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부터 25일까지 일간신문 10개(경향신문, 국민일보, 대한매일, 동아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시사 주간지 10개(주간조선, 주간한국, 주간동아, 뉴스메이커, 뉴스플러스, 뉴스피플, 시사저널, 한겨레21, TIME, NEWSWEEK), 시사 월간지 3개(월간조선, 월간중앙, 신동아)를 대상으로 최고의 기사와 최저의 기사를 각 9편씩 선정하고, 신문사마다 경쟁적으로 연재하고 있는 '밀레니엄 기획 특집' 중 최고와 최저를 1편씩 선정하여 싣습니다.

Best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발굴!
 (시사저널/ 문경 양민 학살 전모 밝혀졌다/ 10월 14일자/ 정희상 기자)
AP 통신이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밝혀냈다면 한국의 시사저널은 '문경 양민 학살 사건'을 밝혀냈다. 시사저널은 지난 10년간, 한국 전쟁 직전인 49년 12월 24일 경북 문경군 신북면 석봉리에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양민 학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해 11월에는 미국의 기밀 문서를 입수하여 정부측에서 부인해 오던 문경 양민 학살 사건이 사실임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또다시 최근 미국 국립문서 보관소에 있는 사건 당시 한국 경찰의 조사 보고서와 주한미군 임시 군사 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의 사건 관련 비망록을 입수하여 보도하는 등 진상 규명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책임 있는 언론의 자세와 역할이 무엇인지 느끼게 한다.

  "득어망전(得魚忘筌)"하지 않는 자세로…
 (한겨레21/ 보도 그 뒤/ 10월 14일자 & 28일자/ 구수정 통신원, 고경태 기자)
언론사의 속성상 보도가 나간 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경우 후속보도를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사 내용의 시의성은 약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신설된 한겨레21의 [보도 그뒤] 코너는 이러한 통념을 깬다. 273호 '베트남의 원혼을 기억하라'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인들에 의해 자행된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후속 보도는 베트남의 유력 시사주간지 [일요 투오이째]에 같은 내용이 보도됐으며, [일요 투오이째]가 한겨레21에 양민 학살 지역을 동행 취재하고 모금 운동을 전재하자는 제의를 받았다가 베트남 정부의 정책 방향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는 내용이다.


28일자 '방울이 한국에 오다' 는 258호 '신라이따이한 방울이의 비극'에 실렸던 뇌성 마비와 간질의 천형을 안고 태어난 방울이가 10월 14일 서울 중앙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다. 입원 첫날 신문과 텔레비전의 취재로 잠도 제대로 못자고 뇌파 검사까지 취소해야만 했던 방울이는 다음날부터는 찾아 오는 사람도 없이 '썰렁하게' 지내고 있다. 방울이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한겨레21의 성의는 칭찬할 만 하다.
( 得魚忘筌: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그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것을 잊어버림)

  작은 기사이지만  "일자천금(一字千金)"의 가치
 (한겨레신문/ 밤에 스러진 코리안드림/ 21일/ 송창석 기자)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이 강제 매춘에 시달리는 등 성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심도 있게 취재하였다. IMF 사태 이후 주춤하던 외국인 여성 취업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을 성적 학대로부터 보호해줄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시점에서 외국인 취업 여성 문제가 사회에 정면으로 대두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는 탁월한 문제제기다.
 (一字千金: 한글자가 천금만큼 귀함)

 "흥미진진(興味津津)"한 정치기사
 (NEWSWEEK/ 군소후보의 목소리 미 정치판에 활력/ 10월 20일자/ Howard Fineman 기자)
정치는 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프 오페라라는 말이 있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전 출마 의사를 내비치는 군소 후보들의 행보는 슬랩스틱 코메디보다 재미있다. 이 기사는 정치라는 세계를 조금은 방관자적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대통령 선거전을 앞둔 정치 기사들은 지나치게 예의바르고 무거운 문체로, 각 후보들이 펼치는 정치 공세나 국민의 지지율을 분석해 당선자가 누구일지 조심스레 점쳐보는 것 일색이여서 다소 지리멸렬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후보들의 개성과 선거전 공략법을 사실에 근거하여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쓸 수도 있다는 것이 놀랍다.
 

