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가의 새로운 이슈는 기숙형 학교, 즉 RC(Residential College)다. 연세대는 올해 초 송도 국제 캠퍼스에서 RC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화여대도 올해 2학기부터 RC 프로그램 시범운영을 하고 있다. 뒤를 이어 서강대 남양주캠퍼스, 숙명여대, 덕성여대, 동국대 경주캠퍼스, 한동대, 순천향대도 RC 프로그램을 도입할 예정이다. RC가 어떤 프로그램 이길래 여러 학교에서 기숙사를 새로 지으면서까지 실행하는 것일까? 또 학생들에게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한 학기동아 시범 운영을 마친 이화여대 RC 프로그램을 취재했다.

또 하나의 가족, RC

올해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에 입학한 김지현(20)씨는 강원도 춘천에서 자랐다. 2013년 3월, 기쁜 마음으로 상경했지만 타지생활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대학도 낯설었고 서울도 낯설었다. 게다가 기숙사는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 한 명 말고는 얼굴을 익히기도 힘들었다. 각자 듣는 수업도 다르고 생활 패턴도 다르기 때문이다. 지현양이 마음 편한 곳은 다섯 평 정도의 방 한 칸이었다.

2012년 기준으로 서울 시내 대학교 재학생 중 지방 출신인 학생은 14만8000여명이다. 서울 시내 대학 재학생이 49만 명 정도라는 것을 감안할 때 30%정도가 지방 출신인 것이다. 이 학생들 대부분은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를 떠나 서울에서 생활한다. 지현양의 사례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 문제인 이유다.

지현씨 2학기 때 레지덴셜 칼리지(Residential College, 이하 RC)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RC는 2016년 정식 시행을 앞두고 2013년 2학기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한 이화여대의 기숙형 전인교육 프로그램이다. 신입생들은 함께 기숙사에 거주하면서, 학교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하고 주거와 교육을 한 공간에서 실현하게 된다. 현재는 시범 단계로 기존 기숙사인 ‘한우리집’에서 147명의 신입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신입생과 함께 생활하면서 멘토 역할을 해줄 조교(Residential Assistant) 10명도 RC 사범 프로그램을 체험 중이다.

이화 RC 프로그램의 큰 특징은 조별 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RC 프로그램에 지원한 147명의 학생을 대략 15명씩 10개의 조로 나누었다. 각 팀에는 재학생 조교도 배정되었다. 2인 1실인 방도 같은 조 친구와 쓰게 된다. 조별로 적어도 한 달에 한번 모임을 가진다. 같은 조 친구의 생일이 되면 다 같이 모여 생일파티를 연다. 아침운동인 ‘라이트업(Light-Up)’과 같은 RC 비교와 프로그램도 조별로 진행한다. 조별 활동은 이전의 기숙사 생활과 가장 구별되는 점이다. 소속감 없이 룸메이트끼리만 친했던 이전과 달리 RC 프로그램을 통해 10명이 넘는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다.

김지현 양은 이제 기숙사와 친구들이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기숙사 한 층이 다 RC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친구들이다. 앞방, 옆방에도 같은 조 친구들이 살고 있다. 사소한 일이 생겼을 때도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다. 한 방에 모여 밤까지 수다를 떨기도 한다. 지현씨 “집 밖에 나와 산다는 마음 때문에 힘들 때가 종종 있었는데 마음이 든든해지고 정착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RC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제는 학생들끼리 너무 친해서 기숙사가 시끄러워진 것이 단점이 됐다. 조용하지만 적막했던 이전의 기숙사와 완전 달라진 모습이다.

이화 RC는 전인 교육 프로그램

이화 RC는 전인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교육과 생활의 경계를 없애기 위한 밀착형 교육 프로그램이 교과활동과 비교과활동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교과활동에는 올해 신입생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나눔리더십’과 ‘커먼리딩세미나’가 있다. ‘나눔리더십’은 학생들의 문제의식을 팀활동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과목이다. 실제로 이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자취생들이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 활동, 길고양이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밥을 주는 활동, 독립영화 살리기 활동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커먼리딩세미나’는 책 읽기를 통해 읽기, 쓰기 능력을 기르는 토론 수업이다.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합리적 소통 방법과 공동체 의식을 기를 수 있다.

