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속에서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지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유난히도 굴곡이 많았던 지난 100년간의 역사를 건축물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건축문화의 해를 맞아 10월28일까지 열리고 있는 '한국건축 100년전'

건축물은 삶을 담는 그릇이면서 그 시대의 문화와 기술 수준을 반영한다. 따라서 과거의 건축물에서는 그 당시의 삶을 읽을 수 있고, 오늘의 건축물들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전시회의 의의를 찾아본다면 지금껏 흩어져있던 건축에 대한 방대한 자료들을 모아본 자리였다는 것과 그것을 통해 변화무쌍한 길을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100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기대했던 만큼 아쉬웠던 점들도 많은 전시였다. 

전시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3부로  나뉘고, 다시 12개의 작은 주제로 분류되어 있었다. 사진, 모형, 설계도, 건축물의 설명을 적은 패널 보드, 슬라이드, 상영 등 약150여명의 건축가들의 350여점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제1부에서는 '서구 문물의 타의적 도입과 우리건축의 변화'라는 제목으로 개항기부터 광복직후까지의 건축물을 살펴본다. 개항의 충격 이후 타율적 근대화와  자생적 근대화를 모두 거친 다음 광복까지를 볼 수 있다. 자연주의적 전통과의 단절, 정체성 상실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그런데 건축물의 사진들을 가득 붙여 놓긴 했는데 작아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진보다 글이 많아서 책 한 권을 낱장을 죄다 떼어 내어 벽에  붙여 놓은 듯 하다. 부지런히 자료를 모아 붙이긴 했는데, 어느 관람자가 다 읽을 것인지 배려를 하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 정동일대, 1930년대 한국은행 주변 거리를 그 당시 실제 모습 그대로 작은 모형으로 제작해 놓기도 했다.  금강산  장안사 호텔 개축도면, 상하이 임시정부 위치도 눈에 띈다.

2부는  5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45년간의  건축적 성과를 정리했다. 이 시기에 한국 건축가들이 제시한 건축의 본원적 가치들을 세부적으로 볼 수 있다. 모더니티의 추구, 도시화에 의한 주거환경의 격변, 건축의 다원화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3부는 '새로운 시대의 인식과  모색'이라는 주제 아래 신진  건축가들의 다양한 시도들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슬라이드 상영물과  새 시대의 건축에 대한 의견을  담은 설치물들이 관람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물고기를 담은 수족관,작은 TV화면 등은 특히 관람자들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신진 작가들의 건축관을 담은 많은 설치물은 그 규격이 너무 작았다. 우리 건축의 미래도 누군가가 만든 제한적 규격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무엇인가 새롭고 멋진 미래건축상을 제시하려고 하지만, 그 속에 현실직시와 반성이  엿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불안하다. 12개의 주제에 따른 전시물 외에도 길이 22m의 패널에 건축역사 전표를 만들어 놓았다. 각종 사진 자료와 건축 관련 법규의 변화 등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또한 '한국 건축'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해준다. 전시회의 기획 의도상으로는 한국 건축이란 단순히 한국에 있는 건축물을 뜻하는 듯 하다. 따라서 단지 지역적 위치로서의 한국만이 존재한다. 한국의 건축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느끼기가  힘들다. 우리 건축 미학이 살아있고, 한국의 작가가 설계한 건축물이 해외에도 있을 법한데, 그런 건축물은 찾을 수가 없었다.

'정체성의 모색과  지역성의 탐구'라는 주제로 여러 건축물을 묶어 놓은 것이 있지만, 1960년경부터  한국의 전통 조형미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는 설명뿐이다. 한국에서 지어진 수많은 건축물들을 일렬로 늘어 놓은 것을 한국의 건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의 건축 100년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것만의 의 정체성이 와닿지 않는 것은 답답한 노릇이다.

너무 많은 전시물을 갑자기 섭취해서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다. 12개나 되는 주제의 묶음들에서는 통일성을 느끼기 어렵다. 현존하거나 한때 이름을 날렸던 건축가들의 건축물을 최대한 많이 나열해 놓은 듯한 인상도 지울 수 없다.  그 많은 건축물 중에서  그것이 왜 의미가 있고, 근대 건축사를 대변하는 이 자리에 어떻게 와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게 몇 개나 될까? '서울대 중앙도서관', '서울대 학생복지관' 등에는 작가의 설명까지 붙어있었지만  그 작가가 얼마나 유명한지는 몰라도, 그 건축물이 왜 유명해져야만 하는지는 알기 힘들다. 그것이 정말 의미있는 건축물이라면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자상한 설명을 해야 한다.  "어머, 이거 좀 봐. 이게 성대야?  어떻게 이렇게 조그맣고 이쁘게 만들까…." 그나마 자세한 설명이 적힌 패널은 글자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건축물 모형을 담은 유리상자에 김이 서릴 정도로 코를 갖다 대고 한참을 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품설명  패널 옆의 "제작-성균관 대학교  건축 도시 환경연구소 축적1/50" 이라는 소개만 보일 뿐이다.

'한국 건축 100년 전'은 그저 좋은 전시라고 하기에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았다.  전시된 건축물의 의미와는 별개로 전시에 빠진 건축물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몇 해전 붕괴된 성수대교와 삼풍 백화점등은 그 건축물이 지어질 당시의 우리 사회에 팽배했던 결과 지상주의,대강주의, 안전 불감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짚어볼 필요가 있었다. 역사는 현재를 치장하고 돋보이는 데 쓰여지면 안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성공한 결과만을 조합한 것은 이미 역사로서의 의미를 포기한 것이다. 건축 문화의 해가 뉘엿뉘엿 지는 마당에 열린 이번 전시를 보며 우리나라의 문화 진흥 정책과 행정의 원숙함이 국립 현대미술관을 올라가는 길 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박성은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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