가족이라도 KBS 꼴도 보기 싫었을 것입니다...”

한 젊은 기자가 울먹이며 얘기했다. 그는 왜 눈물을 흘리는 것이며, 그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기자로서 공정하고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지 못한 참담함이었을까? 아니면 기자이기 전에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인간성을 지닌 평범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 때문일까?

해당 기자는 팽목항에서 세월호 사건을 현장 취재하며 유가족들과 소통했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했다. 데스크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여러 경험들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입장에서 뉴스를 작성하고 전달하고자 노력하였으나 보도된 내용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균형을 통한 공정성과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정확성은 언론인에게 생명과도 같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언론인의 자질은 휴머니티이다. 사람들을 뉴스거리로 판단하기 이전에 인간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소통해야 한다.

김진혁 프로듀서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통과 공감의 정신을 보여줬다. 그가 만든 방송들은 사회에서 주변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사람과 사건을 남다른 관점으로 전달한다. PD라면 언제나 고민해야 하는 시청률에 연연해 하지 않고 소외된 이슈들을 시민들에게 알리는데 더 중점을 뒀다. 100시간이 넘는 자료검색도 거뜬히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메세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SNS의 발달로 시공간을 초월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오히려 대인간 접촉은 줄어들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공론의 장이 만들어졌지만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인한 명예훼손과 여론조작 등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소통은 주요화두이지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진정성을 가지고 시민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줄 아는 언론인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비록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지만, 사실이 진실의 필요조건이 아님을 앞에서도 언급했다. 저널리스트는 옳고 그름도 판단해 시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저널리스트에게 건강한 직업윤리가 필요한 대목이다. 김진혁 프로듀서는 자신의 직업윤리에 맞춰 방송을 진행했다. 그러나 종종 '교육방송에서 사회적 이슈를 지나치게 많이 다루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교육방송에서 다룰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교육적인 내용이란 것이 무엇인가요? 광우병을 다루는 것이 비 교육적인 것인가요? 만약 그것이 비 교육적이라면 내용의 어떤 부분이 비 교육적인지 말씀을 해 주셔야 하는데 그저 'ebs가 학생들이 많이 보는 방송이니 사회 현안에 대해서 다루는 것은 비 교육적이다' 라고 하시면 ebs의 교육은 그저 입시라는 말이고, 입시관련 내용이나 열심히 하라는 말로 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지 않나요?"

국제 언론감시단체 프리덤 하우스는 '2014 언론자유 보고서'에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32점으로 매겼다. 순위는 지난해보다 4단계 하락한 68위다. 우리언론이 정치적 압력과 통제, 자본 압력과 통제 등으로 상실한 언론자유국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언론인 스스로가 저널리즘의 본질과 정도(正道)를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김진혁 프로듀서의 언론철학과 작품들이 '언론자유국' 지위를 회복하는데 필요한 언론인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