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로버트 랭던

1998년 스페인 세비야. 의문의 남자가 사망했다. 그 중심에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있었다. 2000년 로마, 바티칸,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의 반물질과 일루미나티가 만났다. 로버트 랭던이 세상에 등장했다. 2001년 북극. NASA가 우주 암석을 발견했다. 워싱턴에선 대선을 앞두고 있었다. 하버드 대학의 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 ‘똑똑하다’는 이유로 대륙을 넘나들며 온갖 사건을 겪는다. 모든 반전의 중심에 그가 있다. 그런 랭던을 인도하는 사람은 미국의 작가 댄 브라운이다.

현실, 댄 브라운

댄 브라운. 1964년, 뉴 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 영어 교사로, 음악가로 잠시 활동했다. 1998년에 첫 소설 <디지털 포트리스>로 데뷔해 총 6편의 소설을 썼다. 5년 뒤, 그는 한 순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다 빈치 코드>다. 2001년 <천사와 악마> 이후 재등장한 랭던은 당돌하게도 미술계 거장을 지목했다. 단 두 점의 작품이었다.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랭던은 다 빈치에서 그치지 않고, 기독교를 지목했다. 세상 사람들과는 영 다른 시각으로. 예수 옆의 인물이 누군가를 두고 설전이 오갔다. 댄 브라운이 주목 받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데뷔 7년 만에 미 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 됐다. 같은 해 <다 빈치 코드>는 제 16회 영국 북어워즈 행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출판 이후 64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145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2011년 9월, 그는 영국 가디언이 선정한 ‘출판 산업을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인사 100인(Books Power 100)’에 들었다. ‘소설계의 빅뱅’이 됐다.

팩션(faction) 그리고 비밀스러운 팩트(fact)

‘이 책에 드러난 모든 조직은 실제 조직이다.’ ‘이 책에 드러난 모든 요소는 실재한다.’ 댄 브라운은 소설 첫 장에서 늘 이와 같이 말한다. 그의 소설은 허구보다 사실이 압도적이다. ‘어디까지가 진짜인가’라는 물음에 “작품의 99%가 사실”이라 답한다. 모든 사실 배경 위에 로버트 랭던의 발자취를 남긴다. 나머지 1%의 상상이다. 그의 소설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결합, 팩션(faction) 그 자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확인(fact-checking)에 철저할 수밖에 없다. 댄 브라운은 분명한 사실을 위해 “직접 그 장소에 3번 이상 간다”고 했다. 굳이 세 번이나 가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두 번 다녀오는 것으로 모든 디테일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사실들은 ‘비밀스럽다’. 데뷔작 <디지털 포트리스>부터 가장 최근의 <인페르노>까지. 그중 예외는 없다. 그것들은 그동안 독자들이 상상하지 못했거나 미처 몰랐던 것들 투성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 소설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그 안의 모든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댄 브라운이 담아낸 99%의 사실들은 예측 불가능했던 것들이었다. 거대하며, 방대했다.

 

<디지털 포트리스>에서 등장한 NSA는 책 발간 당시 단 2%의 미국인만이 그 존재 여부를 알았다. <천사와 악마>에서 교회를 붕괴시키려 이용된 ‘반물질’은 “실재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다 빈치 코드>에서 등장한 다 빈치의 1495년 작 ‘최후의 만찬’도 논란의 중심에 서야만 했다. ‘예수의 옆자리’를 놓고 벌어진 논쟁은 이미 기독교 사회가 가지고 온 두 가설의 양립이었다. 사람들은 몰랐고, 댄 브라운이 그 중 하나의 가설을 채택했을 뿐이다. 비밀들이 독자를 당황스럽게 하겠지만, 댄 브라운은 비밀을 좋아한다. “비밀이 우리 모두를 흥미롭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소설의 본 목적은 긍정적인 것’이라 믿는 댄 브라운. 그에게 99%의 ‘비밀스러운’ 사실들은 댄 브라운표 스릴러를 이루는 귀한 자산이다.

