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기 직전, 영국은 혼란기의 절정이었다. 산업혁명으로 보급된 과학적 지식은 영국 국민들이 기존 관습을 부정하게 만들었고 1824년 출판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종교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혼란에 빠진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빅토리아 여왕은 ‘Lady and Gentleman’을 사회적 모범으로 내세웠고 이 단 하나의 통념이 영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시기였던 빅토리아 시대를 만들어냈다. 개인을 억압하는 가장 무서운 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통념이 아니던가. 그리고 사회적 통념은 언제나 여성에게 더 가혹했다.

Lady, 숙녀인 당신은 가정의 천사

농경사회에서 남녀의 일은 구분되지 않았다. 함께 씨를 뿌리고 추수를 했으며, 들판에서 돌아오면 함께 집안일을 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근대화된 도시에서는 남녀의 일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남성은 집 밖에 나가 도시를 세우는 일을 하고, 여성은 아이들과 가정을 돌봤다. 자연히 아버지와 아들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존재로 여겨지는 반면 어머니와 딸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전락했다. 여성에게 강조된 덕목은 남편을 위해 정조를 지키는 것과 건강한 아들을 출산하는 것이었다. 영국사회 내에서는 가정에 헌신하는 여성을 ‘천사’로 칭송하고 그러한 모습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치부했다.

▲ 랜드시어 <Windsor castle in modern times>
역사는 흔적을 남긴다. 보수적인 시대였던 빅토리아 시대는 은근한 방법인 회화로 흔적을 남기는 법을 택했다. 그래서 빅토리아 시대의 그림은 말로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랜드시어가 그린 <Windsor castle in modern times>를 보자. 그림 속의 여왕은 권위적인 모습이 아니다. 사냥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꺾은 듯한 들꽃을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수줍게 내밀고 있는 그녀를 보니,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 또 당시 가정을 그린 회화에서는 남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영국 사회는 이런 그림을 보고 아빠가 없는 결핍된 가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성은 일을 하러 갔거나 그림을 그려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락한 영혼의 쉼터, 템즈강

▲ 리처드 레드그레이브 <추방>
가정의 ‘천사’라는 이름 아래 살아야 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은 가정의 울타리에 갇힌 포로였다. 가정의 ‘천사’로서 언제 어디서나 품위를 지켜야 했고 조금이라도 가정에서 벗어나면 바로 ‘타락’했다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리처드 레드그레이브의 <추방>에는 타락한 여성을 대하는 당시 영국인들의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누군가와 몰래 사랑을 나눈 딸은 아기를 낳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오랜만에 돌아왔을 딸을 아버지는 문간에서 매섭게 내친다. 그리고 가족들은 그녀를 잡지도 못한 채 바닥에 엎드려 오열하고 있다. 그녀 스스로도 얼마나 독한 마음을 먹고 집 문을 두드렸을까. 하지만 유일하게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족마저도 그녀를 버렸다. 사회가 용인하지 못할 짓을 한 딸을 데리고 있는 가정은 분명 이상적인 가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에서 쫓겨난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 조지와츠 <익사로 발견>
가장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살률과 성 매매율이 가장 높았던 시대로 기록되고 있다. 가정에서 쫓겨난 여성들은 템즈강으로 몸을 던졌다. 조지와츠의 <익사로 발견>과 같은 그림이 수없이 그려질 정도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모질지 못한 여성들은 혼자 낳은 아이를 데리고 몸을 팔며 다리 밑에서 겨우 삶을 유지했다. 유명한 문호들이 앞 다투어 그 아름다움을 찬양했던 템즈강은 사실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가 규정한 ‘타락한’ 여성들이 정처 없이 떠도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들만의 기사도 정신

▲ 크리놀린 틀
빅토리아 시대에 ‘숙녀’라는 단어는 정조를 지키고 현명한 어머니가 되는 내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당시 남성들이 자랑스러워하던 기사도 정신을 불러일으킬 만한 외모도 갖추어야 숙녀가 될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가느다란 몸을 만들기 위해 여성들은 코르셋을 입었다. 질긴 고래수염, 심지어 쇠로 된 코르셋을 입은 그녀들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수시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녀들의 한손에 잡히는 허리를 안아 일으켜 주며 남성들은 매력을 느꼈다. 또 여성들은 자신의 약한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치마 속에 크리놀린이라는 새장모양의 틀을 넣었다. 하지만 크리놀린은 촛불에서 쉽게 불이 옮겨 붙었고 불이 붙은 다음에는 혼자서 빨리 벗을 수도 없는 옷이었다. 이렇게 매일 입고 다니던 옷 때문에 매해 3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부상자는 2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 에드워드 번 존스 <The rock of doom>
약한 여성이 각광받던 시대에 맞춰 회화에서도 무시무시한 괴물을 물리치고, 어딘가에 갇힌 약한 여성을 구하는 영웅 이야기가 많이 그려졌다. 이런 이야기는 ‘젠틀’하기 위해 누드화를 그리지 못했던 영국 화가들에게 누드를 그릴 수 있게 하는 합리적인 소재이기도 했다. 에드워드 번 존스의 <The rock of doom>에는 바다괴물에게 잡혀 쇠사슬에 묶여있는 안드로메다를 발견한 페르세우스의 모습이 등장한다. 거친 바다와 대비되는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여린 안드로메다는 당시 화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였다. 그리고 쇠사슬은 이때부터 섹시한 이미지를 만드는 소품으로써 자주 쓰였다. 가장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에 말이다.

이 정도면 빅토리아 시대라는 암흑 속을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지 않는가. 자, 이제 당신이 직접 그림 속으로 Lady, 숙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갈 차례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