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 아이가 있다. 축구공이 날아오고 두 명이 동시에 헤딩을 하려고 뛰어 오른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약간 낮게 뛴다. 갑자기 화면이 정지되면서 멘트가 나온다.

"만약 내 아이가 뒤쳐진다면?"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발육이 늦어져서 뒤쳐지면 안되니까 영양제를 먹이자는 제약 회사의 광고이다. 이 광고를 보고 갑자기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영양제를 먹지 않은 다른 한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광고의 내용대로라면 영양제를 먹은 아이에게 뒤쳐졌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고 내 아이만이 앞서 나가면 된다는 광고. 철저한 가족이기주의의 모습이 아닐까?

1)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조금은 무리해도 괜찮아요

TV를 보다 보면 아이들 관련 용품 광고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 두세 살 먹은 아이가 척척 신문을 읽어대는 국어 학습지 광고, 조금은 비싸더라도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좋은 것을 먹이고 싶다는 분유 광고 등 다른 제품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고가임을 합리화시키는 광고들이 많다. 이런 광고를 보고 제품을 구입하는 주부들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5살, 7살의 형제를 둔 김민자 씨(34세. 초등학교 양호 교사)는 광고를 보면 다른 것들보다 비싼 것을 어쩔 수 없이 사게 된다고 말한다.

"내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상술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뻔한 상술에 넘어가게 되죠. 슈퍼에 가서 물건을 고를 때 처음에는 가격 때문에 좀 더 싼 것을 집었다가도 광고가 머리 속에서 떠오르면 그것을 사는 게 아이에게 괜히 미안해져요. 비싼 것을 사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과 비교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별 차이 없을 것 같으면서도 뭔가 더 좋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조기 교육도 남들에게 뒤처져선 안된다는 생각에 무리를 해서라도 하게 되는 것이죠."

최근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자녀를 직접 보살필 시간이 모자라는 대신 돈을 들여서라도 남다르게 키우겠다는 욕망으로 양육비 비중을 크게 높이는 경향을 보인다. 자기 아이를 좀 더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공통 사항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철분이 많이 들어 있어 발육에 좋다는 분유는 일반 분유의 네 배 값이라고 한다. 이 분유를 한 달 동안 먹이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2만원. 도시 근로자 4인 가족의 월 식비인 25만원에 근접하는 금액이다. 옹알이 수준의 아이에게 조기 교육을 시키는 학원에 다니려면 다달이 50만원을 내야 한다. 김민자 씨도 한 달 총 수입의 절반 가량을 두 아이의 양육비로 지출한다고 밝혔다.

2) 모두가 똑똑해지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한결같이 내 아이만은 다르게, 남들보다 더 똑똑하고 더 건강하게 키우자는 광고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광고에 나오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운다면 오히려 아이들의 삶이 획일화되는 것 아닐까? 전국의 아이들이 똑같은 영양제를 먹고, 똑같은 학습지를 풀게 된다면 말이다.

"문제는 생각, 창의력이 중요하죠."
                                 -W출판사의 학습지 광고 카피       

이 출판사는 회원이 전국에 50만 명 정도 있다. 광고에서는 창의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똑같은 정답을 전국의 아이들에게 배포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어쩌다 일주일에 한 번 찾아와서 교재를 주고 잠깐 얘기하고 가는 선생님과의 대화보다 다른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모래 장난을 하고, 소꿉놀이를 하면서 나누는 얘기에서 아이들의 창의력이 더 키워지지 않을까?

3) 내 아이에게는 다 해주고 싶어요.

"내가 다른 것처럼/내 아기는 그 누구와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최고의 것을 주고 싶다./아기를 키우는 데는 연습이 있을 수 없으니까."
                                                                     -N유업의 이유식 광고 카피    

아이들 용품 광고들은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신귀족으로,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난 아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까? 그런 광고 덕에 어렸을 때부터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자라난 아이들은 소비 지향적으로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고 싶은 게 있어도 참을 수 있는 인내력이나 절제심도 부족하게 될지 모른다. 사달라는 것은 무리를 해서라도 다 사주고 싶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부족함 없이 자라난 아이가 나중에 집안 형편이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문화적 충격을 받지는 않을까?

내 돈 들여서 내 아이 잘 키워보겠다는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심리를 이용해서 우리의 아이들이 획일화되고 소비 지향적, 자기 중심적으로 크도록 하는 광고의 흐름에는 문제가 있다. 다른 아이들은 어찌 돼도 상관이 없고 내 아이만 앞서 나가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되어갈지도 모른다.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아이들이 이끄는 21세기 사회 공동체의 모습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무차별적인 광고의 흐름에 휩쓸리지 말고 그 광고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송혜원 기자<dewedit@hanmail.net>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