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설치된 '나른한 오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이랜드해가든 아파트 단지에 있는 ‘나른한 오후’를 찾아갔다. 작품의 제목만큼이나 따스한 날씨였다. 구조물의 겉모습은 깨끗했다. 가까이서 보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입 속엔 흙이 가득 찼고, 군데군데 낙엽과 담배꽁초가 보였다. 얼굴은 원래 나른한 오후에 벤치에 누워 한적함을 느끼는 표정이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3동에 설치된 '려일'

‘려일’은 줄에 묶여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태영으뜸아파트 단지의 공공미술작품 ‘려일’은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발견됐다. 허리에 감긴 노끈은 뒤에 있는 기울어진 나무에 연결됐다. 미술 조각품은 쓰러지는 나무를 지탱하기 위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었다.


2014년 3월 22일 토요일. 3명의 기자가 건축물 미술품의 실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만여 개의 작품을 확인할 수 없어, 서울 서대문구로 한정했다. 작품에 대한 정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공공미술포털’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비교적 관리가 잘 되는 곳도 있었지만, ‘려일’처럼 미술품으로서의 역할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공공미술포털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를 소개하는 웹사이트(www.publicart.co.kr). 작품 위치, 분류, 가격, 건축물 용도와 관련된 통계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한다.

 

 

관리되지 않는 건축물 미술품 실태

 

▲ 서울시 서대문구 천연동에 설치된 '꿈'

‘꿈’은 천연동 뜨란채아파트 103동 건물 뒤편에 있었다. 해가 한 가운데 뜨는 정오에 찾아갔음에도, 이곳엔 햇빛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차만 작품 앞을 간간히 지나갈 뿐이었다. 구조물 옆 벤치엔 먼지만 쌓여 있었다. 조각의 두 손 위에는 벽돌과 마른 나뭇잎이 있었다. 원래 의도는 꿈을 주는 모습이라 했으나, 그 의도는 잘 살지 못했다.

 

▲ 서울시 서대문구 대현동에 설치된 '사유 인'

 

 

 

 

대현동 길가에 있는 ‘사유 인’은 책이 펴진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는 인물상이다. 책에는 ‘바보’라는 낙서가 쓰여 있었다. 책상 부분에는 지저분한 얼룩이 묻어 있었다. 굳은지 오래되어 손으로 문질러도 닦이지 않았다.

 

 

▲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2동에 설치된 '비를 기다리며'

 

 

 

김서경 작가의 ‘비를 기다리며’는 홍제2동 청구아파트 놀이터에 있다. 전체적으로 이끼가 끼어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조각 하단의 땅이 패여 있어, 밀었을 때 심하게 앞뒤로 흔들렸다는 점이다.

 

 

 

▲ 서울시 서대문구 합동에 설치된 '빛(꽃)의 정원'

 

합동 SK 리쳄블 건물의 ‘빛(꽃)의 정원’은 감상하기도 어렵다. 건물을 관리하는 직원에게 작품을 찾고 있다 말하니, 직원은 로비의 구석을 가리켰다. 로비 끝에 있는 복도는 성인 보폭 한 걸음 반도 안 될 정도로 좁았다. 정면에서 그림 전체를 사진에 담기도 어려웠다.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문화예술진흥법


문화예술진흥법 9조에 따라, 연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의 건물을 짓는 건축주는 반드시 미술작품을 만들거나 기금을 내야한다. 이 제도는 1972년 8월 문화예술진흥법 제정 시 건축비 1%를 미술장식 설치에 투자하라는 권장사항으로 규정됐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이 제도는 1984년 서울시에 한해서 건축물 설치를 의무화 했다가 1995년 대상 건축물 규모를 1만 제곱미터로 완화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무화했다. 애초 이 제도는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 제정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공미술 자료 웹사이트인 '공공미술포털'에 따르면, 이 제도는 건축물에 문화적 이미지를 부여, 지역민의 예술체험 및 예술가의 창작기회 확대, 기업의 메세나 활동 활성화를 통한 문화예술의 발전을 목표로 운영된다.


2013년에만 전국에 596개 미술작품이 설치됐고, 금액은 55,975백만 원이 들었다. 1996년부터 2013년까지 총 13,996개 작품에 984,292백만 원이 들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공공무술은 미술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단법인인 예술 경영 지원센터가 발표한 2012년도 미술시장실태조사에 따르면, 2012년 한국 미술시장 공공영역의 규모는 약 77792백만 원이다. 당해 건축물미술작품 시장은 62051백만 원이었다. 한국문화예술진흥회 공공미술팀 전계웅 대리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이 제도와 관련해 “미술계에서는 이 제도가 없어지면 타격이 클 것이다. 이 제도로 인해 실질적으로 형성된 시장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화예술진흥법 9조 (건축물 미술작품제도)
건축주는 연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 일정한 용도의 건축물을 신·증축할 때,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1% 이하)을 회화, 조각, 공예 등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거나 기금에 출연해야한다.


