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클래식 FM 안종호 PD

     

세상이 노을로 물들 때 쯤, 라디오에서 Mike Batt의 ‘Tiger in the night’이 흘러나온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청취자들은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한다. 긴장할 필요도, 애써 다가갈 필요도 없다. <세상의 모든 음악>(93.1MHz, 진행: 카이)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매일 저녁 6시,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려주는 KBS 클래식 FM 안종호 PD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클래식 FM 프로듀서

안종호 PD는 처음부터 클래식 FM에서 음악을 전하진 않았다. 그동안 KBS 1라디오의 <안녕하세요 강지원입니다>, 2라디오의 <안문숙의 네 시엔> 등 시사 및 오락,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한 그는 어느덧 KBS 라디오의 17년차 프로듀서가 됐다. 다른 라디오 채널과 지금 그가 일하고 있는 클래식 FM의 차이점이 궁금했다. “클래식 FM은 멘트보다는 음악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프로듀서의 선곡 능력이 가장 큰 경쟁력으로 작용하죠.” 그는 다른 라디오 채널에서 프로듀서와 작가의 업무 분담이 반씩 나뉜 것과 달리 프로듀서가 90% 이상의 업무를 담당하는 점을 클래식 FM 프로그램의 특징으로 꼽았다. “작가 역시 구성 작가의 기능보다는 전문 작가로서의 필력이 중요해요. 원고의 대부분은 순수 창작에 기반을 둔 수필이나 에세이죠.”

사실 안종호 PD는 전문 음악 프로그램의 프로듀서를 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클래식 FM에서 근무하지 못했다. 그는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KBS 라디오 채널이 많아서”라고 답했다. “다른 지상파 방송국들은 표준FM과 음악FM만을 운영하는데 공영방송인 KBS는 라디오 채널이 많거든요. 그래서 개편이나 기타 인사 이동시에 여러 채널을 돌아가며 제작하고 있어요. KBS 라디오의 맹점이기도 하죠.” 그렇게 해서 가게 된 클래식 FM에서 일한지 만 2년이 넘었다.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하면 음악에 관하여 준전문가가 될 것 같은 생각에 “해가 지날수록 선곡도 쉽지 않느냐”고 건넨 질문에 그는 ‘상당한 노동’이라는 답을 주었다. “음악에 대해 나름 상당한 지식이 있다고 자부해도 많은 양의 선곡을 매일 하는 것은 힘들죠.” 그의 대답에서 한 번 선곡한 음악을 다시 고르는 회전율도 다른 채널에 비해 기간이 길고, 같은 곡이라도 다른 버전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을 알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안종호 PD의 취미는 음악과 영화 감상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라디오 PD를 장래 직업으로 꼽은 적은 없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집에 불러 음악을 들려주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했던 기억은 있다. 본격적으로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면서부터다. “제 3세계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음반을 사 모으기도 했고요.” 라디오의 음악이 청취자의 귀에 자연스레 스며들 듯 그 역시 자연스레 음악과 가까워졌다. 특별히 연출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영화 음악 전문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자정 쯤, 영화 장면의 오디오도 삽입하고 음악도 소개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세상의 모든 음악

<세상의 모든 음악>은 10년을 넘긴 KBS 클래식 FM의 전문 음악 프로그램이다. 클래식은 물론, 다양한 장르의 월드 뮤직, 크로스오버, 뉴에이지, 영화 음악, 뮤지컬 음악 등 전문성과 대중성을 지닌 음악을 주소재로 한다. “곡의 대부분이 클래식과 비교해 길이가 짧아 선곡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는 그는 하루 평균 25곡을 선곡하기 위해 약 100곡 이상의 음악을 듣는다. “청취자들이 선곡은 PD의 업무임을 알더라도 DJ가 선곡한 것 같은 느낌을 살려줘야 전문 음악 DJ로 인정을 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 곡이 연달아 나갈 경우, 곡의 흐름과 오버랩 등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고, 음악 장르가 바뀔 때 각각의 음악들에 대한 사전 정보와 느낌 등을 DJ에게 꼼꼼히 전달하는 것 역시 그의 일이다. 음악 장르가 다양한 만큼 챙겨야 할 것도 많다. “발음이나 읽는 법은 음악을 직접 들어서 터득하기도 하고, 해당 음악의 국가 대사관에 자문을 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 <세상의 모든 음악>의 진행자는 팝페라 가수 카이다. 지금까지 뮤지컬 배우 임태경과 피아니스트 이루마 등이 거친 자리다. DJ 교체가 필요한 프로그램의 경우 새 DJ 후보 선정 및  오디션, 최종 기용 등도 역시 담당 PD가 부서장과의 논의 후에 결정한다. “카이씨도 동일한 조건에서 오디션을 통해 발탁한 케이스에요. DJ를 정하면 작가와 구성을 논의해서 하나의 프로그램이 탄생하는 것이죠.” 그는 DJ 결정 뿐 아니라 개편 간담회나 언론 홍보 등 프로그램 홍보 역시 담당 PD의 역할이라고 답했다.

청취자들이 클래식 FM을 듣는 가장 큰 이유는 “듣기 편한 선곡”과 “DJ의 편안하고 전문적인 진행 능력”이라고 한다. 그래서 안PD는 “처음에는 다양한 나라의 음악을 열심히 수집해 선곡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청취자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들을 선곡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곡들을 발굴해서 들려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음악을 아무리 좋아해도 24시간 음악 생각만 하면 지치기도 하죠. 그래도 음악 전문 프로듀서는 행복한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는 “청취자들이 음악으로 하루의 위안을 삼는다는 문자나 사연이 들어올 때”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사람들 삶의 배경음악처럼”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라디오의 영역이 예전에 비해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안종호PD의 말처럼 ‘나에게만 소곤거리는 것 같은 친밀감’은 라디오만이 가진 매력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라디오는 다양한 기술을 접목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라디오가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어떤 양질의 콘텐츠로 다가갈 것인가는 프로듀서의 몫”이라고 말하는 안PD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좋은 음악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라디오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클래식 FM을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라디오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안PD는 사람들이 “클래식 FM 음악을 굳이 집중해서 듣지 않더라도 삶의 배경음악처럼 들어줬으면” 한다. “제목도, 연주자도, 작곡가도 모르고 어렵게 느껴져도 그냥 음악이 스며들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마음을 툭 건드리는 음악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안PD는 청취자들의 하루가 음악으로 위로받고 즐거워지는 데서 보람을 얻는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안종호 PD는 저녁 6시마다 카이와 함께 ‘세상의 모든 음악’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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