 독자와 기자 모두에게 "파사현정(破邪顯正)"
 (신동아/ 공익위한 '신사협정'인가, 교묘한 '정보통제'인가/ 10월호/ 신석호 기자)
'엠바고', '오프더 레코드' 등은 일반 독자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언론사의 보도 관행과 관련된 말이다. "엠바고란 … 정보 제공자와 기자 혹은 기자단이 특정한 뉴스의 보도를 일정 시간까지 유보하는 약속(224쪽) … 엠바고는 통상적으로 출입처가 기자단에 요구하는데, 기자단 회의에서 한 회사라도 거부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모든 언론사가 동의하여 일단 약속이 이루어지면 '엠바고가 걸렸다'고 한다.(225쪽)" "오프더 레코드는 일정기간 보도를 자제하는 엠바고와는 달리 취재원이 기자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해 주면서 '아예 보도를 하지 않거나 보도하더라도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 것'을 전제하는 경우를 말한다.(229쪽)"  엠바고 오프데레코드 등의 보도 관행은 그 나름대로 장단점을 갖고 있으며, 엠바고가 지켜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고, 역사를 뒤집어 놓기도 한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언론사의 보도 관행 관련 용어의 정의부터 자세히 설명한 이 기사는 언론사의 보도 관행에 대하여 기자 스스로, 그리고 독자가 함께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든다. 
 (破邪顯正:그릇된 견해를 타파하고 정도를 나타냄)

  발로 뛴 "비이장목(飛耳長目)"
 (조선일보/ 몸살 앓는 수도권 위성도시/ 1,2,4일/ 이효재, 최재혁, 박순욱 기자)
서울의 위성 도시가 기생 도시화되어 가는 현실을 3명의 기자가 다각도로 취재하여 3일 동안 연재했다. "거리마다 비틀대는 서울 손님들"에서는 "아는 사람 마주칠 일 없어 속편하게 놀 수 있다는 이유로" 안양 등에 있는 유흥가를 찾아오는 서울 사람들 때문에 멍드는 생활, 교육 환경에 관하여 보도했다. "공장 헐어낸 자리 아파트만 빼곡"은 제조업체 수가 급속도로 줄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생산없는 소비 도시'로 전락하는 위성 도시들의 실태를, "서울은 안돼…"는 서울 시민을 위한 쓰레기 매립지나 쓰레기 소각장이 위성 도시에 세워지고, 서울의 군부대 이전, 공동 묘지나 화장터 건립등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위성 도시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중앙지들은 '거국적인 기사'에 연연한 나머지 작지만 중요한 지역적 고충을 간과하는 오류를 흔히 범한다. 이 기사는 지역 신문이 아닌 중앙 언론이 관심을 가지고 취재, 보도한 데에 그 의의가 있다.
 (飛耳長目: 사물을 관찰함에 예민하여 널리 정보를 수집함)

  빈자일등(貧者一燈)이 아니라 "국민일등(國民一燈)"
 (국민일보/ '빛'을 주고 가련다/ 25일/ 손병호 기자)
이러한 이야기가 그리워 우리는 신문을 1면부터 읽지 않고 맨 뒷장부터 읽는다. 근이영양증이라는 몸이 줄어드는 병에 걸린 박종훈(23)씨가 자신이 죽은 후에 안구를 기증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이 기사는 조작되지도 강요되지도 않은 '휴먼스토리'다. "신체 어떤 부분도 성하지 않지만 눈은 아주 잘 보여서 기증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투병 생활을 녹음으로 남기는 것은 이 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부모들과 의사들에게 유익한 자료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라는 박씨의 말에서 우리는 진정한 페이소스를 경험할 수 있다.
 (貧者一燈: 가난한 사람이 부처님께 바치는 한 개의 등이 부자가 바치는 만개보다 귀함)

 "성인지미(成人之美)"로 만들어준 편집
 (경향신문/ 탈북자 외면 여전 '머나먼 남녘'/ 25일/ 조호연, 우주승, 우철훈 기자)
탈북 난민이 우리 정부와 중국, 그리고 제3국에서까지 거부당하는 구체적 사례를 취재하여 싣고, 이들의 인권 유린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다. 경향신문은 이 기사를 정치면에 실음으로써, 탈북 난민 문제는  민간 단체의 도움 정도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며, 정부 차원의 정치적 외교적 해결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언론의 역할이 사회적 쟁점을 알리는 것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함을 자각하고 실천한 것이 아닐런지. 
 (成人之美: 남의 아름다운 점을 도와 더욱 빛나게 함)