댄 브라운 논쟁

반전 없는 스릴러가 어디 있으랴. 하지만 댄 브라운의 소설은 ‘블록버스터’급 스릴러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가 긴 역사와 방대한 학문 속에서 펼쳐진다. 그의 소설은 각종 예술과 과학, 종교를 한 몸에 담고 있다. 그 특징을 단번에 보여준 것은 <다 빈치 코드>다. 이 소설을 빼고 댄 브라운을 말할 수는 없다.

기본적인 것일수록 바꾸기 힘들고, 거대한 것일수록 파장은 크다. 2003년 <다 빈치 코드>의 출간 이후, ‘댄 브라운 논쟁’이 벌어졌다. 댄 브라운은 기독교의 기면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당시 그는 작가인생 5년도 채 안 된 신인이었다. 기독교인들에게 그는 당돌하고 어처구니없는 존재가 됐다. 이 논쟁은 2006년, 2009년 <다 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가 각각 영화화될 때까지 이어졌다. 2006년 <다 빈치 코드> 개봉 당시, 박종순 목사를 중심으로 한 한국기독교연맹은 이 영화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법원이 댄 브라운의 손을 들어주면서 오히려 영화는 흥행했다. 2009년 <천사와 악마>의 개봉을 앞두고 윌리엄 도노휴 중심의 가톨릭연맹이 작품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를 표명했다. “픽션을 전제로 한 잘못된 정보”라는 이유였다. 그들은 댄 브라운이 가톨릭을 악의적으로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한편에서는 댄 브라운 소설의 진실과 거짓, 맹점을 지적하는 많은 책들이 출간됐다. 댄 브라운은 굴하지 않고 2009년 <로스트 심벌>을 출간했다. 2013년 <인페르노> 또한 사람들의 대대적인 관심 속에서 탄생했다.

“종교와 과학은 같은 얘기를 다른 언어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 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2001년 <천사와 악마> 출간 당시부터 댄 브라운이 갖고 있던 생각이다. 그는 과학이 지닌 힘을 믿는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를 대립적인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천사와 악마>는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담은 소설이 아니다. <다 빈치 코드>는 다 빈치나 기독교 사상을 트집 잡고자 지어진 것이 아니다. 모두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일 뿐이다.

댄 브라운 효과

2009년, 영화 <천사와 악마>는 로마 교황청의 첫 공식적 입장을 이끌어냈다. 교황청은 “교회의 단순하고 부분적인 초상을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교회 스스로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기도 했다. 2012년, 1612년에 건립된 교황청 비밀서고의 문서 100종이 400년 만에 공개되기도 했다.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의 ‘룩스 인 아르카나(비밀 속의 빛)’였다. 교황청은 이 전시를 통해 “바티칸 비밀서고에 대한, 허구로 가득 찬 음모론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 2억 부 이상의 댄 브라운의 서적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로버트 랭던의 행적에 주목했다. 랭던이 가는 곳은 자연스럽게 관광 수입이 치솟았다. 루브르박물관은 <다 빈치 코드> 발간 이후 2004년 670만 명의 관람객을 기록하고, 2005년은 730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2년 연속 최다 관람객 기록을 경신했다. 몇몇 여행사에서는 다 빈치 코드 투어를 마련하기도 했다. ‘최후의 만찬’의 무료 관람도 가능해졌다. 이탈리아 디지털이미지 전문회사의 사이트(www.haltadefinizione.com)에 16기가화소의 고해상도 사진이 공개됐다. 작품이 있는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성당에서 제기된, 먼지 오염에 의한 손상문제가 원인이었다.

이 모든 것은 ‘댄 브라운 효과’다. 2013년 06월 12일,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댄 브라운의 성공을 총 9가지 항목으로 분석했다. 아홉 가지 요인들은 모두 한 곳으로 수렴한다. 바로 독자를 움직이는 힘이다. 독자를 움직이는 힘이야말로 작가의 진짜 능력이다. 로버트 랭던의 광대한 활동 범위와 대담한 댄 브라운의 소재 선택, 독자들이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많은 ‘비밀스러운’ 사실들이 독자들을 사고하게 만들었다. "The best teachers make you curious." 그가 항상 새기고 다니는 말을 닮았다. 이것이 바로 ‘댄 브라운 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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