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 미디어 오늘 편집국장

벌써 몇 번째 썼다 지웠는지 모릅니다. 두 줄, 세 줄 적어놓고 다음은 뭘 쓸까 고민하다 Delete키를 누르곤 했습니다.

담배를 한 대 물고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왜 나는 이런 글에 약한 걸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신문기사는 30분 만에 뚝딱 해치우면서도, 이런 말랑말랑한 글을 쓰려면 시간은 무제한,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습니다. 남을 '조지고 씹는' 글은 잘도 쓰면서 자신의 속내를 찬찬히 드러내는 글엔 왜 이다지도 약한지 도통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피치 못할 이유로 십여 권에 이르던 일기장을 불태우던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그 뒤로는 일기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12년. 봇짐하나 달랑 들고 서울역에 내린 시골 총각의 표정 그대로, 12년 전 저는 사회의 높은 벽을 이리저리 둘러봤습니다. 때론 머리를 치켜들고, 때론 한 곳을 응시하며 밖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시신경을 통해 전달된 밖의 영상은 늘 머리 속에 입력하는 자료로만 여겨왔습니다.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열심히 버스노선을 외우던 시골총각처럼 밖의 영상들을 머리 속에 우겨넣었습니다. 그걸 가슴으로 내려 색을 입히고 숨결을 불어넣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이죠.

4년여 전, 저는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골방에 틀어박힌 적이 있었습니다. 글을 쓰겠노라는 다부진 각오 다음이었죠.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메마르고 거친 기사가 아니라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하청받은 글이 아니라 내 글을 쓰고 싶었지요.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노트에 메모도 많이 했지요. 하지만 단 한 장도 글을 적지 못했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일천한 경험 때문에 머리 속에서 고안해낸 인물엔 어김없이 저의 모습이 투영돼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솔직함이 동반돼야 했지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처음엔 부끄러움 때문이었습니다. 벌거벗는다는 느낌에 자꾸만 글에 포장을 입히려 했습니다. 일기장은 공개하는 것이 아니기에 맘대로 써내려 갈 수 있겠지만 발표를 전제로 하는 글에선 그럴 수 없더군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 부끄러움은 혼돈으로 이어졌습니다. 감추고 싶던 그 부끄러움의 단편들이 과연 나의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더군요. 내가 나를 모를 일이었습니다. 한때는 너무나 명쾌하고 단호해서 친구들과의 대화의 여지를 빼앗곤 했는데 이젠 나의 실체가 뭔지조차 모를 일이었습니다.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밖으로 나갔지요.

그렇게 잊고 4년 여를 지내왔는데 누군가가 20대에게 보내는 글을 써달라고 하더군요. 뭘 모르고 선뜻 그러겠노라고 했다가 그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는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도 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꺼내 보일 '나'를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Delete키에 죽어간 무수한 활자들의 시신, 뚝배기 재떨이에 담긴 무수한 담배 꽁초들이 저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많은 후배들이 물어옵니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냐고. 할 말이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되묻습니다. 무슨 글을 쓰고 싶냐고. 후배에게 던지는 질문이지만 동시에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요즘 언론계 언저리에선 갖가지 글쓰기 강좌가 열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고 하더군요. 적지 않은 수강료까지 지불하면서요. 물론 글에는 양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배워야겠지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혹여 글쓰기의 괴로움을 평생 벗으로 두고자 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언젠가는 느낄 겁니다. 글쓰기가 괴로운 건 미문 때문이 아니란 걸. 미문은 베낄 수 있지만 마음은 베낄 수 없습니다. 글쓰기가 괴로운 건 유리알 같은 글의 성질 때문입니다. 아무리 미문으로 덧씌우려 해도 쓰는 이의 마음이 온전히 드러나는 게 글입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밖만 보는 게 아니라 내밀한 자신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그 무엇'은  하나 둘 채워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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