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당위성의 기한은 앞으로 10년 입니다.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 희귀해질 때는, 그 이후의 통일은 선택사항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은 10년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도 통일. 지금은 부르지 않는 이 노래를 열심히 부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부르지 않는 이 노래를 부르는 이방인이 있다. 서글서글 한 눈매에 커다란 안경을 쓴, 검은 머리 우리와 같은 외모의 이방인 아즈마 기요히꼬가 바로 그다. 

"처음에는 다들 놀랐어요. 그것도 일본인이 한국의 통일에 대해 연구한다고 하니깐 무척 의아해하는 눈치였어요."
아즈마 기요히꼬(33). 현재 경기대 통일안보대학원에서 통일에 대해 공부하며 PC통신 천리안의 국제문제연구동호회(GIF)에서 활약하는 한국통으로 통한다. 아즈마의 통일에 대해 관심은 95년 korea news 주제원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시작된다.
"그 때는 경제에 관련된 기사를 쓰면서 있었는데 한국에 있자니 남북한의 문제가 이제 전과는 많이 바뀌었음을 느꼈어요. 그리고 우리 일본이 바로 이웃에 있으면서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인이 그가 한국의 민감한 문제인 통일에 대해 공부를 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분단이 100% 강대국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사람들의 생각과 일본인이 한국의 현실을 논하게 되면 갖게 되는 피해 의식에 의한 반문들이 그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대개 통일에 대해 연구한다고 하면 한국사람들은 이런 말을 해요. '일본은 우리가 통일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아는데 당신은 왜 통일에 대해 공부를 합니까.' 사실 일본 국민 대다수는 한국의 통일문제에 별 관심이 없어요. 도리어 북한의 존재에 대해 위협을 느끼고 있죠. 하지만 만약 남한의 주도하에서 통일이 된다면 저희 입장에서는 위협요소를 자연스럽게 제거되고 또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게 되는 건데 왜 굳이 반대를 하겠습니까"

다른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분단,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50년이 지난 그 분담의 벽을 메우기 위해서 한일은 무엇이 있을까? 아즈마는 통일에 대해 공부하면서 한국은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미비한 통일 연구와 무관심한 한국사람들의 자세에 대해 놀랐다. 
"일단 한국에는 통일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그 동안 한국에서는 통일 자체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했어요. 실제 통일을 하려는 마음이 없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아직 논의가 많이 되어 있지도 않고 그 개념에 있어서도 정의되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천리안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사람들을 보면 통일에 대해 전혀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아즈마는 이런 한국인들이 늘고 있음을 걱정한다. 이미 통일을 선택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젊은층으로 갈 수록 확산되고 있다.  5명 중 1명은 분단의 상태가 좋다는 20대, 통일은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하면 좋고 현재의 상태도 괜찮다고 보는 사람들이 열의 여섯이 현실. 조선일보와 소프레스글로벌서치가 6·25 49주년을 맞아 20세 이상의 2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인의 통일의식 조사에서 이와 같이 나타났다. 

민족적 과제보다는 통일 후 내야 할 세금을 걱정하는 세대. 그런 생각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요즘,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햇볕정책에 대해 아즈마는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서해교전과 같은 일련의 사태가 반복되면서 국내적으로 햇볕정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한국에는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햇볕정책에 대한 한국인들의 비난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물론 지금 남북한이 적과 동반자라는 이중적인 미묘한 관계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계속 이 상태로 있을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아즈마의 한국나기

아직은 한국을 다 이해하지도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다 받아들일 수도 없지만 나름대로 익숙해져 가는 5년의 한국생활. 하지만 지금 그의 한국생활은 단순한 5년간의 기억이 아니다.  11년전, 88년 한국이 좋아 공부하러 온 21살의 연세어학당 학생에서부터 이는 시작된다. 그래서 지금 그의 눈을 보면 지난날의 신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가 하숙한 곳이 지금은 일식집으로 변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한옥들이 정말 많았었는데…. 제가 살던 집도 한옥이었어요. 그 주변에는 신촌시장도 있던 서민들의 생활터였는데 지금은 소주방 등 유흥가 분위기로 바뀌었어요."

능숙해진 어학실력만큼 한국의 생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학당에 다니며 공부하던 시절에는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안 좋은 경험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에 사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인식들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80년대만 해도 버스 안이나, 지하철에서 일본말을 못했어요. 특히 포장마차에서 일본말을 하면 꼭 누군가 시비를 걸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어요. 예전의 쪽바리란 반응에서 이제는 일본사람  이라는 것으로 바뀌었죠."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에 도착하고 보니 당황스러웠어요. 학생운동이 많았을 때라 학생들은 계속 데모를 하고 거리에는 최류탄 냄새가 끊이질 않았죠. 하지만 그 때 만난 사람들을 통해 애국심이 뭔지,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지금 제가 한국을 보는 시각, 사고들도 그 때 만난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들이지요."

이렇게 아즈마는 한국의 사람들과 직접 어울리며 한국을 배웠다. 지금도 아즈마는 단순한 책상 앞 학자가 아닌 PC통신 소모임을 통해 한국의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의견과 생각을 공유해 나가고 있다. 천리안의 국제문제연구회에서 외교소모임이 생긴 것도 그가 한 일이다. 
"열심히 사시는 분이에요. 매주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것도 아즈마씨 덕분이구요. 여름에는 저 밖에 안 와서 단 2명서 회의를 진행한 적도 있어요."
외교소모임의 일원인 공보경씨(23)의 말처럼 아즈마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한국나기를 하고 있다.

오늘은 외교소모임이 있는 금요일. 아즈마의 핸드폰이 10분 간격으로 울리고 있다. 다른 회원들보다 먼저 가서 준비하는 그의 손이 분주해진다. 그런 그의 모습을 편치 않은 마음으로 보게 된다.

김은지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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