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최선열

요즘 우리들은 미스터리 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다. 괴문서, 공작, 음모, 추적, 폭로, 돈….  아직 여자만 안보일 뿐 극적요소와 반전이 웬만한 첩보영화 수준이다. 자고 일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져 있고 게다가 신문마다 제각기 다른 시나리오를 구성해내니 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말인지, 내일은 또 어떤 극적 반전이 일어날지 우리는 또다시 정치판의 거짓말 게임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들이  직업정신의 최고 수준에 다다랐을 듯한 나이의 중견 기자들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기자의 신분으로 권력의 핵심부에게 정권의 언론장악 방법을 제안하는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서도 별것 아니라고 우기며 태연하게 자기방어에 급급한 비열한 언론인. 그 비법을 훔쳐보고 특종보다는 정치권과의 거래를 선택하고서는 탄로난 것만을 곤혹스러워하는 치사한 언론인. 이들은 모두 자신의 기자정신을 팔아버리고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실패한 언론인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누구인가.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 젊은이들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야만 얻게 되는 선망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오죽하면 "언론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승자가 된 사람들인 것이다.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감시하라는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들의 윤리불감증에 우리는 더욱 분노를 느끼게 된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직업의식과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 사건은 결코 이 두 기자의 단순한 개인적 비리라고 볼 수 없다. 수십 년 간 계속되어온 권언유착의 풍토에서 우리나라 기자들은 권력의 유혹에 취약했다. 사실 우리나라 기자들은 다른 나라의 기자들보다 더 많은 특권과 특혜를 받으면서 권력에 의해 길들여져 왔다. 뉴스의 생산자와 정보원으로서의 직업적 이익 때문에 언론과 정치권은 적대적, 갈등적 관계보다는 미묘한 공생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언론직의 특성상 투철한 직업적 윤리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언론인은 권력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90년대 들어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자사의 윤리강령을 제정하는 등 언론의 책임과 윤리를 강조하였으나 실천적 의지가 약했기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는 못한 것 같다. 그동안 언론인의 이권개입, 촌지수수, 사전 정보를 이용한 주식투자 등과 함께 언론의 정치권과 대기업과의 구조적인 유착관계는  한국형 비리로 비판을 받아 왔다.  언론을  사회적 공기가 아닌 사회적 흉기라고 부를 정도로 언론에 대한 신뢰는 크게 실추되었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올 것이 온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구조적 비리가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야가 이번 사건에 대해 국정감사를 실시하기로 합의를 하였다지만 국정감사가  거짓말 게임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옷로비 의혹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의 주인공들 역시 각기 다른 시나리오를 들고 나와  서로 상반된 주장들만 펼칠 테니까 말이다.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한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지금이라도 철저한 탐사보도를 통해 자칫 정치논리에 의해  묻혀버릴 수 있는 사건의 진실을 언론이 밝혀내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번 사건은 곪은 것이 드디어 터진 듯한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철저하게 진실이 규명만 된다면 언론의 발전을 위해 이렇게 심하게 터지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이제 이 상처의 곪은 뿌리를 짜내는 것은 바로 언론인 스스로의 책임이다.  이번에 기자협회가 "기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권력과 정치인들만 탓할 게 아니라 기자들 스스로가 무너진 언론윤리를 바로 세우고 언론 개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수없이 많이 들어온 구호에 그치지 말고 언론인들은 이번 사건을 스스로가 개혁을 실천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평소 "고시"같은 언론사 입사시험 제도가  언론 개혁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해왔다. 명예와 권력에 대한 허황된 꿈을 갖고 악착같이 언론고시를 통과한 뒤, 그 허황된 꿈을 쫒다보면 권력형 기자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언론을 입법, 사법, 행정의 3권 이외 제4권으로 부르는 미국에서 언론직은 박봉에, 위험부담이 크고, 개인생활이 희생되는, 바람직하지 않는 직업으로 인식된다. 그러므로  풍요와 여유있는 삶의 질을 원하는 사람들은 언론계에 절대로 가지 않는다.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정말 끼가 있고 똑똑한 젊은이들은 언론의 책임과 사회적 영향력에 매료되어 언론직을 택한다. 그들은 우리처럼 "고시"로 기자를 뽑지 않는다. 기사 포트폴리오, 추천서, 직업의식과 끼를 탐색하는 면접을 통해 대학시절 아마추어 기자생활을 통해 직업의식을 키운 사람들, 기자의 일 그 자체가  정말 좋아서 택한 사람들을  뽑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미국과는 너무나 다르다. 신문방송 전공생들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생들이 study group을 만들어 사법, 행정고시 공부에 버금 가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공부를 한다. 상식 아닌 상식을 집중적으로 주입시키고 글짓기와 토론을 연마한다. 그리고  재수, 삼수, 십수도 불사하고 시험공부에 매달린다. 이런 식의 공부가 입사 후의 언론활동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고시"파들은 시험준비에 매몰되어  언론직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할 여유가 없다. 대다수의 "고시"파들은 시험을 통해 그저 괜찮은 직업을 쟁취하고자 할 뿐이다. 언론사들이 구태의연한 "고시"를 통해 그런 인재를 충원하는 한 우리나라 언론인의 직업의식은  보통 샐러리맨의 그것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며 권력형 언론인도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개혁은 언론직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올바른 직업관과 윤리의식의 기본이 갖추어진 인재를 찾아낼 수 있는 새로운 기자채용 방법을 시도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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