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 R. 선스타인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최근 한 신문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아프리카까지 번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미 대(對)테러전 이후 정치적 혼란으로 난민들이 증가하고 빈곤이 극심해지면서 급진주의를 옹호하는 쪽으로 민심이 몰린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극단화가 합리적인 사고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구성원들의 ‘분노’를 유발하며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 의하면, 실제로 국제테러단체 ‘알카에다’의 경우, 무슬림 세력을 단일화 하기위해 이슬람교도들을 일방적인 희생자로, 그들을 배척하는 모든 세력을 억압자로 정의했다. 중간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슬림 빈민 청년들의 분노가 극에 달할수록 그들은 더욱 벼랑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앞서 언급된 ‘분노’는 수많은 극단의 메커니즘 중 일부일 뿐이다. 실제 극단화 과정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변수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다른 메커니즘과의 유기성 등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위에 제시된 테러리즘도 사람들의 분노라는 감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집단 내 강력하게 형성된 유대감 및 끊임없는 세뇌교육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테러리즘의 경우를 제외하고도 대부분의 상황에서 집단정체성이 갖춰지면 중립에 가까운 입장을 지지하던 개개인의 성향이 극단으로 몰리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자신의 견해에 대해 내부적인 동조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 곳으로 수렴되는 집단 전체의 의견은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여러 실험사례들을 제시하는데, 놀라운 사실은 객관적인 위치에 있어야 하는 판사들 역시 유사한 정치적 성향을 지닌 집단의 일원이 되었을 때 극단화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사사로운 가치관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쉽게 그 함정에 빠져든다.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전히 부동산버블, 주가폭락, 테러리즘은 이 시대의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즉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집단사고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우리는 여전히 극단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단, 책에서는 몇 가지 예외적인 상황을 제시한다. 바로 낙태, 사형제도, 국가안보 등과 같은 이슈들이다. 위 사안들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오랜 시간동안 논의돼왔고,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각 사안들의 찬반 논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에는 개개인의 통념이 장기간에 걸쳐 확고하게 정립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집단 사고에 쉽게 종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 때로는 뿌리 깊은 통념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가 존재한다. “동성애자 및 낙태 여성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혼, 낙태, 동성애는 가톨릭 보수 세력의 핵심 가치인 ‘가족의 신성함’과 반대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황의 발언은 고전적 가치를 깨부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교회라는 거대 집단이 고수해온 통념, 특히 위에서 제시한 낙태 문제가 다시금 화두에 오르는 것은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 물론 교회 내 보수진영의 반발로 인해 이 사안이 극단의 메커니즘에 의해 지배받게 될 확률이 높아지긴 했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여태까지 극단화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무서운 현상이었을지라도 그것이 절대악이라고 볼 수는 없다. 책에서도 마지막 장에서 극단주의의 긍정적인 효과, 이른바 ‘착한 극단주의’를 언급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대표적으로 2차 다양성, 즉 극단으로 치우친 집단들 사이의 다양성이 증진되어 나타나는 이점, 그리고 집단 내부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지켜질 수 있는 견제와 균형 등이 있다. 이렇듯 극단주의는 사회를 저해하는 특성만 지닌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독자적인 장점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장점을 얻기 위해서는 극단화의 위험성이 먼저 해결돼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형성된 집단사고의 틀을 깨뜨릴 필요가 있다. 앞에서의 사례처럼 낙태 사안을 대하는 교황이 변화된 태도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극단화의 이면을 알고 함정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면, 극단화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도 허황된 꿈은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