  자세히 보세요, "무용지용(無用之用)"이랍니다
 (한국일보/ 스트레스, 피로등이 기억력 장애 원인/
                        9일/ 광주 세브란스 정신병원 정신과 교수 오병훈)
전문의가 직접 건망증의 원인과 극복 방법에 대하여 조언하는 형식의 의학관련 기사다. 건망증이 심한 경우 자신이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미국 알츠하이머 협회의 자료를 인용하여 쉽고 재미있는 설명을 덧붙였다. 건망증과 치매의 공통적 증상에 대한 설명은 보통 이런 식이다. "판단력 장애의 경우-건망증: 빨래를 하면서 주전자 끓는 것을 잊는 등 어떤 일에 몰두하면 일시적으로 다른 일을 잊어버린다/ 치매: 아이를 업은 채로 셔츠를 몇 벌 겹쳐 입는다", "언어 장애의 경우- 건망증: 평소 하던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치매: 전혀 엉뚱한 단어를 사용해 문장 전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독자는 전문적이지만 어렵지 않고 흥미를 끄는 바로 이런 의학 정보를 원한다.
 (無用之用: 언뜻 보아 쓸모 없이 생각되는 것이 도리어 크게 쓰임)

 #밀레니엄 기획 특집 Best: 중앙일보 [세기를 넘어]
10월 10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세기를 넘어]는 경남대와 중앙일보의 공동 작업으로, 20C를 풍미했던 주요 이념을 되짚어 보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10월 한달 동안 '파시즘', '레닌주의', '제국주의', '실존주의', '프랑스 6.8 학생운동' 등의 소재가 채택되었고, 각 이념의 도래 배경과 관계된 사건을 재조명하고 그것이 일상 생활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4월에 연재를 시작해 좋은 평을 듣고 있는 조선일보의 [20C 사상을 찾아서]의 경우 한스 요나트, 사르트르, 라캉 등의 사상 분석보다는 그들의 생애와 주변 인물들 소개에 치중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세기를 넘어]가 얼마나 탁월한지 알 수 있다.   
 

Worst

 "문과식비(文過飾非)",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정도껏
 (중앙일보/ 국민의 정부 언론 탄압 실상을 밝힌다/ 언론장악분쇄 비상대책 위원회)
9월 말과 10월에 걸쳐, 그리고 [언론 장악 문건]의 출현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일련의 과정에서 중앙일보가 보여준 태도는 신문과 기자가 과연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발행인 겸 사주인 홍석현 사장 구속 사태를 맞아 중앙일보는 3일 사설 [언론 탄압에 분연히 맞선다]를 시발로 하여, 지극히 편파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논리로 진실을 호도했다. 중앙일보가 [국민의 정부 언론탄압 실상을 밝힌다]에서 '폭로'한 대로, 정부가 언론사 운영에 간섭한 것은 국민의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중앙일보가 '양심선언'했듯이 정부의 그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다는 것에 있다. 중앙일보가 진정 국민의 알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신문이라면 처음부터 정부의 요구를 적당히 들어주지 말고, 그것을 밝혀 기사화해야 하지 않았을까?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해왔던 '떳떳한 도둑'의 몽둥이는 '솜방망이'다.
 (文過飾非: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숨길 뿐 아니라 오히려 꾸며대며 전보다 더 잘난체 함)

  TV화면을 그대로 싣는 "포호빙하(咆虎馮河)"
 (한국일보/후반 8분 첫 골을 잡은 이동국/18일)
17일에 열렸던 한국과 바레인의 시드니 올림픽 출전 최종 예선에서 이동국이 1골을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한국일보 1면에 톱으로 올라온 이 사진을 보고 과연 이동국을 알아볼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후반 8분 첫 골을 잡은 이동국(오른쪽)"이라는 사진 설명이 구차해 보이기까지 한다.
 (咆虎馮河: 어리석을 정도로 대담한 행동으로 위태로움)