비교과 프로그램은 RC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직접 제안한다. 하고 싶은 활동이 있으면 조별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 의견은 재학생 조교를 통해 학교 측에 전달된다. 운동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에 따라 테니스 강좌가 신설됐고, 아침 운동인 ‘라이트 업(Light-Up)’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라이트 업(Light-Up)은 아침 8시 30분에 기숙사 한우리집 앞에 모여 봉원사 주변 산책로를 함께 걷는 프로그램이다. ‘빅워크(Bigwalk)’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과 연계해 기부도 한다. 빅워크(Bigwalk)는 10m를 걸을 때마다 1원씩 기업의 후원을 받아 다리가 없는 장애인들에게 휠체어와 의족을 기부하는 어플리케이션이다. 이 뿐만 아니라 식물 기르기, 운동회, 방송제, 특강, 연탄 봉사활동, 헌혈 등 많은 비교과활동을 함께 체엄하며 소속감과 연대의식을 기르고 있다.

재학생도 반가운 RC

RC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때문에 재학생들에게는 혜택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재학생들도 RC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화여대 교육공학과 최재민(23) 씨는 재학생이지만 조교인 RA(Residential Assistant)로 RC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친구들에게 다음 학기에 RC 조교로 꼭 지원하라고 권하며 RA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한다. 재민씨는 이미 다음 학기 RA에 지원해 합격한 상태다. RA들은 기숙사비를 전액 지원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고 추진해나갈 수도 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이번학기 10:1이었던 RA 선발 경쟁률은 18:1로 치솟았다. 재민씨는 “RA 활동을 하면서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졌고 아는 사람이 많아져서 좋았다. 1학년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이었지만 나도 많이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다음 학기에도 활동을 이어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RC 프로그램을 통해 여대의 한계도 극복했다. 이화여대는 여대의 특성상 과별 모임 활동이 많지 않다. 그리고 학부제를 시행하는 과가 많기 때문에 신입생과 합께 과별 모임을 진행하기가 어렵다. 동아리, 학회 등의 활동을 하지 않으면 선후배는 물론 동기끼리도 친해지기 힘들다. 그러나 재학생과 신입생이 함께 살면서 끊임없이 소통할 수밖에 없는 RC 프로그램은 선후배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줬다. 재민양은 "RC 프로그램을 통해 평소라면 친해지기 힘들었을 다양한 전공의 후배들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또 꾸준히 지적되었던 기숙사 수용인원 문제도 완화될 예정이다. RC 기숙사 건축과 함께 한우리집 C동이 추가 건축되면서 재학생의 기숙 공간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에 신입생이 살던 기숙사 한우리집 A, B동을 포함해 약 1천 500명의 재학생이 기숙사에서 살 수 있게 된다.

서울 캠퍼스 내에 위치한 RC 기숙사

 


새로 짓는 이화 RC 기숙사는 한우리집 기숙사 인근의 본교 부지에 세워진다. RC 기숙사가 서울 본 캠퍼스에 지어진다는 점이 다른 학교 RC 프로그램과의 차이점이다. 연세대학교의 경우에는 RC 기숙사가 인천 송도에 있다. 그래서 올해 입학한 학생들은 신촌 캠퍼스에서 진행되는 중앙 동아리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화여대 김선욱 총장은 지난 4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대학들은 서울이 아닌 지역에 레지덴셜 칼리지(Residential college)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화여대는 서울에 최초로 도입하는 레지덴셜 칼리지”라고 강조했다.

