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우리 사는 일이
저물 일 하나 없이
팍팍할 때
저무는 강변으로 가
이 세상을 실어오고 실어가는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며
팍팍한 마음 한 끝을
저무는 강물에 적셔
풀어 보낼 일이다.
                  -섬진강 5 中-

서울에서 약 세 시간 반 걸려 전주에 도착. 다시 버스로 한 시간 남짓 달린 후, 운암교 종점에서 내려 파란 섬진강 물을 왼편에 끼고 자갈길을 걸었다. 드문드문 차가 지날 때마다 마른 흙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 시야를 가리는 시골길. 사방을 둘러친 산 옆에는 햇살에 반짝이며 찬찬히 흐르는 강. 솜털같은 잔구름이 떠도는 파란 하늘과 간간이 눈앞에서 아른대는 나비. 주위는 온통 달력 그림에서나 보아오던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그렇게 20여 분을 걸어 도착한 곳이 마암 초등학교 분교. 그 곳에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있었다.

한 바퀴를 다 돌아도 100미터가 될까 말까 한 작은 운동장을 들어서니 5,6학년쯤 되어 보이는 한 여자 아이가 교실 창문 너머로 " 선생님, 손님 오셨어요."라고 외친다. 왼쪽 발, 왼편 솔기가 삼분의 이쯤 떨어져 간신히 외형만 유지하고 있는 슬리퍼를 수줍게 내주는 아이의 모습에서 정겨움이 묻어 나왔다.

시인에 대한 어설픈 선입견 때문일까. 섬진강과 함께 나고 자란 시인의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했던 나의 예상(마른 몸매에 우수에 찬 표정)과는 달리 김용택 시인은 너무도 푸근한 인상으로 환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작은 키에 넉넉한 배, 동글납작한 얼굴, 큼지막한 안경테. 헐렁한 마 바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의 시인은 섬진강변 작은 마을, 이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1-1, 6-1 이라는 큼지막한 푯말이 붙은 교실에서 1학년 2명과 6학년 3명을 가르친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향해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잘 가라. 안녕."이라며 인사를 한다. "창우야, 오늘도 태권도 배우러 가니?" 일일이 아이들을 챙기는 모습이 시인이라기 보다는 영락없는 선생님이다.

그의 작품 속엔 언제나 이런 아이들에 대한 사랑, 농민에 대한 사랑, 고향에 대한 사랑이 짙게 배어 있다. 그의 작품 소재는 모두 이들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김용택 시인은 진메 마을의 모든 것을 아낀다. 그의 첫 시집 '섬진강' 에서부터 뒤를 이은 시집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꽃산 가는 길', '강 같은 세월', 산문집 '작은 마을', '섬진강 이야기' 그리고 동요집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이러한 그의 마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의 시가 농촌을 배경으로 한 것이 많고, 농민들의 생생한 삶이 담겨 있는 만큼 혹자는 김용택 시인을 '농민 시인, 농촌 시인'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김용택 시인은 이러한 말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그냥 '시인'이기를 바래요. '좋은 시'를 쓰는 시인."  김용택 시인에게 있어 좋은 시란 어떤 것일까?

김용택 시인은 그가 절실히 느끼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것은 절대 시로 담아내지 않는다. "생각으로 세계를 논하려고 하면 안 돼지. 시는 '짓는' 게 아니라 '쓰는' 거예요. 있는 것, 경험한 것, 본 것을 그대로 담아서 시적 감동을 줘야지. 시적 감동이 없으면 아무리 옳은 시라도 좋은 시는 아니에요."

그가 말하는 '좋은 시'는 이처럼 사회적, 역사적, 시대적 정서를 담으면서도 시적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다. 아무리 시의 내용이 옳다고 해도 머리로 쓴 시, 삶이 담겨 있지 않은 시는 감동을 줄 수 없고 '좋은 시'가 아니라고 한다. 이것은 비단 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문학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은 언제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조작된 것이 아니라 진실된 삶을 담을 때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머리로 쓴 시는 시가 아니라 관념의 유희지." 

그렇기 때문에, 김용택 시인은 시인의 길과 인간의 길이 다를 수 없다고 말한다. 시를 생각하기에 앞서 인간을 먼저 생각하고, 인생을 가치있게 꾸려 나가려 할 때 그것이 그대로 시에 반영되어 '좋은 시'가 된다. 그가 생각하는 가치는 바로 '진실, 정의, 정직'이다. 진실, 정의, 정직을 갖춘 삶, 이 세 가지가 통하는 사회가 가치있는 사회라고 했다. 시는 이런 바탕 위에서 존재해야 하고, 그는 이런 가치를 표현하려 한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로 그가 이 곳, 섬진강 변 진메 마을, 시골 작은 분교의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한테는 진실이 통하잖아요. 아까 창우 봤죠? 내가 창우를 정말로 진실로 예뻐하면 창우는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무 좋아하잖아. 어른들은 안 그런 사람들이 더 많지. 저 사람이 무슨 다른 속셈, 꿍꿍이가 있나 따져 보구. 아이들만큼 진실이 잘 통하는 대상도 없어요."

그의 이런 마음은 '교실 창가에서', '보리 같은 아이들아' 와 같은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교실 창 밖 강 건너 마을 뒷산 밑에
보리들이 어제보다 새파랗습니다.
     
         --중략--

아이들이 내 주위에서 내게 다가왔다 저 멀리 멀어지고
멀어졌다가 어제보다 가까이 오는 모습들이
마치 보리밭에 오는 봄 같습니다.
        --중략--

이렇게 저렇게 아이들은
아이들과 부딪치고 싸우며
정들어가는 이 사랑싸움을 나는 좋아합니다.

다치고 상처받고 괴로워하며
자기를 고치고 마음을 새로 열어가는
이 아름다운 마음의 행진이
이 봄날에 한없이 눈물겹습니다.
세상이 새로워지면 이게 행복인 게지요.
들어갈 벨이 울리자
아이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붉은 얼굴을 돌립니다.
저럴 땐 얼굴들이 나를 향해 피는 꽃 같습니다.

                        -교실 창가에서 中-

김용택 시인은 작년 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로 12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수상 당시의 소감을 묻자 "물론 기분 좋았죠. 이렇게 시골에 묻혀 있어도 내 시를 알고 인정해 준다는 거니까." 하고 기쁨을 표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조심스러움과 경계의 빛을 나타내기도 했다. "시인은 옛날 농부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시를 써야 돼요. 농부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농사를 짓는 건 아니죠. 땅을 사랑하고 밭을 가는 것처럼, 시인도 세상을 갈아 간다는 마음으로 시를 써야 돼요. 명예 같은 건 순결한 마음으로 좋은 시를 썼을 때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거지, 그 자체가 중요시되면 안되죠." 그는 시를 쓸 때 사심으로, 욕심을 가지고 쓰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씩 더 자신에게 묻고 확인해 본다고 한다.

그는 문학 공부를 하고 시를 쓰면서 세상을 더 깊게 바라보게 되고 섬진강, 고향 마을, 아이들을 더 사랑하게 됐다고 말한다. 문학을 하면서 고향 진메 마을이 얼마나 아름답고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느꼈단다. 마찬가지로 좋은 시가 부조리하고 부패한 사회,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고 행복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이것 자체가 시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서정성 짙은 그의 시 '가을'을  읽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더욱 가슴 시리게 느껴짐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해지는 풀 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 가을 中-

이혜원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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