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박신홍 기자

두 정치인이 나란히 서서 해맑게 웃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다. 책 <안희정과 이광재>(메디치 미디어)가 발간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친노의 PR 서적’ 혹은 ‘흔한 정치인의 자서전’ 정도로 평가했다. 노란 책표지가 인상적인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은 정치 책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긴 시간동안 논란의 중심이었고 존경과 동시에 비난의 대상이기도 했던 두 정치인이 함께 등장한다. 그런데 책을 쓴 사람과 읽은 사람들은 한사코 정치적인 내용이 아니라고 한다.

@메디치 미디어
중앙일보 야당팀 팀장 박신홍 기자는 2012년 대선에 맞춰 책을 쓰고 싶었다. 그동안 해왔던 정치권의 릴레이 인터뷰와 기자의 시각을 모아 ‘대선을 보는 법’에 관련된 글을 쓰고 싶었다. 어느 날, 출판사로부터 정치인 안희정과 이광재의 삶을 하나의 글에 녹여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안희정 지사와 이광재 전 지사는 2012년 대선 주자는 아니기 때문에 원래 박 기자의 계획과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두 인물의 매력에 끌려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인생이 참 매력적이에요. 80년대 독재에 맞선 운동, 국회, 노무현, 감옥을 거친 정치인. 아니,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죠.” 그는 이 책을 영화 <친구>의 논픽션 버전이라고 소개했다.

다시 만난 안희정과 이광재

두 명의 정치인의 삶을 하나로 묶은 책은 없었다. 그의 새로운 시도를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은 말렸다. “활동하고 있는 두 정치인의 삶을 재구성해야하는데 현직 기자의 입장에서 무모하지 않느냐라는 걱정을 많이 들었어요.” 게다가 두 사람은 워낙 독특하고 다른 사람이라 접점을 찾기 힘들었다.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지난 17년 반 동안 한 번도 단 둘만의 시간을 가지지 않았던 거죠.” 박 기자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17년 전, 젊은 시절의 이광재와 안희정은 이름 없는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책의 1장과 7장에 나오는 대담은 지난 5월 23일 대전의 한 술집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그 날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2주년 기념일이었다. 봉하 마을에서 추모식이 있었고 안 지사는 23일 저녁, 유일하게 시간을 비울 수 있었다. 박 기자와 두 정치인은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났다. 책 표지에 있는 사진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가 직접 와서 찍었다. “좋은 얘기를 많이 나누었죠. 문득 둘이 만나는 것은 마지막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두 사람의 제스처까지도 그대로 책에 담았다.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고 생각하고 썼어요. 영화 제작자가 각색 없이 영화화할 수 있을 정도로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썼어요."

저자가 말하는 책의 가치

안 지사와 이 전 지사도 박 기자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먼저 두 사람에게 이 책은 자서전이나 정치인 홍보 책도 아니라고 말했어요. 치부도 드러날 수 있을 거라고 못 박았죠.” 그는 젊은 세대가 즐겨 찾을 코너에 실릴 책을 쓰고자 했다. “젊은이들은 이 책을 통해 486세대의 삶과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독자는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생활을 보내고 40대에 접어든 세대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다. 독재 정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거리로 나가 싸웠던 청춘은 이제 40대다. “꿈을 꾸며 살아왔는데 부양할 가족이 생기고 잃을 수 없는 직장이 생겼죠. 현실에 부딪혀야 하는 우리 세대는 끊임없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어요.” 이 책에서 박 기자는 그들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주장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두 사람의 인생을 가감 없이 보여주죠. 독자들이 자신을 주인공들에 대입시켰을 때 ‘아, 이건 내 얘기구나!’라고 느꼈으면 해요.” 80년대에 대한 트라우마와 후회 그리고 혁명 후 뿔뿔이 흩어져 생존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갈등과 젊은 세대의 고민을 책을 통해 어루만지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다.

▲ 중앙일보 박신홍 기자
박신홍 기자는 두 정치인의 삶에서 서로 다른 가치가 합일되는 과정을 발견했다. “안희정, 이광재는 각각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죠. 두 사람이 노무현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뭉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워요.” 실제로 두 인물의 성격은 정반대다. 안희정은 사람, 정체성, 가치, 명분, 희생, 의리를 믿는다. 이광재는 일, 아이디어, 성과, 실적, 창의성, 실용에 천착한다.(책 p.6) 수없이 갈등을 빚었지만 2017년 함께하자며 끈끈하게 결의까지 하는 모습들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좌와 우처럼 큰 갈등 요소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방법이 확실히 있어요. 정치라는 조그만 카테고리보다 화합이라는 가치를 강조하고 싶었죠.”

정치적인 쟁점을 다루지 않아 내용이 가벼워 진 게 아닌지 물었다. “일부러 가볍게 썼어요. 하지만 그리 가볍지만은 않을 거예요.” 박 기자가 글을 쓸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점은 재미, 감동, 메시지다. 메시지의 비중이 재미와 감동보다 커지게 되면 소수만 즐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선입견을 가지고 글을 읽을 수밖에 없죠. 직설적으로 말하면 친노의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게 된다는 거죠. 제가 전하려는 건 그게 아닌데 말이에요.” 그는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은 정치에 천천히 쉽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죽을 떠줘야 하는데 고기를 주면 탈이 나겠죠. 대신 문재인 씨와의 일화 등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정치적 사실들을 줄거리 사이에 숨겨놓았어요. 전 그렇게 가벼워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인터뷰 쓰는 법

지난해 하반기부터 박 기자는 중앙선데이에 이슈메이커 릴레이 인터뷰를 연재하고 있다. 여당의 인물을 인터뷰 한 다음엔 야당의 인물을 인터뷰 하는 식이다. 양 쪽의 입장을 모두 반영해 주는 것은 독자에 대한 서비스라고 그가 말했다. 마침 진보진영의 인사들이 부각되고 있었다. 이재오 특임장관, 박근혜 전 대표와 같은 보수 인사부터 김두관 지사와 문재인 이사장과 같은 진보 인사 모두를 아우르는 그의 인터뷰 기사는 화제가 됐다. “하나씩 하나씩 입체적으로 보여주자고 생각했죠.” 9월 5일 이재오 장관과는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는 서오릉을 함께 등산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의 인터뷰 기사에서는 ‘그’를 찾아 볼 수 없다. 두 시간 가량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거의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인터뷰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박 기자의 인터뷰 요령이다. “인터뷰는 신문 기자의 주장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최대한 실어줘야 해요. 이 점은 매우 어렵죠.” 한 줄 이내로 리드를 짧게 쓰고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압축해서 실어준다. 수식어는 넣지 않는다. 그는 인터뷰이가 신뢰하는 기자다. “대선 정국에서 수많은 인터뷰를 하게 될 거예요. 누구나 하는 인터뷰 말고 새로운 시각과 좋은 정보를 주는 인터뷰를 쓰고 있어요. 읽는 맛도 있게 말이죠.”

박 기자는 과장이 없는 소탈한 글을 좋아한다. “좋은 글을 쉬지 않고 읽어버릴 때의 만족감은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것 이상이에요.” 그는 과장된 문장을 쓰지 않고도 독자들이 눈물을 흘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글을 읽고 나서 여운 남겠죠. 여운의 구름이 걷히면 나도 모르게 침잠되는 알 수 없는 몇 가지가 있을 거예요. 독자에게 무언에 메시지를 주는 글을 쓰고 싶어요.” 책을 한권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독자는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박신홍 기자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해 글을 쓴다. 책 <안희정과 이광재>는 그런 그의 의미 있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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