새로 신축될 RC 기숙사는 마치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학교 ‘호그와트’처럼 8개의 다른 성격의 칼리지(가칭)로 구성될 예정이다. 기숙사 이름을 역대 총장이름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은 정해진 바 없다. 해외 대학교의 경우 자신이 속한 칼리지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이 엄청나다. 대학 졸업 후에도 같은 칼리지 출신의 사람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이어간다. 이화여대는 RC를 통해 동문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RC의 원조는 외국 명문 대학들

RC 프로그램은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등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과 영국 케임브리지대, 옥스퍼드대의 오랜 전통이다. 예일대학교의 경우에는 1930년대 RC 프로그램을 도입해 현재는 12개의 기숙형 칼리지를 운영하고 있다. 각 칼리지 당 450명의 학부생들과 교직원 및 교수가 함께 생활한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학술 행사, 문화 행사와 레크레이션까지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도 전교생 6700명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학교별, 나라별로 제도가 조금씩 다르지만 가족적인 분위기로 소속감을 다진다는 것은 모두 같았다.

이화여대는 RC 프로그램의 모범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올해 초 RC 기획단을 선발했다. RC 기획단은 모두 50명으로 25명씩 미국과 영국으로 열흘간 파견됐다. 파견 뒤 학교 관계자들과 학생들이 RC 탐방 발표회를 통해 이화 RC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내년 RC 프로그램의 재학생 조교 18명이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로 떠난다. 미국 RC 프로그램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이화여대만의 프로그램으로 더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심에서다.

고쳐야 할 문제점들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RC는 외국 대학교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환경이 다른 국내 대학에는 그대로 적용시키기 힘들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국내 상황에 맞게 변형시키다보니 애초에 목표였던 외국 레지덴셜 칼리지(Residential College)와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국내 대학과 외국 대학의 가장 대표적인 차이점은 학생 수다. 외국 대학은 전교생이 학부 생활을 하는 내내 같은 칼리지에서 생활한다. 따라서 칼리지에 대한 자긍심과 인적 네트워크가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전체 학부생 수가 작기 때문이다. 외국 대학의 경우 전교생이 많아야 1만 명 정도이다. 국내 대학 학생 수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화여대의 경우 2014년 입학 예정자의 인원만 2,989명이다. 현재 재학 중인 학생 수는 14,964명이다.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RC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는 힘든 구조다. 때문에 이화여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대학들이 신입생들만을 대상으로 RC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화여대의 경우에는 신입생도 반으로 나누어 학기별로 따로 진행한다. 학생 당 1학기씩만 RC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다.

RC의 정식 운영을 앞두고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은 강제성이다. 신입생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게 되는데 단체생활을 원하지 않거나 집이 가까운 학생들은 추가로 기숙사비를 내면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현재 시범 운영 중인 RC는 기존에 기숙사에 입사할 수 있는 요건에 맞는 지방 출신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받아 운영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식 운영이 시작되고 서울에 거주하는 학생들까지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항이다.

취재과정에서 드러난 이화여대의 소통 방식도 문제였다. RC 관련 의문사항 때문에 RC 담당부처인 교양교육원에 찾아갔다. 그러나 교양교육원 담당자는 RC 관련 질문사항은 교양교육원 담당이 아니며, 기숙사인 한우리집에 방문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간 기숙사 한우리집에서는 RC 담당이 아니기 때문에 아는 것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우리집에 RC 사무실이 있으나 RC 사무실은 현재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는 기숙사 사생만 방문할 수 있다. RC 사무실 전화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RC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홍보는 많이 하지만 RC에 대한 정보를 더 얻거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소통 창구는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화여대는 12월을 끝으로 한 한기동안의 RC 시범운영을 마쳤다. 내년 1학기에 시행될 RC 2기는 1기를 운영하면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인원을 300명으로 확대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RC의 일원으로 한 학기동안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김지현씨는 12월 20일을 마지막으로 기숙사에서 퇴사한다. 하지만 RC 생활을 마치더라도 한 학기동안 친해진 친구들, 조교들과 인연은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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