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허삼관매혈기>

세상에는 어머니의 사랑, 연인의 사랑 등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있다. 수많은 사랑 중 가장 헌신적이지만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 사랑이 있다.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전형적인 아버지들은 가족을 대할 때 무뚝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그 누구보다 무한한 애정을 갖고 가족을 위해 정신적, 육체적인 힘을 쏟아 붓는다. 책<허삼관매혈기>는 아내와 아들을 위해 피를 팔아가면서 살아가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허삼관은 실을 뽑는 공장에서 누에고치를 대주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노동자이다. 허삼관은 ‘피를 팔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라는 마을의 풍습에 따라 처음 피를 뽑게 됐다. 처음 피를 팔아 번 돈으로 허삼관은 사랑하는 사람인 허옥란과 결혼을 한다. 허삼관은 결혼 후에도 세 아들인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와 자신의 아내를 위해 계속해서 피를 팔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그는 일락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허삼관은 일락이를 겉으로는 계속해서 밀쳐내지만 마음속으로는 일락이를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아버지로서 일락이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삼관의 사랑은 일락이의 치료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피를 파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그는 더 이상 피를 팔면 안 되는 상태가 될 때까지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한다. 세월이 흘러 세 아들이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아 허삼관은 더 이상 피를 팔지 않아도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된 허삼관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피를 팔러 병원에 간다. 그러나 늙은 피는 필요 없다고 거절당하자 눈물을 흘린다. 이제 가족에게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자신의 피를 팔아 돈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걱정되고 한탄스럽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피를 팔러 갔으나 결국에는 가족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그러나 세 아들은 아버지가 눈물짓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며 아버지를 창피하게 여긴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서 살아왔던 허삼관이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피를 팔아보려 하지만 거절당하는 모습은 아버지들의 삶의 쓸쓸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아버지들의 사랑은 자기희생적이지만 가족들은 그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아버지의 사랑은 어쩌면 가장 쓸쓸하고 고독한 사랑이다.

지난 20일 방영된 KBS2의 프로그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서 음식 찌꺼기만 먹는 아버지가 걱정인 아들이 출연해 고민을 토로했다. 아들은 "엄마와 제가 밥을 먹고 난 후에만 밥을 드신다”며 아버지를 소개했다. 아버지는 대학 교수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가족들이 남긴 음식으로 배를 채우던 시절의 어머니를 보며 나도 내 아내와 아이가 생긴다면 모든 것을 해주겠다고 생각했었다”며 음식 찌꺼기를 먹는 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책 속의 허삼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가족들을 위해 묵묵히 스스로를 희생하는 사랑을 하고 있다.

겉으로 화려한 사랑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잔잔한 사랑을 주기에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사랑은 더욱더 아름답다.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이라고 여겨지며 그 가치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은 그 가치에 비해 덜 인정받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책<허삼관매혈기>는 아버지 사랑은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다는 생각을 일깨워준다. 가까이에 있기에 당연히 여기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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