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한국 언론의 한 치 앞에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언론은 지금껏 억압과 고문에 시달렸고 혁명을 통해 자유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 유착이나 이념의 양극화의 우려를 안고 여기까지 왔다. 언론 자유를 외치던 기자들은 한국형 저널리즘과 함께 인생을 보냈다. 혁명을 꿈꿨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들은 퇴직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09년 7월 22일 ‘미디어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순간 언론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안락했던 시청률 경쟁

‘조, 중, 동, 매’ 4개의 거대 신문사는 곧, 방송국을 개국한다. 매일경제는 MBN, 조선일보는 TV조선, 중앙일보는 jTBC, 동아일보는 채널A로 각각 이름을 짓고 신문사 편집국에 방송 장비를 들여놓았다.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은 이미 시작된 게임이다. 개국이 가까워 오면서 미디어 전문가들은 점을 치느라 정신이 없다. 예언의 핵심에는 시청률과 자본이 있다.

기본적으로 종편이 꿈꾸는 미디어는 시청률 싸움으로 탄생하는 질 좋은 콘텐츠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르면 경쟁은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다. 미디어에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적용됐다.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오랫동안 방송계를 장악하고 있던 기존 지상파 방송국들은 사실 콘텐츠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 한계의 부담은 오롯이 시청자의 몫이었다. 지상파는 눈치를 보며 제한적인 방송만을 제작해왔다. 방송사에게 뻔한 스토리의 드라마와 시청률은 헤어 나올 수 없는 딜레마였다. 스토리에 있어 새로운 시도나 드라마 시즌제 도입을 위해 능력 있는 일꾼들은 노력해왔다. 하지만 시청률과 광고주의 눈치를 보느라 시도는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신인 배우와 PD, 작가들 중 루키를 발굴해 내던 단막극은 폐지되었다. 방송사가 자본에 눈치를 보는 통에 쪽대본 드라마는 이제 관행이 됐다. 생방송으로 찍기 일쑤인 탓에 실수가 잦은 편집과 흐름이 끊겨 버린 드라마는 전파를 타고 안방으로 배달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은 또한 어느 정도 시청률이 보장 된다는 안락함에 마취되어 있다. 케이블과 달리 전파만으로도 송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상파는 언제나 일정 시청률을 기록한다. 지금까지는 3사 간의 시청률 싸움이었다. 하지만 10월부터 지상파의 적은 하나씩 하나씩 모두 7개로 늘어난다. 종편이 곧바로 지상파에 편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전파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선 케이블, 위성 방송, IP TV 등을 통해 방송된다. 기존 지상파 이외에 방송을 송신할 만한 전파가 마련되면 시청률 전쟁에서 승리한 방송사가 그 전파를 거머쥐게 된다. 일정 시청률 보장이라는 수혜를 얻어내기 위해 기존 지상파 방송사 또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3사 끼리 했던 소소한 시청률 다툼은 이제 전쟁이 된다.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종편은 방송 3사로 통칭되는 지상파 방송과 다르게 24시간 방송과 중간광고가 허가된다. 지상파는 새벽 1~6시 사이의 심야 방송을 금지하고 있다. 게다가 종편에 부과된 제한은 ‘오락프로그램을 전체 편성표에서 50% 이내로 편성해야 한다’ 뿐이다. 든든한 자본을 바탕으로 시간과 공간의 자유까지 얻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종편의 승승장구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안온한 태도로 일관하던 기존 지상파의 제작 방식에 따분해 하던 시청자들은 종편에 참신함을 기대하고 있다. 그들의 자본은 ‘쪽대본’을 예방해 줄 것이며 능력은 ‘재미’를, 자유는 ‘새로움’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 단순하게 콘텐츠의 질을 회복할 것이라 낙담할 수 없다. 지상파 3사의 소소한 다툼도 결과는 참혹했기 때문이다. 스포츠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코리아 풀을 깨어버리는 반칙이 수도 없이 일어났다. 지난 해 10월 개편된 MBC <뉴스데스크>는 많은 화젯거리를 낳았다. 박대기 기자는 눈을 맞으면서 리포팅을 했고 조의명 기자는 직접 얼음물에 빠지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뉴스에 살해 장면이 담긴 CCTV를 내보내면서 선정성 논란을 겪었다. 뉴스프로그램조차 시청률 높은 1분을 만들기 위해 필요 이상의 것을 묵인한 셈이다.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과 <스타킹>은 선정적이라는 비난을 계속해서 감내하며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변칙이 존재해 온 사소한 다툼이 이제 전쟁으로 번질 것이다.

