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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들의 암호같은 정책명...K-MOOC•dBrain•V-word…
김수진 기자, 문현경 기자 | 승인 2014.06.09 14:24

 

   
 


창업을 원하는 서울시 여성이라면 마땅히 지원받았어야 할 돈, 약 116억 원이 주인을 찾지 못했다. 서울시가 1인당 약 19만 2,500원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맘프러너 창업스쿨’ 의 어려운 이름 때문이다. ‘맘프러너’는 맘(Mom:엄마) + 안트러프러너(Entrepreneur:기업가)의 합성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성을 위해 서울시와 서울산업통상진흥원이 제공하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맘프러너 창업스쿨’의 대상이 되는 서울시 여성 인구 344만 명 중 13.7%인 47만 명은 설명을 들은 뒤에야 ‘맘프러너’ 정책의 취지를 알게 됐다. 그 중에서 60,376명이 교육 과정에 참여할 의사를 보였다. 처음부터 정책의 취지를 알았다면 6만 여 명의 여성이 19만 2,500원 씩, 총 116억 2천만원의 교육비를 시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어원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1년부터 ‘공공언어 개선’을 주요 과제로 선정하고 ‘공공언어지원단'를 신설해 자문과 감수를 맡는 등 노력해왔다. 그러나 비슷한 실수는 정부 부처 곳곳에서 수년 째 반복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는 ‘엑셀러레이터 리더스 포럼’, 안전행정부의 ‘공공형 스마트워크 센터’ 역시 이름만으로는 내용이나 성격을 짐작하기 어렵다. ‘엑셀러레이터’는 창업 초기 회사를 보육하는 전문기관을, ‘스마트워크 센터’는 근로자에게 제공되는 원격근무용 사무실을 말한다.

미래창조과학부에 외국어로 된 이름이 붙여진 정책에 대해 묻자 “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엔젤투자’, ‘벤처’, ‘캐피탈’등 벤처창업 분야의 용어는 대부분 영어”라며 “해외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해 국내 업계에서도 쓰이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엑셀러레이터’라는 영어 대신 ‘창업기획사’등으로 용어를 순화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엑셀러레이터 리더스 포럼’이 출범하게 된 것은 “업계에 있는 분들이 그렇게 부르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의학용어를 쉽게 한글로 바꾸기 어렵듯이, 전문성이 있는 업계에서 (언어 순화는) 전반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4년 부처의 업무계획보고에는 새로 시행하거나 보완•확대 시행할 정책과 사업 방향이 명시돼 있다. 이 문서에는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한 정책이나 사업이 각 부처별로 평균 3개 꼴이다. 누구나 양질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한다는 온라인 대중공개강좌에는 K-MOOC’, 사고 발생 시 차량 위치를 보험사 및 경찰 등에게 자동으로 전송하는 시스템에는‘Emergency-Cal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외교부

(6)

.. 1.5트랙 회의

투트랙 접근법(PETA)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한반도 클럽

그린 데탕트

국토교통부

(7)

희망임대리츠

그린 리모델링

제로 에너지 주택

M-버스

Emergency-call

V-World

블라인드 리츠

해수부

(3)

동북아 오일허브항

한국형 e-Navigation

Golden Seed 프로젝트

기획재정부

(3)

엔젤투자 소득공제 확대

dBrain

PI Board

환경부

(4)

소재 뱅크

탄소포인트

그린카드

물산업 클러스터(대구)

법무부

(4)

출소자 취업성공패키지

희망도우미 프로젝트

법률홈닥터

클린피드백

문화체육

관광부

(10)

서울아트마켓

온 드림 스쿨

HD 드라마 타운

스토리 창작 클러스터

예술인패스

한민족 문화아카이브

청소년 문화패스제

e-school

위풍당당콘텐츠코리아펀드

굿다운로더 캠페인

교육부

(6)

Wee 센터 / Wee 스쿨

인문브릿지

BK21 플러스

K-MOOC 사업

이러닝

캠퍼스 아시아

고용노동부

(3)

