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새로운 길을 걷는 새길교회이야기.

 

한국 경제성장만큼 빠르게 성장한 것이 개신교 교회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등록교인 수는 약 80만 명에 달한다. 2000명이상이 출석하는 교회를 일컫는 이른바 ‘메가처치(megachurch)’는 1000개를 넘어섰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수준이다. 논문표절논란과 특혜의혹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오정현 목사의 사랑의 교회는 지난달 서초동에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자본의 논리는 교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믿으면 복 받고 성공한다.’는 기복신앙은 ‘잘 살아보세’와 정확하게 맞물려 교회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아파트에 살고 일요일에 교회를 간다는 것은 한국에서 중산층의 상징으로 부상했고 직제에 불과한 권사, 장로, 집사의 구분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하나의 신분이 되었다.

 

화려한 청담동의 '보잘 것 없는’ 교회

 

그런 의미에서 새 길을 걷겠다는 의지로 26년을 지속해온 새길교회는 ‘보잘 것’이 없지만 특별한 교회다. 교회가 위치하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동네, 청담동이다. 하지만 웅장한 예배당은 물론 수 천 만원을 호가한다는 크리스탈 강대상이나 위압적인 파이프오르간이 없다. 교회 소유의 부동산도 없어 일요일에만 강남청소년수련관을 임차해 예배당으로 이용한다. 일요일 아침, 청소년 수련관 앞에 낡은 고목나무의 현판이 세워지는 것이 이곳이 교회라는 표시의 전부다. 현판이 세워지는 순간부터 이 곳은 교회가 된다. 크고 화려한 예배당이 많아지는 대한민국에서 새길교회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길교회는 흔히 3無교회로 불린다. 교회건물이 없고 목사가 없고 교파가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강력한 영적지도자의 역할을 하는 목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위계구조를 넘어서겠다는 설립취지가 목사를 두지 않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장로, 권사, 안수 집사 등의 직제도 없다. 모든 교인이 형제, 자매의 호칭으로 불린다. ‘만인이 사제’라는 교과서에서 볼법한 종교개혁의 명제를 과감하게 실천에 옮긴 것이다. 김이수 전 예배위원장은 설교는 외부 신학자들을 초빙하거나 내부의 신학자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지만 직책을 전혀 갖지 않는 평신도도 설교단에 오른다.”고 설명한다.

 

목사 한 사람의 리더십에 의해 교회가 운영되지 않으니 세습이나 회계 부정 같은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발생할 리 만무하다. 양혜진(37)씨 는 기존 교회에 실망해 6년 정도 교회를 나가지 않다 새길교회를 찾게 되었다. 그녀는 “기성교회는 목사님이 헌금을 강요하거나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발언들을 하는 점이 불편했지만 새길교회는 그런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일요일 아침에 낡은 현판이 세워지면 강남청소년수련관은 교회로 변신한다.


1987년부터 시작된 대안교회...시행착오를 거쳐 착실한 교회로 자리잡아.

 

새길교회의 탄생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완상 당시 서울대 교수와 김창락 한신대 신학과 교수, 길희성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는 새길 신앙고백문을 작성하고 서울 논현동 YMCA에서 대안교회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한때는 신자들의 혼례, 상례를 돌볼 목회자의 필요성이 대두돼 두 차례 담임목사를 두기도 했다. 현재는 이 같은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150명이 고정적으로 참석하는 착실한 교회로 자리 잡았다.

 

 

간혹 교회를 배척하는 ‘안티교회’운동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교인들은 교회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성교회의 폐단을 극복하려는 대안이라고 설명한다. 대안을 위해 고민하고 여러 시도를 거치다보니 3無교회가 된 것이지 고정된 원칙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인들은 “언제든지 목회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 초빙할 수 있고, 건물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때가 온다면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한 유기체적 공동체인 셈이다.

 

평등한 소통의 새로운 모델...헌금의 60%는 선교와 봉사에.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있는 구조가 아니기에 사안을 놓고 교인들끼리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신학위원을 맡고 있는 차옥숭 이화여대 교수는 “새길교회를 정치적으로 진보적 색이 강한 교회라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보수적인 교인들도 많이 있다. 150여명이 같은 생각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길교회는 다양한 색채의 교인들이 각자의 소리를 내는 ‘와글거림’이 살아있는 교회다. 교인들은 이러한 갈등이야 말로 조직이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언로가 얼마든지 열려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새길교회에는 다른 교회와 달리 ‘운영위원회’라는 조직이 있다. 전체 교인이 참석하는 공동의회에서 30인 이내의 운영위원을 선출하고 운영위원장은 운영위원이 1명씩 돌아가면서 맡는다. 중요한 사안은 신도 전원의 공동회의에서 결정한다. 최종 결정권한은 당회나 목사가 아닌 회중에게 있다. 교회운영에서 민감한 회계 역시 십 원 단위까지 모두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교회내부뿐만이 아니라 외부사람들도 헌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모두 볼 수 있다.