아무리 24시간 방송이 제작자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공간적 자유를 준다고 해도 새벽 시간은 심야 방송에 지나지 않는다.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은 심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심야에 편성할 수 있기 때문에 시청률을 보장할 수 없는 단막극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막연하다. 주어진 자유만큼 자본에 민감해진 미디어가 돈을 많이 벌 수 없는 프로그램들을 제작할지 의문이다. ‘경쟁을 통한 콘텐츠의 질 회복’이라는 명제가 성립되려면 시청률이나 광고가 보장되어야 한다. 방송사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질은 방송의 재미와 같지 않다. 선정적이지 않고 언론의 윤리를 책임질 수 있으며 돈을 벌 수 있는 콘텐츠는 기획하기 몹시 어렵다.

▲ 2011년 하반기 후지TV 드라마 편성표
시청률로 콘텐츠 제작 방향을 결정하는 행태의 폐해는 일본 민영 방송사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8월 21일 도쿄 오다이바에 위치한 일본 민영 방송 후지TV 앞에 6000여 명의 반한류 시위대가 모였다. 한류 반대 시위의 명분은 후지 TV의 편성이었다. 후지TV는 지상파 방송사 중에 한국 드라마를 가장 많이 편성하고 있다. 8월 18일 방송은 “한국 방송국이 아니냐”는 시위대의 항변에 큰 힘을 실었다. 이 날, 낮 12시부터 밤 11시까지 한국 가수들이 출연하는 가요 프로그램과 토크쇼, 한국 드라마가 편성됐다. 후지TV는 월 40시간 한국 드라마를 방송하며 예능 프로그램에는 대부분 한류 스타들이 출연하고 있다. 일본의 지상파 방송국에 일본의 콘텐츠 대신 한국 콘텐츠가 방송되는 데에는 시청률이 있다. 방송사는 자국 콘텐츠의 질에 관심을 갖는 대신 해외 콘텐츠를 수입하면서 손쉽게 시청률을 얻어낼 수 있다. 이미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종편은 40%까지 외국 프로그램을 편성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었고 이 자유가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 지는 후지TV 반한류 사건으로 예상할 수 있다.

종편은 미디어 인력을 확충할 수 있다?

9월 가장 큰 이슈는 스타 PD들의 종편행이었다. KBS 예능 <1박 2일>의 나영석 PD가 CJ E&M으로 이적을 결정했다는 소식은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앞서 jTBC는 MBC 예능 PD 출신인 전 OBS 사장 주철환 씨를 제작 본부장으로 영입했다. MBC <무릎팍 도사>와 <무한도전>을 연출했던 여운혁 PD와 <위대한 탄생>의 임정아 PD, <추억이 빛나는 밤에> 성치경 PD와 <일요일 일요일 밤에> 방현영 PD도 jTBC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SBS의 김은정, 송광종, 정효민 PD까지 종편행을 결정했다. 그 외에도 유명한 방송 작가들까지 종편에 합류하면서 기존 지상파 방송국에 비상이 걸렸다. 능력 있는 PD들은 자본과 자유를 바탕으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것이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기존 프로그램들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새롭게 기획될 프로그램들에 한껏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고시생들에게 직업의 기회가 늘 것이라는 전망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신생 채널의 프로그램은 정말 ‘대박’이 아닌 이상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방송통신위원회 종편 담당자는 만약 채널 선정 시 15번 이상을 넘어간다면 시청률이 1%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종편은 대박 프로그램을 제작해야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대박 프로그램은 베테랑 PD들에게 달렸다. 이 때 방송사가 신입 PD를 뽑아 양성할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보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신문사의 편집국이 그대로 방송사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혼돈의 10월

한국의 광고 시장은 한계가 있다. 방송사 겸업을 시작한 신문사들은 첫 방송으로 내보낼 각종 드라마와 프로그램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다. 언론사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정된 광고를 얻어 내기 위해 콘텐츠의 질을 배팅할 지는 지켜봐야할 일이다. PD의 능력을 시험할 수 있고 유능한 배우를 발굴할 수 있는 단막극과 개그맨들의 생계가 달려있는 공개 코미디를 종편에서 실현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 탐사 보도 프로그램의 기획에 인력을 투입할지, 뉴스 보도 프로그램이 선정적으로 변질되지는 않을지, 창의적인 자국 콘텐츠보다 해외 유수한 콘텐츠를 중시하게 될지, 스포츠 중계에 시청자보다 자본의 이익을 우선시하지는 않을 지도 우려되는 점이다. 종편은 지금 막 발발한 1차 미디어 전쟁이다. 목표는 돈이다. 전쟁에서 패배한 자리에는 기업이 준비하고 있다. 신문사가 실패하면 그 자리를 기업이 메우는 형식이다. 기업의 자본이 언론에 투입됐을 때 기업의 입맛에 언론이 휘둘릴 것은 뻔하다. 정부의 특혜 논란과 채널 선정. 개국 직전까지도 엄청난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종편이 어떻게 자리 잡을까? 10월, 미디어는 본격적인 혼란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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