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텔레비전 예능, 입시 프로그램, 자기계발서 등 ‘멘토-멘티(mentor-mentee)’는 우리 사회의 키워드로 부상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스승’을 뜻하는 영어 ‘멘토’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토르(Mentor)에서 유래했다. 멘토르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여 20년 가까이 귀향하지 않는 동안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돌보며 가르쳤고, 이로 인해 그의 이름은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 또는 ‘스승’의 뜻을 지니게 됐다. 현명한 조언자, 스승이라는 어원처럼 과연 오늘날 우리가 쓰는 ‘멘토-멘티’라는 말이 진정한 스승과 제자를 의미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위대한 탄생>에서는 가수와 가수 지망생을 멘토-멘티의 관계로 설정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 다양한 입시 프로그램에서 명문대에 진학한 사람과 고등학생을 연결하는 멘토-멘티 관계를 만들어낸다. 과연 멘토-멘티의 관계가 이처럼 한 분야에서 일시적으로 정보나 기술을 전달해주는 관계일까? 인위적으로 성립된 관계 속에서 멘티들은 멘토를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 또는 ‘스승’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멘토는 단기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멘티의 인생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보다 객관적이고 현명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날 언론이나 실생활에서 자주 언급되는 멘토는 그저 단편적인 기술과 정보를 전달하는 ‘지식 전달자’에 그친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정의의 멘토에 부합하는 사람이 우리 인생에 몇 명이나 있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다들 쉽게 생각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진정한 멘토를 찾지 못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멘토링 프로그램을 그 대안으로 삼는 것일 수도 있다. 멘토-멘티의 대중화는  삶의 가치의 다양성, 행복의 기준을 획일화한다. 유명인사의 강연을 듣고, 자기계발서를 읽고 난 후에 진정한 멘토를 찾았다고 착각하지만, 누군가의 성공 신화와 가치관은 치유와 성장의 방법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지나친 개인화와 이기주의적 특성상, 내면적인 상처를 받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내면적 아픔이 힐링과 멘토의 수요로 이어진다. 하지만 순간적이고 효과적인 치유는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미디어와 인터넷 상에서 강연, 인터뷰의 형태로 나온 몇 분짜리 이야기가 내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그러한 기회를 기다린다면 우리는 멘토 산업의 또 한 명의 소비자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평소 자신이 단편적, 일시적 관계라고 생각해 소홀히 다루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다 진지하게 여기고, 상대방에 대해 깊게 알아가는 것이 멘토-멘티 관계의 시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주변의 교수님, 선후배, 동기들은 우리가 그들을 지식을 전달해주는 사람 또는 그저 친한 사람으로 정의하였기 때문에 멘토로 다가오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나보다 다양한 경험과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멘토 산업의 소비자로서의 간접 경험이 아닌, 나의 실생활 속에서 직접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경험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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