  "명과기실(名過其實)"
 (월간 중앙/ 옷사건의 진실/ 10월호/ 취재팀)
아무도 풀지 못한 '옷로비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월간 중앙이 분연히 일어섰다. 그러나 결과는 독자를 당혹케 한다. 기사의 앞머리에는 이 기사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월간중앙은… 신동아 그룹 최순영 회장 외화 밀반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 검찰, 청와대 사정 관계자, 옷사건 당사자와 주변 인물들을 접촉, 이 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196쪽)" 그리고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6월 검찰 수사, 8월 국회 청문회가 열렸지만 특검제를 앞둔 지금까지 이 사건의 성격조차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211쪽)" 결국 중앙 일보가 시도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는 옷사건을 복기하면서 진실을 추적하는 일(197쪽)" 중 복기(複記)만 했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옷로비'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정리한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기사다. 이런 것을 흔히 "재탕해 먹는다"라고들 한다.

신동아 외화 밀반출 사건 수사 지연은 '높으신 분' 때문이고, 일이 꼬여 버린 것은 여자들 때문이고, 그녀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종교 때문이라는 색다른 결론을 내려주었으니 "재탕"은 아닐까?
 (名過其實: 헛 이름만 나고 실상인즉 그만하지 못함)

  처음부터 끝까지 "분토지언(糞土之言)"
 (신동아/ 중국의 지하 섹스산업/ 10월호/ 중국 조선족 작가 김정호)
30년만에 등장한 창녀 대륙을 점령하다"라는 도발적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개방되면서 속속 나타나기 시작한 음란물 유통과 매춘을 현지 기자들과 전문가라고 밝힌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엮었다. 기사를 통해 사회적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한 것인지 기사의 탈을 쓴 또 하나의 황색 음란물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선정적 표현을 써가며 중국의 매춘 실태를 자세히 드러냈다. 매춘이 시작된 배경, 성행하는 지역, 유형별 가격대, 방법까지 소개하여 오히려 매춘에 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포쏘기(일회성 섹스)에 적합한 방이 있는가 하면, '죽 끓이기'(비용은 시간에 따라 계산되며 일정한 시간을 갖고 창녀를 천천히 다루는식)에 적합한 방도 있고(545쪽)", "섹스하는 남녀가 방안에서 자물쇠를 걸어 잠그면 밖에서 도저히 열 방법이 없는 '보험거실'이 있고(546쪽)", "그녀는 '내가 예쁘지 않은가, 마음에 들지 않은가'라고 하며 나의 그것을 주물럭거리는 것이었다(553쪽)", "섹스 동작은 주로 해외에서 들어온 섹스 비디오를 보면서 익힌다… 이리하여 오리족(매춘 남성) 후보들은 섹스 전문가로 변신하는 것이다(557쪽)" 등, [선데이 서울]을 경쟁 상대로 지목하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糞土之言: 도리에 어긋나는 천하고 더러운 말)

  이런걸 "단장취의(斷章取義)"라고 하죠
 (대한매일/ 洪씨 구속 "잘했다" 80%/ 12일/ 조현석 기자)
기자협회보와 한길리서치가 전국 기자들에게 여론 조사한 결과를 기사화했다. 제목은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 구속에 대하여 대다수가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는 것으로 잡았다. 제시된 그래프 또한 "홍사장 구속에 대한 평가"와 75%가 사주(社主)라고 답한 "신문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정부와 여당에만 유리한 결과만을 부각시켜 쓴 이 기사는 오보는 아니지만 사안의 본질을 가리기 충분하다. "김대중 정부가 중앙일보나 그 밖의 언론사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62.3%가 "그렇다"고 대답한 것이나, "앞으로도 정부의 간섭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가 59.9%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게 아닐런지.
 (斷章取義: 문장 가운데서 자기 형편에 맞는 부분만 끊어서 제멋대로 해석함)

  "대동소이(大同小異)" … "제동불이(諸同不異)"?
 (조선일보/ 8~14세 "트윈세대" 뜬다/ 11일/ 김홍기 기자)
기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기사를 읽으면 우리는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겠다. '외국 잡지 내용이나 읽고 대충 정리해서 지면이나 메우는 사람'이라고.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신호에서 8~14세 된 트윈스(Tweens)' 세대가 마케팅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로 시작하는 기사는 단 한 문장, 한 단어도 10월 20일자 뉴스위크에서 오지 않은 것이 없다. 기사에 인용되어 있는 텍사스 A&M대학 마케팅 교수 맥닐의 멘트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뉴스위크 한국어판 73쪽에서 74쪽에 나와 있을 정도다.

