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손을 올리고 원모양을 그리는 춤은 되지만 골반을 돌리는 춤은 안 된다. 망사스타킹은 되지만 가터벨트는 안 된다. ‘취중진담’은 달콤한 사랑노래로 여겨왔지만 ‘취했나봐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아’는 방송에서 부를 수 없다. ‘왜 저건 가만히 두면서 이것만 꼬투리를 잡아요?’ 라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끊이질 않는다.

방송심의는 기본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방송을 보여주기 위한 방침이다. 특히 성장기 청소년들의 가치관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폭력성, 선정성, 음란성, 비윤리성에 엄격한 잣대를 댄다. 그러나 오늘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여성가족부가 선정성을 이유로 들며 가하는 조치가 아이돌에게만 유독 가혹하게 적용된다는 시청자들의 반발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방송심의목적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늘고 있다.

무엇이 선정적인가
 

지난 달 10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는 "청소년들이 주로 시청하는 KBS 2TV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등의 음악프로그램에서 현아(걸그룹 ‘포미닛’ 소속, 20)가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채 남성 백댄서와 함께 선정적인 춤을 추는 장면을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 여과 없이 방송"한 것에 대하여 "자체심의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하는 취지에서 행정지도인 권고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권고'는 위반의 정도가 경미한 사안에 대해 향후 심의 규정 준수를 당부하는 행정지도에 해당된다. 이 같은 권고가 내려지기 5일 전, 방통심의위가 현아의 솔로 활동곡 ‘버블팝’의 안무가 선정적이라고 지적하자 현아의 소속사 큐브엔터테인먼트 측은 “‘버블팝’의 포인트 안무 부분을 제외하고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차라리 안무를 수정하지 않고 ‘버블팝’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7일 방송된 KBS 2TV ‘출발 드림팀’에서 여성출연자들의 가슴이 카메라 앵글에 과도하게 잡힌 영상이 여과 없이 방송되면서 ‘온가족이 시청하는 일요일 오전에 이 같은 방송을 하는 것은 선정적이지 않느냐’는 반발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대체 선정성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 기준이 아이돌들에게만 가혹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남자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노래 ‘비가 오는 날엔’을 청소년유해물로 판정했다. 여가부로부터 청소년유해물 판정을 받은 영상이나 노래 등은 청소년시청시간대에 방송에 나갈 수 없다. 여가부에서 문제를 삼은 가사는 ‘취했나봐 그만 마셔야 겠어’라는 부분으로 이 노래가 청소년들에게 술을 권장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만날 술이야’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가수 ‘바이브’의 ‘술이야’는 청소년유해물에 포함되지 않아 논란이 커졌다. 결국 지난 21일 여가부는 바이브의 ‘술이야’를 비롯 술과 담배가 포함된 가사들을 뒤늦게 청소년유해물로 지정했다. ‘술이야’는 이미 발매된 지 5년이 지난 곡이다.

왜 아이돌일까

고등학생 이 모(18)양은 “비슷한 사례에서 유독 아이돌그룹이나 힙합장르에만 깐깐하게 적용되는 기준이 많다”며 “아이돌들의 안무가 선정적으로 보일만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면 왜 다른 가수들이나 혹은 음악프로그램을 제외한 타 방송에서는 같은 기준을 적용하자 않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방송심의 제43조는 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을 다루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방송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좋은 품성을 지니고 건전한 인격을 형성하도록 힘써야 한다.’, ‘방송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균형 있는 성장을 해치는 환경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유익한 환경의 조성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등의 내용을 다룬다. ‘아이돌’은 영어로 ‘우상’이라는 뜻의 ‘idol’에서 유래한 용어로 즉 청소년들에게 우상이 되는 가수를 의미한다. 청소년층이 좋아할만한 음악 스타일과 콘셉트로 활동을 하며 실제로도 청소년 팬 층이 두텁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그 때문인지 최근 1년간 ‘선정성’을 이유로 권고나 주의를 받은 방송들을 살펴보면 아이돌과 관련된 사안이 절반이 넘는다.

아이돌과 방송심의, 문제의 핵심에는

대중문화평론가 강태규씨는 “국내 정서나 전통적 관습에만 얽매여 선정성의 기준을 잘못 잡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서 “이제 세계음악 시장을 움직이는 주류들과 비교해서 정확한 데이터를 통한 제재, 심의기준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방송심의 기준이 너무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다는 것이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세계적 유행을 따라가는 속도가 가장 빠른 아이돌가수들이 방송심의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이 위촉한 9명의 심의위원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3명은 국회의장이 국회 각 교섭 단체 대표위원과 협의하여 추천한 사람을 위촉하고 3명은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에서 추천한 사람을 위촉하다보니 전반적으로 연령층이 높고 시각도 비슷하다. 다양한 연령의 여러 분야 전문가들을 심의위원으로 투입하여 다각적이고 유동적인 심의가 가능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심의가 매우 단편적이라는 것도 문제다. 지난 2004년 2월 21일, 조선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는 가수 서태지 씨의 노래 ‘Victim’의 방송금지처분에 대한 의견이 실렸다. 당시 18살이던 학생은 ‘이 노래는 ‘sexual assult’(여성에 대한 정신적인 성폭력) ‘넥타이(남성주의)에 목 졸려 구토를 하는 너(여성)’, ‘테러리즘에 지워진 아이’(여아낙태)라며 누구보다도 여성문제에 대해 큰 소리로 부르짖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남성 우월주의와 성차별을 비판하는 이 노래가 낙태, 살인, 강간을 연상시킨다는 단순한 이유로 방송금지 처분을 받은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1년, 여가부 홈페이지 ‘열린발언대’에는 여전히 같은 맥락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단어 하나하나를 문제 삼는 것은 심의의 제대로 된 기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깊이 있는 심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결국 방통심의위가 확인해야할 방송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언론정보법연구2>(박선영,2002)는 ‘위원회가 심의해야 할 채널수가 300개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위원회의 '모든 방송에 대한 심의능력도 한계에 달했다’며 ‘방송에 대한 심의는 각 방송사와 시청자의 자율에 맡기고 이의가 제기되는 경우, 음란 폭력성 간접광고 등의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인 심의를 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한동안 인터넷 상에는 아이돌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심의를 비판하는 ‘19세의 볼 권리를 위한 촛불시위를 하자’라는 메시지가 유행했다. 청소년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한 방통심의위의 노력은 의미 있고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시청자를 위한 제도가 시청자로부터 외면 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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