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편지>

이 책의 주인공인 나오키의 형은 살인범이다. 두 형제는 부모 없이 가난한 집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형인 츠요시가 대부분의 경제적 부담을 짊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형은 나오키를 대학에 입학시킬 돈을 모으기 위해 절도행각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노인을 살해하고 만다. 형은 징역 20년 형을 선고 받았고 그 당시 나오키는 만 17세의 고등학생이었다. 나오키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가정을 꾸리게 될 30대 후반까지 살인범의 가족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형과의 인연을 끊지 않으려고 매달 면회에 나갔다. 츠요시도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뉘우치는 내용의 편지를 매달 동생에게 보냈고 동생은 거기에 꼬박꼬박 답장을 써주었다. 하지만 형으로부터 오는 편지는 주인공이 살인범의 동생이라는 증거가 되어 그의 앞길을 막기 시작했다. 대학입학 면접을 볼 때도, 회사에 취직할 때도, 애인을 사귈 때도 형의 존재는 항상 방해물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형에 대한 나오키의 증오심은 커져만 갔다. 형은 살인죄라는 명백한 죄목으로 사회에서 격리 됐지만 동생은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살인범의 동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회에서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편지’는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다. 츠요시에게는 하나뿐인 가족과의 끈을 이어주는 마지막 소통수단으로, 나오키에게는 자신이 살인범의 가족임을 암시하는 방해물로.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제3자에게는 가해자의 가족에 대한 편견과 불신과 그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으로 나타났다. 나오키는 항상 망설였다. 형의 편지를 계속 받을 것인지 혹은 버릴 것인지를. 편지를 계속 받는 것은 형과의 인연을 놓지 않고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것을 의미하지만, 형의 편지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형이라는 존재를 사회로부터 격리 시켜 홀로 당당하게 사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결국 동생이 형의 편지를 거부하는 것으로 이 책은 결말을 맺는다. 다시는 편지를 보내지 말아달라는 통보를 보내어, 형과의 인연을 끊고 사회와 타협한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는지, 가해자는 얼마나 큰 형벌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가해자의 가족이 어떠한 피해를 받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가해자의 가족은 피해자만큼의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것을 넘어 가해자의 가족이 어떠한 피해를 받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성조차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사회는 가해자의 가족을 필요이상으로 사회변두리에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도 가해자의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가해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당당히 살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가해자의 가족은 가해자가 아니다. 이렇게 명백하고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서로 너무나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부조리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가해자의 가족을 편협한 시각의 감옥에 가둬놓는 일이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드는 것인지를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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