  결혼과 바둑과의 관계? "견강부회(牽强附會)"
 (주간동아/ 프로기사의 결혼 약인가 독인가/ 10월 21일자/ 월간 '바둑' 편집장 정용진)
이 기사의 주제는 이것이다. "어떤 아내를 맞이하느냐는 프로 바둑 기사들의 결혼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는 바람직한 프로 바둑 기사의 아내는 한마디로 '참한 신데렐라'. 바둑 기사들은 성욕 때문에 바둑에 기복이 생기지 않도록 조혼하는 것이 좋다. 다만, 데릴라에게 꼬임을 당해 머리를 잘려버린 삼손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철저히 남성 입장만을 대변하는 이 글을 보며, 우리 언론의 '남성 위주의, 남성 우위적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양포지구(楊布之狗)"의 "검로지기("黔驢之技)"
 (주간한국/ 다이어트에 왕도는 없다/ 10월 21일자/ 송영웅 기자)
'쌈박'하고 신선한 소재의 글을 읽기 원하는 것은 신세대 뿐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이미 10년 전부터 거론되어왔던 각가지 다이어트 방법과 부작용을 설명하고 있지만, 이전 것과 다를 것도 새로울 것도 전혀 없는 내용 일색이다. 무작정 굶어서 살을 빼긴 했지만 요요 현상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는 김모양의 이야기, 살빼는 약을 먹었다가 건강만 해치게 된 사례, 전통적인 운동 요법, '커피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크림 다이어트', '향기 다이어트' 등이 소개되었지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것들 뿐이다. 이런 소재를 커버 스토리로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판매 부수가 올라가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겠지만, 이렇게 뻔한 정보뿐이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쉽다. 
 (黔驢之技: 졸렬한 솜씨를 보여 망신함을 비유) 

  "요령부득(要領不得)"
 (경향신문/ 인터넷PC가 좋아요/ 25일/ 전성철 기자)
등이 가렵다고 말했는데 머리를 긁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경향신문 25일자에 소개된 값싼 인터넷 PC 소개 기사를 봤을 때와 같은 반응일 것이다. 독자가 원하는 정보는 이미 여러 차례 거론된 인터넷 PC의 가격이나 소프트웨어 이용방법이 아니다. 정부의 대대적인 선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PC가 예상 판매량을 밑돌고 있는 것은 기사에서 밝힌 것처럼 "아직 생소한 탓에 적극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장래의 호환성 문제나, 기술적 하자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알고 싶어하는 정보는 99만원 짜리를 95만원에 사는 것이 아니라, 99만원 짜리를 사도 큰 문제 없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다.

 #밀레니엄 기획 특집 Worst : 한국일보 [굿모닝 뉴 밀레니엄]
새 천년이 열리면 인간의 생활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게 되는지 예상해 보고 그 내용을 기사형식으로 엮고 있다. 성격이 모호하여 일관성 있는 연재물도 아니며, 소재 고갈로 내용이 조악하기 짝이 없다. 기자들이 유명 서적이나 논문을 짜집기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

예를 들어 10월 2일자에 실린 "기름없이 車가 달린다" 같은 경우, 2030년 12월 한 사이버 회사원이 전기 자동차를 살 것인지 바이오 연료 자동차를 살 것인지 고민하다가 가상공간에서 사이버 운전 테스트를 해본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각 자동차 회사나 연구소 등이 발표한 미래 자동차 연료 변화에 대하여 짤막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자원 고갈로 인해 인간의 이동 수단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상식이 아니었던가? '여성 지위 상승', '새로운 보육 시설', '달라지는 노인 문화와 실버산업'등 소재들이 대체로 기획이라고 부르기엔 수준미달이다. 

김상미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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