K-Move 사업

스펙초월 멘토스쿨

육아연계형 스마트워크센터

안전행정부

(2)

골든타임제

스마트빅보드

보건복지부

(1)

마더세이프

미래창조

과학부(2)

비타민 프로젝트

엑셀러레이터 포럼

통일부

(2)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농림축산

식품부(1)

가금시설 리모델링 플랜

산업통상

자원부

(3)

13대 산업엔진 프로젝트

트레이드내비

자립형 마이크로그리드

여성가족부

국방부

없음

<표 1> 2014년 각 부처 업무계획보고에 언급된 정책명 중 외국어가 포함된 사례

“특정 업계에서 통용되는 전문용어이기 때문”이라는 부처 관계자의 설명과 달리 일반 국민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는 정책도 국어 대신 외국어를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0년부터 설치해 운영하는 ‘마더세이프 상담센터’는 임신 초기 흡연과 음주, 약물 복용으로 낙태를 고민하는 임신부들에게 태아기형을 유발하는 위험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전문 상담기관이다. 임신부 뿐 아니라 출산 계획이 있는 국민 누구에게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지만, ‘마더세이프’라는 이름만으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추측하기 어렵다.

마더세이프 중앙센터가 있는 서울시 중구 관동의대 제일병원에는 상담센터가 위치한 별관 건물 외벽에 병원 이름과 함께 상담센터의 이름이 눈에 띄게 보인다. 그러나 이런 안내에도 불구하고 임산부들은 ‘마더세이프’가 어떤 곳인지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듯 했다. 생후 4개월 된 둘째 아들이 있다는 김미진(30) 씨는 마더세이프에 대해 “들어본 것 같긴 한데 뭐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출산•육아 고민을 나누는 커뮤니티 ‘맘스홀릭 베이비’ 질문 게시판에는 임신 초기에 복용한 감기약, 진통제 등에 관한 상담 글이 올해에만 수십 건이 올라와 있다.

쉬운 모국어 쓰기는 세계적 추세

영국 리버풀에서는 1979년 어려운 공문서와 정책 용어 때문에 영세민이 숨진 일이 있었다. 난방비 신청서식의 어려운 용어들을 이해하지 못해 난방비를 신청하지 못해 얼어 죽은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영국에서는 민간단체에 의해 ‘쉬운 영어 쓰기 운동(Plain English Campaign)’이 일어났다. 쉬운 말 쓰기 운동은 영국에서 시작해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미국에서는 1998년 쉬운 영어 사용규정이 마련됐고 2010년에는 ‘쉬운 글쓰기(Plain Writing Act of 2010)’법안이 통과됐다. 주 별로 존재하던 지침이나 주 법률을 연방차원에서 법률로 제정한 것이다. 이 법안은 쉬운 언어는 곧 시민의 권리라고 규정한다. 정부의 정책을 대중들에게 더 잘 이해시키고, 그들이 보다 수월하게 필요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이 법안의 목적이다.

스웨덴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정부가 언어위원회를 구성해 행정용어는 물론 법률용어도 쉬운 말을 쓰도록 했다. 오늘날 스웨덴 행정당국 절반 이상이 ‘쉬운 말 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국무조정실에 상근하는 언어학자를 기용해 당국에서 작성한 서류를 배포하기 전에 쉬운 언어로 쓰였는지 검토하고 확인하는 임무를 맡기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스웨덴 언어위원회 소속 ‘쉬운 언어 자문관’ 에바 올롭슨 씨는 "쉬운 말로 작성된 이해하기 쉬운 공식 문서는 민주주의의 전제 조건"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한글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이 국제회의에서 올롭슨 씨는 영어가 자국어에 침투하는 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영어 낱말들과 함께 스웨덴 낱말들을 개발하지 않으면 한 분야를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국어책임관이 국어를 책임질 수 없는 이유

