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 The American Art>전

추적추적 하늘이 찔끔거리며 운다. 우는 구름을 달래주려 바람이 불법도 한데 잔뜩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좀처럼 밀려올 생각을 않는다. 비가 시원하게라도 내리면 일탈로써 우산을 접어보기라도 할 텐데 온통 꿉꿉하고 지겨운 나날이다. 이번 장마는 유난히 오래 머물다 갔다.

기왓장 끝에 머물다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을 세며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다. 하나 둘 세며 걷다 보니 나 홀로 서 있다. 문득 당연한 사실이 너무나 어색하다. 분명히 혼자 이곳을 찾았음에도 나만 덩그러니 서 있는 이 기분을 견딜 수가 없다. 시계를 보니 오후 다섯 시. 하루가 채 10시간도 남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어제가 되는, 그래서 매 순간이 더욱 소중한 오늘이다. 오늘의 값어치를 몇 점으로 매길 수 있을까.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
 
일상은 단어자체로도 익숙하다. 일일이 점수를 매기기엔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있다. 6월 11일 개관해 9월 25일까지 열리는 <이것이 미국미술이다>전은 그런 일상에 대한 틀을 깨놓는다. 사실 이와 비슷한 타이틀을 가진 전시는 예전에도 있었다. 1956년 런던에서 열린 <이것이 미술이다This is Tomorrow>전. 당시 1952년에서 1955년 사이 런던에서는 ‘인디펜던트 그룹 Independent Group: IG’이 형성됐다. IG는 디자이너, 미술가, 미술사가들이 대중문화에 나타나는 이미지에 대해 연구하는 소규모 집단이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일상과 직결된다. 자연스럽게 당시 전시도 일상의 경험 즉 대중문화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시간이 흘러 이것은 ‘This is Tomorrow’가 아닌 ‘The American Art’가 됐다. 바꾸면 ‘This is Today’쯤 될까? 미국미술을 덕수궁에서, 그것도 현대미술을 고궁에서 전시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상의 단조로움이 깨지는 느낌이다.
 
일상은 고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작품을 창조하는데 그것은 대개 매우 낯설고 특이한 경험들이다.” - 클래스 올덴버그 Claes Oldenburg, 1960
 
일상을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전시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작품의 소재는 일상적이지만 완성된 작품은 낯설다. 작품의 장르와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다. 일상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던가. 그러다 문득 일상은 하나의 콜라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동안 벌어지는 모든 것이 연관성 없는 일들의 연속일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즐거울 수도,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다. 연관성이 있든 없든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각자 다른 그들만의 작품이 되는 일. 모두 의미 있는 예술 활동이다.

일상에 도전하라

도전적인 삶을 다룬 이야기는 많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란 글도 자주 눈에 띈다. 보편적이지 않아 회자될 수 있는 것들이다. 딱딱하게만 생각됐던 사물들이 올덴버그의 손을 거쳐 부드러운 시리즈로 탄생했다. 워홀은 예술과 상품의 간극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진이라 생각한 작품들이 사실은 섬세한 유화였다는 사실에 뒤늦게 놀란다. 일상이 비정형상태란 사실을 깨달아가며 전시장 한 바퀴를 도는 내내 수많은 의문들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작품 하나하나가 지금의 일상을 철저히 꼬집고 있었다. 미술이 고리타분하다는 사람들, 미술이 어렵다는 사람들. 그들은 삶이 온통 미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과연 이 전시들을 보고도 미술과 생활은 별개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철저하게 바뀐 일상을 접하고 나니 축축히 내린 비는 그쳐 있다. 여전히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하늘이지만 여름의 긴 해가 아슬하게 걸려 있다. 매일의 일상을 새롭고 소중히 느끼기엔 난 너무 불안정하고 혼자 서기엔 아직 두려움이 크다. 용기 있는 청춘은 많지만 일상을 특별하다 느끼는 청춘은 많지 않다. 후자의 경우에서 스스로가 제외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다. 매일의 일상이 특별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상, 그리고 일탈. 그 둘이 대립하지 않길 바란다. 가벼운 일탈이 일상의 비타민이 돼줄 수 있다면, 일상의 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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