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시각은 오전 8시 58분 50초입니다.”
다리를 떤다. 핸드폰과 연결된 이어폰에서는 시각을 알려주는 음성이 10초마다 흘러나오고 있다. 초조하다.

이것은 전쟁 상황이 아닌 ‘수강신청 1분 10초 전’ 이다. 1분 10초 전, 1분 전, 그리고 수강신청 시각까지, 점점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초조해진다. 다수의 학생들이 수강신청 전날 혹은 그 훨씬 전부터 초조함을 느낀다고 한다. 일어나지 못 할까봐 아예 뜬 눈으로 밤을 새는 학생, 1시간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학생과 긴장감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학생 등 초조함을 느끼는 유형은 다양하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소위 말하는 모양이 예쁜 시간표, 금요일이 공강인 시간표, 아침형 시간표 등 자신이 원하는 시간표를 얻기 위해 학기별 종합시간표가 올라오는 그 날부터 공을 들인다. 하지만 공들인 시간과는 전혀 관계없이 모든 상황은 눈 깜빡 할 새 끝난다. 단 2초 만에.

이번 학기에는 방학 시작 직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그 어느 때보다 수강신청 기간이 머지 않았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수강신청은 마치 방임된 소들이 알아서 풀을 찾아 뜯어먹어야 하는 상황 같다.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실패해 본 적이 없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수강신청 기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이상하리만큼 느끼지 못했다. 그 이상한 느낌은 수강신청 실패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었을까? 많은 학생들이 긴 시간 동안 화면이 굳어있는 증상을 호소했고, 나 역시 그 때문에 전공과목 한 개를 넣지 못했다.

수강신청에 실패한 학생들은 종전과 다름없이 각자의 플랜 B (실패 시 적용하려고 짜놓은 두 번째 시간표)를 적용하고, 학교 커뮤니티나 수업 정보가 있는 사이트에 ‘열어주시나요?’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이 와중에 학생들의 불만은 터져 나온다.

이화여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윤세희(20) 양은 “솔직히 모두가 들어야 졸업할 수 있으니 열어달라고도 하고 매달리는 것 아닌가. 교수 수를 늘려 적절한 개수의 반을 확충해야 한다”며  “경제학과의 경우 다수의 학생들이 복수전공 등을 하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고 문제점을 짚었다. 또한 익명을 요청한 같은 학교 언론정보학과생 K(20) 양은 “저번 학기에 들을 수 있는 수업이 두 개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한 수업에 들어가 보니 타과생이 2/3을 차지하고 있더라”며 “주전공생들은 이 수업을 듣지 못해 커리큘럼이 한 학기 혹은 1년이 밀려 졸업을 하냐 못하냐를 논하는데. 누구는 재미로, 교양으로 듣는다고 하니 정말 화가 났다”며 억울함과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런 문제는 전혀 해결할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노력과 제도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박다해(23) 양은 “우리 학교의 경우 신문방송 전공은 수강신청 기간에 주전공생들만 신청할 수 있다”고 수강신청제도를 설명했다. “그 뿐만 아니라 실습 과목 같이 부득이하게 수강인원을 제한해야하는 과목이 아닌 이상 교수님의 싸인 하나만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고려대 행정학과에 재학 중인 김 모(19) 양은 “대기자 제도와 폐강 보호 제도가 있어 들어야 할 과목은 인원수와 관계없이 보호되지만 편차가 너무 심해 그마저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화여대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양보다는 전공과목 수강신청에 있어 더 어려움을 호소한다. 소규모 학과는 그들대로, 대규모 학과와 많은 학생들의 관심이 쏠리는 학과는 그들대로 수강신청이 힘들다고 말한다. 100%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다수의 학생을 만족시키는 수강신청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수강신청 올클 (All clear, 모두 성공)과 올킬 (All kill, 모두 실패)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은 수강신청 기간에 심신이 지친다.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비싸게 내지만, 원하지 않는 과목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런 구속에서 벗어나 들어야 할 것과 듣고 싶은 것을 듣고 제때 졸업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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