우리나라는 2005년 국어기본법을 제정하고 제 14조 2항에 ‘공공기관이 작성하는 공문서의 한글사용에 관하여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공문서의 한글 사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한 셈이다. 또한 2009년부터는 중앙행정기관과 정부 부처, 지방자치단체에 국어책임관을 두도록 했다. 4월 말 현재 국어책임관은 564명에 이른다. 1991년 개원한 국립국어원에서는 중앙 부처, 지방자치단체 등의 업무보고, 보도자료, 법령이나 조례 등을 감수한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은 감수•권고에 그치기 때문에 강제력이 없다. 행정용어 순화 및 공공언어 개선 업무를 맡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의 이보라미 연구사는 공공언어의 전문성과 권한의 한계를 말한다. 정책의 이름은 부처에서 개발하고 추진하므로 문체부에서 특정 언어를 사용하라고 강제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이 연구사는 “국립국어원에서 보도자료를 상시 점검하고 있긴 하지만 부처의 사정 상 어쩔 수 없이 외국어나 외래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책 시행 일정에 여유가 없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국립국어원 김문오 연구관은 “정책명을 발표하기 전에 먼저 국립국어원의 공공언어지원단 쪽으로 자문을 구하면 검토 뒤 적절한 답변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에 쫓겨 부처에서 정한 정책명을 그대로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이미 정책명이 발표된 상황에서 공문을 보내 용어 순화를 권고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국어책임관제도를 움직이는 힘이 부족한 점도 문제다. 부처와 지자체에서 국어책임관을 반드시 임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권고에 따라 책임관을 두고 있지만, 대부분은 겸직이다. 국어책임관이라는 이름으로 전문가를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기존 공무원 중 일부를 국어책임관으로 임명하는 것이다. 책임관에 관련된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권한을 갖는다. 어떤 사업을 얼마나 벌일지는 전적으로 책임관의 의지에 달려있다. 국어정책과 김구영 사무관은 “책임관의 의지에 따라 많은 업무를 할 수 있고, 아니면 그 기관은 (국어책임관의 활동이) 미흡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어책임관으로 임명된다고 해서 추가 임금을 지급받는 것은 없다. 책임관의 책임이 아닌 의지에 일을 맡겨두게 되는 셈이다.

국어책임관은 주로 중앙정부 부처에서는 대변인이나 홍보 담당 부서장이, 전국의 시•도에서는 문화예술과장이 맡고 있다. 국어와 관련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시행 초기부터 전문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돼 왔다. 이 때문에 지난해 9월, 국어책임관에 전문가를 붙여주도록 하는 국어전문관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국어기본법 개정안이 나왔으나, 아직까지 입법 예고 상태다.


어려운 말 때문에 드는 비용 한 해 280억 …정책명 쉬워져야
특정 분야의 담당자나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많아지면 일반 국민들은 정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기 어려워진다. 국립국어원이 현대경제연구원에 의뢰한 ‘공공언어 개선의 정책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어려운 정책용어로 인해 국민이 낭비하는 시간 비용이 해마다 약 114억에 이른다. 여기에 공무원이 민원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도 약 52억 원에 달한다.

물론 모든 용어를 우리말로 바꿔 쓸 수는 없다. 국립국어원은 순화 정도를 ▲순화한 용어만 쓸 것 ▲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를 쓸 것 ▲순화 대상 용어와 순화한 용어를 모두 쓸 수 있는 것의 3단계로 분류한다. 이미 널리 쓰이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강제하면 혼선이 생길 수 있고, 우리말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용어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국어로 된 이름만으로는 어떤 정책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다. 한글문화연대 정인환 운영위원은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도 외국어로 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보를 제한해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쉬운 말을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국립국어원 김문오 연구관은 “정책 수혜자인 국민들이 어려운 용어로 인한 불편을 적극적으로 호소할 때 정부기관의 권고보다 훨씬 큰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 공공언어= 공공기관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 국가 공공기관이나 민간단체가 국민을 대상으로 작성한 각종 문서와 담화, 그리고 국가 공공기관끼리 주고받는 문건과 보고회의, 담화 등이 이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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