사후관리가 안 되는 이유: 사유재산인 공공미술


건축물 미술작품제도 때문에 만들어진 작품의 소유주는 건축주다. 애초에 건축주가 낸 사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공공미술팀 전계웅 대리는 “도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측면에서 공공 미술이지만 소유는 건축주로 되어있는 사유재산이다.”라고 했다. 지난 2월 24일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양현미 상명대 미학과 교수는 “건물주가 무단 철거해도 처벌 규정이 없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현행법의 한계 때문이다.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 제15조에 따라, 시·도지사는 미술작품이 문제가 생길 경우 복구하도록 조치해야한다. 전계웅 대리는 “서울시는 1년에 한 번씩 미술품을 조사 한다”고 했다. 실제로 공무원들이 조사 후 훼손·파손에 대해 공문을 보낸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전 대리는 “조례에는 원상회복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까지만 정해져있다”고 했다.


심지어 고의나 과실 여부에 따라, 요청도 못할 수 있다.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 제15조는 예외 규정으로 건축주의 귀책사유를 들고 있다. 고의나 과실이 아니라면, 소유주도 반드시 고쳐야 할 의무가 없다는 의미다. 위 사례처럼 공공미술로서 역할을 못하더라도 지나가는 행인에 의해 발생한 상황이라면, 누구든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예술위원회 공공미술팀에 의하면 법적인 한계뿐만 아니라, 건물의 용도 때문에 관리가 안 되기도 한다. 상업건물을 설계할 땐, 최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미술작품은 등한시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빛(꽃)의 정원’처럼 찾기도 힘들며 감상하기도 힘든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전계웅 대리는 이어서 “아파트 같은 공공주택은 소유주가 자신의 재산인지모르기 때문에 관리가 안 된다”며 “건설사가 아파트를 만들었지만, 모든 집은 개개인에게 팔린다”고 했다. 즉, 해당 미술작품은 아파트 주민의 공동소유가 된다.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주민들은 그저 설치된 작품으로만 인식한다. ‘려일’처럼 나무의 버팀목 정도로 활용되는 것은 주민들의 자기 재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엔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애프터서비스의 일환으로, 분양된 아파트의 미술작품을 관리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건축물 미술품, 진정한 공공미술이 되기 위한 노력


공공미술작품 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안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2013년 5월 이군현 국회의원은 문화예술진흥법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내용이 통과되면, 건축주는 원상복귀 조치를 따르지 않았을 때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다만 발의된 지 1년이 돼가도록 본회의 심사도 거치지 못했을 뿐이다.


안양시에 가면 도슨트를 야외에서 만날 수 있다. 도슨트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전시물과 작가에 대해 설명하는 작품 해설가다. ‘4회 안양 공공 예술 프로젝트 홈페이지’에서 APAP투어를 신청하면, 공공예술 전문 도슨트가 아파트, 행정기관, 도로변을 다니면서 작품에 대해 설명 해준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자원봉사 도슨트를 모집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전문 도슨트를 육성했다. 공공미술포털에 등록된 안양시 내 건축물미술작품은 209개다. 2014년 4월 13일까지 등록된 작품은 모두 14,220개인데, 이 중 14,000여개가 도슨트없이 홀로 있는 것이다.


건축주는 건축물 미술작품제도를 규제가 아니라 기회로 간주 하기도 한다. 작품이 아파트 구매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권혁인 교수는 위시티(Wi-City)를 통해, “공간스토리텔링 요인이 시설물 호감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문을 썼다. 위시티는 미술작품에 공간스토리텔링을 적용한 일산의 주거단지다. 건축물 미술품이 시민에게 공공미술 경험을 제공할 뿐 아니라, 건물의 가치 또한 높일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 문화 예술 위원회 전계웅 대리는 건축물 미술작품제도가 만들어지고 “3년 후부터 문제제기 기사가 있지만 수가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해에도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스토리오브서울에서도 이를 또 다루고 있다.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도슨트 운영, 작품의 효과 연구처럼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있다. 하지만 몇몇 지역만의 일이다. 전국엔 아직도 수많은 ‘나른한 오후’와 ‘려일’이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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