 

전임 목회자가 없고 건축비용이 없으니 헌금의 60%이상을 선교와 봉사에 사용한다. 교회개혁실천연대가 공개한 한국교회 평균지출 중 대부분이 목사사례비와 교회관리비, 건축으로 인한 부채 상환비인데 반해 구제비는 3.11%에 머무르는 것에 비하면 획기적인 수치다. 선교비 역시 포교적 해외선교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독거노인, 외국인 노동자, 장기수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데 쓴다는 점도 돋보인다.

 

설립자인 동시에 여전히 평신도로 참여하고 있는 한완상 박사는 “교회는 모든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며 "몸통은 커졌지만 역사적 예수가 실종된 한국교회에 예수의 따뜻한 삶을 증거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큰 교회를 많이 세우는 것이 기독교의 목표는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맹신’보다는 ‘깨우침’을 강조... 신앙은 깊게, 신학은 넓게

94년부터 임차해 사용하는 구립 강남청소년 수련관 강당에 약 1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오늘 설교는 사회자와 설교자, 대표 기도자가 모두 여성이다. 기존교회에서 여성들은 암묵적으로 교회의 주방 일을 도맡거나 성경구절을 읽는 정도의 역할만 맡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기성교단의 남성중심주의 문화를 탈피하고 여성적 경험과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지다.  

 

역사신학을 전공한 이은선 교수가 이날 설교를 맡았다. 주제는 시천주사상과 예수이해다. “요한복음 14장은 예수의 시천주의 믿음을 매우 뛰어나게 표현해준 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성교회에서 타종교인 동학의 사상을 예배시간에 언급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새길교회에서는 흔히 들을 수 있는 설교중 하나다. 매년 봄과 가을에 열리는 신학강좌는 ‘불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 등 이웃종교와의 공생을 모색한다.

 

이 뿐만 아니라 기존 교회가 논쟁하기 꺼려하고 이단시 해온 주제들도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한국교회에 뿌리박힌 근본주의신앙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해방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생태신학, 종교다원주의 등 자유로운 신학적 분위기에 혼란스러울 법도 하지만 교인들은 오히려 그러한 시도를 새길교회의 매력으로 꼽는다.


교인인 조봉기(65)씨 역시 “다양한 신학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새길교회의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기성교회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믿으면 구원받는다.’나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는 맹신을 요하는 메시지도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쓰신 것이므로 한 치의 오류가 없다는 성서무오설이나 문자주의에 갇힌 성서해석보다 역사적 예수에 대해 고찰하고 성서의 메시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사회안 에서의 종교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실천적인 모색을 추구하는 노력도 빠지지 않는다. 교리를 외우기보다는 실천을 중요시하는 전통이 창립 때부터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새길은 또 다른 새 길을 모색 중

 

새길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교회의 노령화를 극복해야할 과제로 꼽는다. 실력 있는 신학자들의 설교와 강의 등 젊은 세대의 기대에 부응하는 콘텐츠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대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새길'을 운영 중이며 인터넷 블로그인 'i새길'에도 꾸준히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사단법인〈새길기독사회문화원〉과〈도서출판 새길〉또한 내부의 다양한 소리를 세상에 내놓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이 교회에 처음 참석했다는 백인하(24)씨는 "평신도 교회이다 보니 관계에 위계가 없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교회 운동이 외부로 많이 확산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시민단체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한국교회개혁실천연대 김애희 사무총장은 “새길교회는 교회개혁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대안적 교회의 성공모델로 꼽힌다."며 "실제로 새길교회의 영향을 받아 대안적 교회가 많이 생겼다. 교회당을 갖지 않고 학교나 체육관을 이용하는 교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큰 규모의 대형화된 교회로 대표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교회들이 대안적인 흐름을 만들어나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세상이 크고 화려한 것을 좇다보니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예배당은 더욱 웅장해져가고 목회자의 권위는 신의 위치까지 넘보게 된 오늘이다. 교회의 몸집이 커지다 보니 세습과 비리에 대한 뉴스도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가운데 수평적 공동체를 꿈꾸며 '가난한 예수'를 온전히 살아가려 노력하는 ‘자발적 가난’의 운동이 호화로움의 동네 강남 청담동에서 꿋꿋하게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